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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AI 시대 변호사·변리사의 상생 해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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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창한 전 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이창한 전 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육체노동에서 조금씩 해방돼 온 인간은 더 창의적인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인류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것들과 마주하게 됐다. 사이버 세상에서 무명의 인격으로 활동하고, 유전자를 마구 섞어 새로운 생물을 만들어 냈다. 만물을 창조한 신은 아닐지라도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인간의 역량은 발전하고 있다. 1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같은 세상이라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더욱이 지금은 챗GPT 같은 인공지능(AI)이 현재의 질문에 대해 바로 답을 주는 시대다. 기존의 사건·사고를 근거로 하는 데이터가 축적돼 있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의 메커니즘이 확립돼 있다면 사람이 개입하지 않더라도 AI가 알아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해준다.

특허소송 대리 자격 놓고 갈등
AI가 모범답안 찾아주는 세상
직역이기주의는 이제 안 통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아주 수려하고 자세하게 답을 척척 말해준다. 앞으로 사라질 직업으로 의사·약사·변호사·회계사가 거론되는 이유도 바로 이들 직업이 과거의 데이터에 의한 판단에 강하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의 해방을 부르짖었다면 지금의 지능혁명은 지식노동의 해방을 겨냥한다. 뻔한 사건에 대해 앞으로 인간은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 AI가 다 처리해줄 것이다. 이걸 못하게 막는 유일한 것은 그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의사·약사·간호사는 서로를 경계하기 전에 전혀 다른 일을 하는 AI 개발자를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는데도 구태의연한 직역 이기주의 다툼은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특허 침해 소송의 대리인 자격의 문제다. 변호사들은 민사소송법 제87조가 변호사가 아니면 소송대리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기에 변리사는 소송 대리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법학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아 국가시험을 통과한 변호사만이 특허 침해 소송에서 대리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변리사들은 기술을 다루는 특허 침해 소송에서 기술을 모르는 변호사가 소송 대리를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문한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선진국이 변리사의 소송 대리를 인정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 인정하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거다. 변호사들의 직역 이기주의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해법은 간단하다. 법대에서 흔히 말하는 육법전서를 변리사들이 공부하게 하고 변호사들에게는 공대에서 기본적인 이공학 공부를 하도록 하면 된다. 일정한 학점을 이수하게 하고, 그것도 부족하면 국가시험을 보게 하면 된다. 그럼 변호사나 변리사들의 질도 높아지니 국민 입장에서도 환영할 일 아닌가. 그런데 지금은 공부는 충실히 안 하면서 돈은 벌고 싶으니 서로의 결점만 내세운다. 싸우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특허 침해 소송에 제대로 대응을 하든지, 앞으로 어떻게 AI 시대에 대처할지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분쟁을 조기에 종식하려면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고민하면 대충 답이 나올 것이다. 첫째,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에 대해 법정에서 문서가 아닌 말로 설명하고 싸우며 특허 침해 여부에 대한 논의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 특허 침해 소송에서 민사소송법 이외에 다른 법적 지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이며 그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셋째,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할 경우 예상되는 사회·경제적 이익과 손실은 무엇이며 어느 정도인가. 이런 의문을 중심에 놓고 두 업계가 국회와 국민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끝장 토론을 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본다.

역사를 보면 독재자는 늘 국가와 국민을 부르짖으며 자기 반대편을 탄압했다. 그래서 속은 어떻든 겉으로 모든 독재자는 애국자로 포장된다. 직역 이기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과 사회의 공익을 부르짖으면서 사익을 취한다. 머잖아 AI가 소송대리를 할지도 모른다. 한가롭게 직역끼리 다툴 때가 아니다. 한국은 특허 침해 소송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크다니 이 문제까지 모아서 논의하길 바란다.

국가 첨단전략 산업 분야 4개 단체는 최근 특허 분쟁에 대한 기업들의 답답한 심정을 담아 변리사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더 미루지 말고 이번 국회에서는 반드시 답을 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창한 전 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