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사 학위 논문-단행본 출판 새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학위 취득을 위한 일종의 요식으로서 지도·심사교수 및 친지에의 증정본 내지는 문교부 납본용으로나 쓰이면서 수요가 한정된 학계·대학사회에 묻혀버리기 일쑤였던 박사 학위 논문을 출판사들이 조금씩 손을 댄 뒤 일반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는 주로 학술서적을 전문으로 출판하는 출판사들이 벽에 부닥친 소재를 개발한다는 취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나 경우에 따라서는 단행본 화에 적합한 논문 선정을 위해 편집위원회까지 구성하는 등 적극성을 보이고 있는 출판사도 있어 주목되고 있다.
특히 최근 생산되고있는 박사 학위 논문들은 신제학위제도의 특성상 젊은 소장 학자들의 것이 대부분이며 따라서 이들의 주제선택을 통한 아이디어나 신선한 문제의식이 가장 광범한 잠재 독서 층을 형성하고있는 젊은세대의 감수성을 강하게 자극, 상업적으로도 기대를 해봄직하다는 것이 출판인들의 자체분석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일반 단행본으로 출간하는데 선례를 보인 출판사는 정음사. 이 출판사는 지금부터 10년 전인 80년부터 학위 논문의 단행본 출간을 주요한 기획 프로젝트로 내걸고 각 대학에서 나온 박사 학위 논문들 중에서 학문성과 대중적 호소력을 함께 갖춘 것들을 골라 단행본으로 출판하기 시작했다.
"학위 논문을 낸 사람들이 비교적 연소하고 사회적 지명도도 낮으며 출판사들이 학술서의 낮은 채산성을 이유로 단행본 출판을 꺼리기 때문에 좋은 내용의 논문을 상아탑 속에 사장시켜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젊은 학자들의 학문적 아이디어를 개발, 학술 출판에 새 바람을 일으켜 보겠다는 것이 기획의도였다"고 당시 사주로서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최동식교수(고려대 화학과)는 말하고 있다.
정음사가 시도한 박사 학위 논문의 단행본 출판 프로젝트는 총13권을 세상에 선보인 뒤 80년대 중반부터 「출판사 사정」으로 중단됐다. 그 무렵 정음사가 펴낸 학위 논문 단행본은 "17세기 한국말의 높임법과 그 15세기로부터의 변천" (김정수), "게오르크트라클 연구" (고위공), "제주도 사투리 풀이씨들의 이음법 연구" (성낙수), "윤동주 연구" (마광수), "신소설에 미친 만청 소설의 영향" (성현자), "임경업전 연구" (이윤석), "수호전 연구" (이혜순), "인생의 기술" (서지문), "한국 근대 희곡문학 연구" (김원중), "현대소설에 나타난 「길」의 상징성" (김용희), "춘향전의 형성과 계통" (설성경) , "임진록 연구" (임철호), "박용철의 하이네시 번역과 수용에 관한 연구" (김효중) 등이었다.
프로젝트를 중단한 정음사에 이어 철학 서적만을 전문으로 내는 서광사가 최근 들어 학위 논문의 단행본 출간에 나서고 있다. 작년 3월부터 전국의 도서관을 뒤져 철학관련 박사 학위 논문 1백여 편을 찾아낸 서광사측은 같은 해 9월 백종현·소흥렬·심재룡·이태수·차인석·황경식·윤사순 등 7인의 교수들로 편집위원회를 구성, 1차로 그 가운데서 단행본 출판에 적합한 논문 11편을 선정했다. 「새로운 출판 소재의 발굴을 통한 철학 인구의 저변확대」를 목표로 내건 이 기획의 1차 출간대상 논문을 보면 "칸트에 있어서의 자연과 자유에 관한 연구" (김용정), "순수이성의 이율배반과 선험적 관념론" (문성학), "도널드 데이비슨의 원초적 해석론 연구" (이영철), "지식 개념의 일상 언어적 분석" (정대현), "심리·물리적 수반이론" (조승옥), "기신논소 별기상에 나타난 원효의 일심사상" (은정희), "주역의 자연과 인간에 관한 연구" (곽신환), "플라톤의 「테아이테토스」 편에 나타난 「앎」의 문제에 관한 연구" (기종석),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의 개념" (표재명), "포이에르 바흐의 인간학적 유물론에 관한 연구" (안현수), "현대 윤리학에 있어서의 존재와 당위의 문제" (김상배) 등 11편으로 그중 정대현·곽신환 교수의 논문이 각각 "지식이란 무엇인가" "주역의 이해" 란 제목을 달고 이미 출간됐다. 안현수 교수의 논문이 12월초 출간될 예정이며 그 밖의 논문들도 각기 제목을 바꾸어 내년 중에는 모두 간행을 마무리짓는다는 것이 출판사측의 계획.
서광사 편집부장 주상희씨는 "박사 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낼 경우 지금까지는 자비출판이 관례였으나 우리는 저자와 계약을 체결, 3천부까지는 10%, 3년 내 5천부 이상이 팔리면 15%를 인세로 지급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다"며 "먼저 출간한 정·곽 두 교수의 책이 그런 대로 잘 팔려 학위 논문의 단행본 출판을 위험스럽게 보는 종래의 인식을 뒤엎고 상업적 이익도 기대해볼 만하다"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교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