ADVERTISEMENT

[삶과 추억] 쌍용그룹 한때 재계 6위 이끈 경영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보이스카우트기를 전달받고 있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오른쪽). [연합뉴스]

보이스카우트기를 전달받고 있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오른쪽). [연합뉴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78세. 27일 김 전 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는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이날 빈소엔 김 전 회장 재임 당시 쌍용그룹 계열사 임원진과 그룹 원로가 찾아 고인을 기렸다. 재계에선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박영일 전 대농그룹 회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김재열 삼성글로벌리서치 사장(국제빙상경기연맹 회장) 부부 등이 이날 조문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정대철 전 의원,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도 빈소를 찾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재계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박진 외교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정치·문화·체육계 인사가 보낸 근조 화환과 근조기가 빈소 앞을 메웠다. 스웨덴 국왕의 조화도 있었는데, 고인의 측근은 “김 전 회장이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의장직을 맡으며 명예의장인 스웨덴 국왕과 개인적 친분을 쌓아왔다”고 말했다.

성곡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1945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를 졸업한 뒤 지난 66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에서 유학했다.

지난 75년 부친이 별세하며 고인은 쌍용그룹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작은 비누공장을 모태로 출범해 당시 레미콘 사업 등을 했던 쌍용의 경영에 나선 김 전 회장은 중화학·금융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그룹을 재계 6위까지 올려놨다. 이런 성과로 고인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김현철 삼미그룹 회장 등과 ‘재계 3김’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 1993년 11월1일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에 앞서 담소하는 김 전 회장(가운데). [연합뉴스]

지난 1993년 11월1일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회장단 회의에 앞서 담소하는 김 전 회장(가운데). [연합뉴스]

86년엔 동아자동차(이후 쌍용자동차로 변경, 현 KG모빌리티)를 인수하며 자동차 산업에도 진출했다. 쌍용차는 코란도·무쏘·체어맨·렉스턴 등을 속속 출시하며 스포츠유틸리티차(SUV)와 고급 승용차 명가로 이름을 날렸다.

김 전 회장은 지난 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구 달성군 의원에 당선돼 정계에도 진출했다. 쌍용그룹이 아시아 외환위기 사태를 피하지 못하고 휘청대자 지난 98년 의원직을 사퇴하고 경영에 복귀했다. 하지만 쌍용그룹은 지난 98년 채권단에 의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김 전 회장의 경영권도 박탈됐다. 2000년엔 쌍용양회 대주주에서 2대 주주가 되며 쌍용그룹은 사실상 해체됐다.

고인은 한국의 동계 스포츠와 레저 산업 발전에 초석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키불모지였던 한국에 용평스키장을 세웠다. 82년엔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에 선출된 뒤 지난 91년 강원 고성군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 성공에도 일조했다.

유가족으로는 부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 아들 김지용(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김지명(JJ푸드 시스템 대표)·김지태(태아산업 부사장)씨 등이 있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20분, 장지는 강원 용평 선영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