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로 '금메달' 정치로 '금배지'…스펙 끝판왕 '영화'로운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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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 NBA 선수 출신이자 상원의원을 지낸 빌 브래들리(80)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됐다고 2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미국 NBA 선수 출신이자 상원의원을 지낸 빌 브래들리(80)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제작됐다고 23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미국 명문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프로농구(NBA) 선수로 활약하다가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 선거에 도전한 사람. 스포츠계·학계·정계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궤적을 그린 이가 미국에 있다. 이번에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됐을 정도다. 워싱턴포스트(WP)는 23일(현지시간) "빌 브래들리(80)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 '롤링 어롱(Rolling Along)'이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초연됐다"고 보도했다.

브래들리는 1943년 미주리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은행장에 오른 아버지와 고등학교 농구선수 출신의 교사인 어머니는 그가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며 사회 문제를 고민하길 바랐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 흑인 친구들과 함께 야구팀으로 활동했을 때, 많은 식당과 호텔에서 입장을 거부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벼룩이 나오는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며 "하지만 팀 운영진은 백인 선수를 따로 투숙하게 하지 않았고, 나는 단결과 인간의 존엄성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9세부터 농구를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매일 방과 후 3시간 30분씩, 주말에는 8시간씩 농구를 했다. 그는 운동화에 10파운드의 납을 넣기도 하고, 드리블할 때 공을 보지 않는 연습을 하기 위해 안경에 골판지 조각을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75개 대학에서 장학금을 제안했을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던 그는 프린스턴대에 진학했다.

빌 브래들리의 생애를 주제로 한 영화 '롤링 어롱(Rolling Along)'의 포스터.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빌 브래들리의 생애를 주제로 한 영화 '롤링 어롱(Rolling Along)'의 포스터.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대학에 가서도 농구를 계속 한 그는 3년 연속 전미 우수 선수로 선정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64년엔 국가대표로 도쿄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화려한 이력으로 이듬해 뉴욕 닉스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그는 돌연 옥스퍼드대로 유학을 떠나 정치·철학·경제학(PPE) 공부를 했다. 전 세계 우수한 학생에게 수여되는 로즈 장학금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학 중엔 밀라노 농구팀에서 활약하며 66년 유럽 챔피언스컵(유로 리그의 전신)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유학을 마친 뒤 닉스팀에 합류해 67년부터 약 10년간 활약하며 NBA 챔피언십에서 두 차례 우승했다.

1960~70년대 미국 NBA 팀 뉴욕 닉스에서 활동했던 빌 브래들리(가운데)의 모습.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1960~70년대 미국 NBA 팀 뉴욕 닉스에서 활동했던 빌 브래들리(가운데)의 모습.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선수로 활동하면서 언론인·공무원·학자 등과 만나며 사회·정치 문제를 탐구했다. 빈민가를 다니며 길에서 만난 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77년 은퇴한 그는 정계 진출을 결심했고, 78년 뉴저지주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95년까지 삼선에 성공했다.

브래들리는 2000년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전에서 앨 고어 전 부통령과 경합했다. 아동 빈곤 해결, 최저임금 인상, 근로소득 세액 공제 확대 등의 공약을 내걸어 지지를 받았지만, 고어를 이기지는 못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뒤엔 컨설팅 회사 맥킨지앤컴퍼니의 비영리사업부서 수석 외부고문, 빈곤 퇴치를 위한 비영리 재단 '애큐먼'의 자문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경선 후보로 지명됐던 빌 브래들리. 그는 경선에서 앨 고어 전 부통령에게 패배했다.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지난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민주당 경선 후보로 지명됐던 빌 브래들리. 그는 경선에서 앨 고어 전 부통령에게 패배했다. 사진 빌 브래들리 홈페이지

영화 시나리오는 브래들리가 직접 쓴 연설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수년 전부터 자전적 수필 형태의 글을 들고 솔트레이크·시카고·텍사스 등 20개 도시의 소규모 극장에 섰다. 80년 가까운 인생에서 보고 배운 것을 관객과 만나 말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잡지 뉴요커는 "그는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약점과 감정을 서정적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전달한다"고 평했다.

코로나19로 잠시 중단됐던 공연은 지난해 12월 재개됐다. 인물 다큐멘터리로 유명한 마이클 톨린 감독이 무대 위 브래들리의 모습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하면서 '롤링 어롱'이 탄생했다. 톨린은 95년 전설적인 미 야구선수 행크 에런을 다룬 '체이징 더 드림', 2020년 마이클 조던의 '라스트 댄스' 등을 제작한 감독이다. 그는 "분열과 불확실성의 시대에 브래들리로부터 인내·수용·단결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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