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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47) 제갈량이 손권을 설득해 ‘천하삼분지계’에 착수하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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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손권을 만나기 위해 노숙과 함께 배를 타고 시상(柴桑)으로 떠났습니다. 노숙은 제갈량에게 손권이 묻거든 조조의 군사와 장수가 많음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배가 동오에 도착하고 노숙이 먼저 손권을 만났습니다. 이때, 조조의 격문이 도착하였는데 이를 두고 문무 대신들이 격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조조의 격문은 이러했습니다.

‘나는 황제의 명에 따라 조서를 받들어 죄를 추궁하기 위해 정모(旌旄)를 앞세우고 남쪽으로 왔노라. 이에 유종은 꼼짝도 못했고 형주의 백성들은 소문만 듣고도 귀순하였노라. 지금 1백만 명의 대군과 1천명의 상장(上將)을 거느리고 장군과 함께 강하(江夏)에서 사냥을 하여 함께 유비를 치고 땅을 똑같이 나누어 영원한 우호를 맺고자 하니 구경만하지 말고 빨리 회답을 주기 바라노라.’

손권의 최측근인 장소가 이제까지 조조의 위세를 설명하고 항복만이 제일 안전한 계책이라고 진언했습니다. 여러 모사도 ‘그것이 하늘의 뜻’이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손권은 아무런 말 없이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노숙이 뒤따르자 손권이 노숙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손권의 참모인 노숙.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권의 참모인 노숙. 출처=예슝(葉雄) 화백

만일 저희가 항복한다면 당연히 저는 고향 땅의 후(侯)에 봉해져 공적에 따라 벼슬이 올라갈 터이니 주군(州郡)을 잃지 않겠지만, 장군께서 조조에게 항복한다면 어디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지위래야 후(侯)에 봉해지는 것이 고작일 터이니 수레도 한 채이고 말도 한 필 뿐이며 따르는 사람도 몇 사람에 불과할 것입니다. 어찌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 고(孤)라고 칭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 사람의 뜻은 각자 자신들만 위하는 것이니 들을 것이 없습니다. 장군께서 대계(大計)를 결정해야 합니다.

손권이 탄식하자 노숙은 제갈량을 데려왔으니 그를 통해 조조의 허실을 알아보는 게 좋다고 하였습니다. 손권은 제갈량이 자신의 신하들과 대화를 하게 한 다음에 만나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음날, 제갈량은 20여 명의 동오 대신들과 인사를 나눈 다음 자리에 앉았습니다. 대신들은 제갈량이 온 이유가 자신들을 설득시키러 온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이번에도 최측근인 장소가 꼬집는 투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동오의 대신들과 설전(舌戰)을 펴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동오의 대신들과 설전(舌戰)을 펴는 제갈량. 출처=예슝(葉雄) 화백

근자에 듣자니, 유비께서 선생을 초려로 세 번이나 찾아가 다행히 선생을 얻자 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생각하며 형주를 말아먹을 생각으로 있었다는데, 이제 하루아침에 조조의 것이 되었으니 그것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갈량은 첫손 꼽히는 모사인 장소의 기를 꺾지 못하면 손권을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형주 쯤 빼앗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공께서 인의를 몸소 행하시며 차마 종친의 기업을 빼앗을 수 없다고 극력 사양하시고, 유종 어린아이는 아첨하는 말만 듣고 몰래 투항하는 바람에 조조가 세력을 크게 뻗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공께서 강하에 군사를 둔치고 있는 것은 별도의 좋은 계책이 있기 때문이지만 보통 사람이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이로부터 제갈량은 장소와 우번, 보즐과 설종, 육적과 엄준 등등의 설전에서 모두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습니다. 황개가 나서 설전을 마무리하고 노숙과 함께 제갈량을 데리고 손권을 만나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제갈량의 형인 제갈근을 만났습니다.

네가 강동에 왔으면서 어째서 나를 찾아오지 않았느냐?

저는 유비를 섬기고 있으니 당연히 공무를 먼저 보고 사사로운 일은 뒤에 보아야 사리에 맞지 않겠습니까? 공무가 끝나지 않아 감히 사사로운 일을 돌볼 겨를이 없었으니 형님께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후(吳侯)를 만나 뵌 다음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말을 마치고 제갈근은 갈 길을 갔습니다. 이 장면에서 모종강은 재미있는 평을 했습니다.

‘참으로 묘하게 피해갔다. 만약 제갈근이 제갈량과 함께 안에 들어가 손권을 만난다면 제갈량은 손님이므로 손권과 함께 자리에 앉는데, 제갈근은 모사들과 같이 그들을 모시고 서야하니 말이다.’

노숙이 제갈량을 안내하자 손권은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며 극진한 예절로 우대했습니다. 인사를 마치자 손권은 제갈량에게 자리를 내주며 앉게 했습니다. 이 문장들을 보면 손권이 제갈량을 아주 파격적으로 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종강의 필체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나관중은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손권이 몸을 약간 굽혀 맞이하니 제갈량은 절을 하고 손권은 반례(半禮)로 답했다. 제갈량의 재주를 익히 들어 존경하는 것이었다. 손권이 제갈량에게 자리를 권하자 제갈량은 몇 번이나 겸양하다가 곁에 앉았다.’

제갈량에 대한 숭배가 청나라 때에 한창 높았음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손권과 마주 앉은 제갈량은 손권이 조조를 무찌를 방도를 묻지 않자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첫 대화는 서로 기분만 상했습니다. 하지만 노숙이 이내 분위기를 다시 전환했습니다. 손권은 제갈량에게 조조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유비와 자신뿐이라고 말하고, 유비가 패한 뒤라서 어떻게 어려움을 대처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제갈량이 계책을 말했습니다.

우리 주군께서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관우가 여전히 정예병 1만 명을 거느리고 있고 유기가 거느리고 있는 강하의 전사들도 1만 명이 넘으면 넘었지 모자라지는 않습니다. 조조의 군사는 멀리서 오느라고 피로에 지쳐 있는 데다 유비를 추격하느라고 하룻낮 하룻밤 동안 3백리를 강행군했습니다. 이것은 이른바 ‘멀리 날아온 화살은 얇은 비단도 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북쪽 사람들은 수전(水戰)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형주 백성들이 조조를 따르는 것 역시 위세로 억누르기 때문일 뿐 본심이 아닙니다. 이제 장군께서 진실로 유비와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합친다면 조조의 군사는 반드시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조조는 군사가 무너지면 반드시 북쪽으로 돌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주와 동오의 세력이 강해질 터이니 정족지세(鼎足之勢)의 형세가 이뤄질 것입니다.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계기는 오늘에 있으니 오직 장군만이 결단하실 수 있습니다.

선생의 말을 들으니 갑자기 마음이 탁 트이는구려. 내 뜻은 이미 결정됐으니 다시 다른 의심이 없을 것이오. 오늘 즉시 군사를 일으키기로 상의하겠으니 함께 조조를 쳐 없애도록 하십시다.

오국태의 귀띔에 정신이 번쩍 든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오국태의 귀띔에 정신이 번쩍 든 손권. 출처=예슝(葉雄) 화백

손권이 조조와 싸울 것을 정하자 항복을 권하던 대신들이 다시 나섰습니다. 손권은 또다시 머리가 아팠습니다. 오국태가 손권에게 예전에 언니가 임종 전에 한 말을 잊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손권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밖의 일은 주유에게 물어보라 했으니 이제 곧 주유가 등장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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