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빼버리고 춤췄어요"…'비걸' 김예리의 올림픽 도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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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가 강렬한 눈빛으로 고난도 기술을 펼치고 있다. 청각장애를 극복한데 이어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딛고 태극마크를 단 김예리는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대한민국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가 강렬한 눈빛으로 고난도 기술을 펼치고 있다. 청각장애를 극복한데 이어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딛고 태극마크를 단 김예리는 내년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장진영 기자

지난 11일 서울시 중구의 한 댄스 연습실. ‘비 걸(B-girl)’ 김예리(23·닉네임 YELL)가 '엘보 백핸드'를 시도했다. 뒤로 덤블링을 하면서 팔꿈치로 바닥에 착지하는 동작. 김예리의 시그니처 무브다.

2021년 댄스 서바이벌 예능프로그램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했던 그는 소셜미디어 팔로워가 27만명에 달한다. 2021년부터 브레이킹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김예리는 부상 탓에 지난해 11월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추가 선발전을 통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김예리는 “작년 2월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해 6개월간 거의 춤을 못 췄다. 손상된 부위를 덜 쓰려고 노력하다 보니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 했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가 강렬한 눈빛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가 강렬한 눈빛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힙합 음악에 맞춰 고난도 춤을 추는 ‘브레이킹’은 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 종목이다. 올림픽 직행 티켓을 따려면 올해 9월 벨기에 세계선수권대회나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야 한다. 또 다른 방법은 국제댄스스포츠연맹(WDSF) 랭킹 포인트 상위 14~20위 안에 들어 ‘올림픽 퀄리파잉 시스템’을 통과하는 것이다. 김예리는 랭킹 포인트를 끌어올리기 위해 17~18일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열리는 월드시리즈에 출전 중이다. 한국 비걸 국가대표는 김예리를 포함해 총 3명인데,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 2명은 추후에 정해진다.

비걸 세계 최강은 아미(일본)와 671(중국)이다. 김예리는 2018년 유스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2019년 레드불 BC one E배틀 공동 3위에 올랐다. 지난 2월 일본 기타큐슈 월드시리즈에서 60여명 중 8위로 예선 오디션을 통과했지만, 32강에서 아쉽게 졌다. 김예리는 “한 끗 차이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브레이킹은1대1 배틀 방식으로, 2~3라운드로 진행된다. 피겨 스케이팅와 비슷하게 남녀 9명의 심판이 테크닉, 표현력, 독창성, 수행력, 음악이해도 등 5개 분야를 채점 한다. 힙합 음악은 8박자나 16박자마다 포인트 구간이 있다. 김예리는 “DJ의 변주로 예상치 못한 비트가 나올 때 순간적인 몸 동작과 음악이 맞아 떨어지면 관중들이 열광한다. 상대에게 부당한 신체 접촉을 하거나 동작을 카피(모방)하면 감점이다. 자기 만의 것을 계속 창조해야 한다”고 했다.

 귀에서 초소형 보청기를 꺼내 보여주는 김예리. 박린 기자

귀에서 초소형 보청기를 꺼내 보여주는 김예리. 박린 기자

김예리는 댄서에게는 치명적인 청각장애를 앓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보청기를 끼고 있다. 그는 “대회 중 꽹과리 소리 같은 굉음이 들려 보청기를 빼버린 적도 있다. 작게 들리는 비트와 상대 동작을 보고 박자를 세가며 춘 적도 있다. 귀가 안 들리는 불편함을 토로하기 보다는 극복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신체적 핸디캡을 이겨낸 김예리는 가수로서 성공을 뒤로 하고 미국 변호사가 된 이소은씨 등과 에스테틱 광고도 함께 찍었다. 김예리는 “교복도 바지로만 입었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치마를 입어봤다”고 웃은 뒤 “세상의 기준에 굴하지 않고 나다운 방식으로 노력하는 게 진짜 아름다움”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limitless artist(한계 없는 예술가)’라고 써둔 김예리는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의지가 약해질 때 떠올리는 단어다. 주변에서도 ‘넌 리밋리스 잖아’라고 말해준다”고 했다.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 장진영 기자

브레이킹 국가대표 김예리. 장진영 기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올림픽 인기가 떨어지자 브레이킹과 e스포츠, 스케이트 보드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김예리는 “2018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유스올림픽 당시 관중들 열기가 뜨거워 ‘이건 정식종목이 안 될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스포츠에 대한 고정관념과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 파리올림픽 때도 브레이킹은 ‘핫’할 것이다.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하면 다른 종목 선수들도 구경을 온다”며 “내가 태어난 2000년에 브레이킹 붐이 있었다가 식었는데, 되살아난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어 “한국 비걸은 20~30명 밖에 안된다. 올림픽 종목 채택 후 딸들을 지지해주는 부모님이 늘었다.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면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님처럼 세계적인 비걸이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내 대회에 12~13세 여자 선수들이 등장했다”고 했다.

서울 중구의 연습실에서 브레이킹 훈련을 하는 김예리. 장진영 기자

서울 중구의 연습실에서 브레이킹 훈련을 하는 김예리. 장진영 기자

▶김예리는

나이: 23세(2000년생)
닉네임: YELL(이름 예리를 빨리 말한 것)
소속: 갬블러크루, 현 브레이킹 국가대표
주요 경력: 2018 유스올림픽 동메달, 2019 레드불 BC one E배틀 3위
시그니처 무브: 엘보우 백핸드
SNS 팔로워: 27만명
좌우명: limitless(한계는 없다)

▶브레이킹은
시초: 1970년대 뉴욕서 힙합 비트에 맞춰 춘 고난도 춤
정식 종목: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4 파리올림픽
방식: 일대일 배틀, 2~3라운드
평가: 9명 심판이 테크닉·표현력·독창성·수행력·음악이해도 채점
(태블릿 PC로 스크롤을 움직여 각 항목별로 %를 매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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