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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무서운 집'에 사는 청년 8명, 그들의 특별한 스탠딩 코미디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유승규(30) 안무서운 회사 대표는 "은둔 청년에 대한 선입견이 이들을 더 숨거나 고립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유승규(30) 안무서운 회사 대표는 "은둔 청년에 대한 선입견이 이들을 더 숨거나 고립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은둔 상태인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시선은 위험해요. 더 숨게 하고 처지를 비관하게 하죠. 실제 은둔 청년들을 만나보면 부정적인 생각이나 공격성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는 거죠. 가정·학교·성폭력 피해자도 많은데, 복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대신 숨는 걸 선택한 겁니다.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높은 언덕을 올라 구불진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다락이 딸린 단독 주택 두 채가 나온다. 한때 은둔 생활을 했던 20~30대 청년 8명이 함께 사는 일명 '안 무서운 하우스'다. 일종의 셰어하우스인 이곳은, 은둔 청년을 돕는 사회적 기업 '안 무서운 회사'가 운영한다. 바깥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무서워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자신도 20대 절반 가까운 시간을 방 안에서 보냈다는 유승규(30) 대표를 19일 만났다. 그는 은둔하는 이들에게 쏠리는 잘못된 선입견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안 무서운 하우스'에 거주했던 청년들과 직원들. 두 채의 주택에서 총 8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진 안무서운회사 제공

지난해 '안 무서운 하우스'에 거주했던 청년들과 직원들. 두 채의 주택에서 총 8명이 거주하고 있다. 사진 안무서운회사 제공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했는데.
은둔 상태인 사람을 스스로 더 고립하게 한다. 이들을 돕는 사회적 장치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부터 생긴다. 사실 어느 집단이든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있다. 일본에선 1999~2011년 살인 등 강력 범죄를 분석해보니, 은둔 경험 있는 이의 범죄율이 없는 이보다 3.75%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어떤 편견이 또 있을까.
극도로 내향적이거나 사회에 적응을 잘 못 할 거라는 생각. 사회 활동을 잘하다가 어떤 계기로 은둔 상태가 되는 이들도 많다. 나도 고등학교 때 동아리 회장을 맡았고, 온라인 게임 유명 커뮤니티 운영자로도 활동했다. 군대에선 대대원들을 이끌고 뮤지컬 대회에서 1등을 한 적도 있고, 피아노를 치며 불경을 외우는 퍼포먼스로 9박 10일 휴가를 받은 적도 했다. 이런 내가 은둔할 줄 아무도 몰랐다. 또 다른 편견은, 쓰레기장 같은 방에서 살 것이란 생각. 비교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선입견은 고립된 이들이 '난 은둔형 외톨이까진 아니니 도움을 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한다.

유씨는 스무살 무렵부터 군대에 가기 전까지 약 2년 반, 전역 뒤 약 2년을 합해 4년 반 정도를 방에서 보냈다. 대학에 갈 생각이 없는 그에게 아버지가 입시를 강요하면서 갈등이 심해졌고, 부담이 싫어 벽을 쌓기 시작했다. 장손이라며 제사 등 유교적 가치관을 강조하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처음엔 슬럼프나 가벼운 우울 증세로 여겼지만, 고립이 고립을 부르는 생활이 이어졌다.

유승규 대표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방 청소를 결심하고, 치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사진 유승규 대표 제공

유승규 대표는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방 청소를 결심하고, 치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기도 했다. 사진 유승규 대표 제공

군대 생활 중에도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을 계속 느꼈다고 한다. 복무 중 공부해 전역 뒤 서울예대 방송영상과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자취하면서 은둔 생활에 더 쉽게 빠졌다.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다. 쓰레기장이 된 방을 치우거나,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다룬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기도 하고, 다짐을 적어 벽에 빼곡히 붙여보기도 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고립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뭘 해도 난 안 되나 보다"하는 무기력함만 더해졌다고 한다.

도움의 손길은 우연히 찾아왔다. 외로운 마음에 '히키코모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찾아보던 중, 일본의 사회적 기업 K2를 알게 된 것. 히키코모리를 돕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그는 이곳의 한국 지사에 연락했고, 은둔 청년과 모여 사는 프로그램에 3년간 참여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그는 도움을 주는 존재로 변화해갔다. K2 직원으로 은둔 청년을 방문하며 상담에 응하면서다. 그러나 2021년 팬데믹 등으로 한국 지사가 폐업하자, 함께 살던 은둔 청년 4명과 자본금 300만원으로 비슷한 역할을 하는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국내엔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나 회사가 없어 각종 연구 용역이 밀려들어왔다.

어떤 사업을 하나
첫 번째는 셰어하우스다. 월 150만원을 내고 함께 살며 규칙적인 일상을 회복하고 사회 복귀를 위해 노력한다. 올해는 다 같이 스탠딩 코미디쇼를 하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까지 셰어하우스를 거쳐 간 인원이 12명인데, 이 중 8명은 취업·학업에 복귀했다. 나머지도 추적해보니 재고립되지 않아 실효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두 번째는 은둔 고수 양성 프로젝트다. 고립 생활을 끝낸 이들을 상담가로 양성해 또 다른 은둔 청년을 상담하거나 부모를 가르치게 한다. 세 번째는 인식 개선 등을 위한 콘텐트를 만드는 미디어 사업이다. 사실 특별히 홍보하지도 않았는데, 신청자가 넘쳐 다 수용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다. 최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자체나 단체를 찾아 연계해주고 있다.
안 무서운 회사는 지난해 은둔 청년들과 함께 연극과 노래를 하는 콘서트 '꼭꼭숨어쇼'를 기획했다. 사진 안무서운회사 제공

안 무서운 회사는 지난해 은둔 청년들과 함께 연극과 노래를 하는 콘서트 '꼭꼭숨어쇼'를 기획했다. 사진 안무서운회사 제공

올해 3월, 국무조정실은 국내 청년 중 약 24만 4000명 상당이 은둔 생활 중인 것으로 추산했다. 원인으로는 취업·인간관계 어려움, 진학 실패 등이 꼽혔다.

은둔 청년, 왜 늘어나는 걸까
부모와 충분한 교류·소통을 못 하고 자란 세대의 문제다. 문제의 원인이나 해결책을 밖에서 찾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엔 코로나19 확산이나 인터넷·배달 문화 발달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은둔 상태인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은둔을 선택하는 건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게을러서, 실패해서, 무능력해서가 아니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혼자선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다. 도움의 손길을 요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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