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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똑똑하고 온순했던 아들, 10년째 방에서 안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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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은둔 경험자 유승규씨가 촬영한 당시 방의 모습. 영상을 전공한 유씨는 암울했던 시절을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 유승규씨]

은둔 경험자 유승규씨가 촬영한 당시 방의 모습. 영상을 전공한 유씨는 암울했던 시절을 영상 기록으로 남겼다. [사진 유승규씨]

 은둔형 외톨이. 일본어인 ‘히키코모리’가 한결 익숙한 그늘 속 청년 얘기를 꺼내면 대부분 심한 자폐나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떤가.

#1. 어려서부터 두 동생을 잘 챙겨온 모범생 맏이 A씨(22·여)는 약대에 진학했다. 순탄했던 삶은 몇달 전 그가 갑자기 은둔에 들어가면서 급변했다. 방에서 안 나오더니 모든 학교 활동을 펑크냈다. 친구들은 물론, 지도교수까지 연락을 시도했으나 불통이었다. 기말고사도 안 봤다. 아무도 방에 못 들어오게 한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깨어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가족이 잠든 밤에 나와 음식을 갖고 방으로 들어간다. 굶기 일쑤다.

#2. B군(19)은 의대 지망생이었다. 고1 때까지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일상은 지난해 봄 멈췄다. 중간고사에서 뜻밖의 문항을 틀린 사실을 발견한 직후였다. 이튿날 등교를 거부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착하고 다정했던 그를 돕고자 학교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시도했지만 결국 자퇴 처리됐다. 어머니에게 더없이 상냥하던 아들은 8개월째 세상과 벽을 쳤다. 식사를 차려 방 앞에 두면 가끔 갖고 들어가 먹는다.

한국에 10만~20만 명 추정

은둔 청년을 연구해온 김혜원 호서대 교수(상담심리학)에게 최근 도움을 요청해온 경우다. 김 교수는 7일 "은둔에 돌입한 청소년 중엔 평소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가 많아 부모가 더 놀라고 막막해한다"고 말했다. 경기도 성남의 비영리 사단법인 PIE나다운청년들에서 은둔 청년을 돕는 그에게 부모의 SOS가 밀려든다.

은둔 경험이 있는 청년들을 취재한 결과 이들만의 특이한 생활 양태가 그려졌다. 가족조차 이들의 얼굴을 못 보는 게 대표적이다. 10년을 집에서만 지내는데도 부모와 마주치지 않는다. 집에 가족이 있을 땐 방에서 안 나온다. 모두가 잘 때 부엌에 나가 끼니를 해결한다. 낮과 밤이 바뀐다. 씻지 않는 양상도 흔히 목격된다. 누구보다 깔끔했던 아이가 몇달 간 세수를 안 한다. 이렇게 절망 속에 사는 청년 숫자가 엄청나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심층 연구를 해온 일본과 달리 우린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연구자와 집계 방식에 따라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는 10만~50만 명 정도로 추정될 뿐이다.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해온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 5년 간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경험한 뒤 은둔 청년 돕기 활동을 하는 유승규 씨. 한국의 은둔 청년을 도와온 일본인 오오쿠사 미노루 K2인터내셔널코리아 전 팀장.(왼쪽부터) 강주안 기자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를 연구해온 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 5년 간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경험한 뒤 은둔 청년 돕기 활동을 하는 유승규 씨. 한국의 은둔 청년을 도와온 일본인 오오쿠사 미노루 K2인터내셔널코리아 전 팀장.(왼쪽부터) 강주안 기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본 단체가 한국의 은둔 청년 구출에 큰 몫을 맡아왔다. 1989년부터 히키코모리 지원 활동을 해온 단체 K2인터내셔널이 2012년 한국에 지부를 설립했다. 일본의 은둔 청년에게 한국에서 사는 기회를 부여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도 지부를 설립했다. 오오쿠사 미노루 전 K2 팀장은 "사람들에게서 고립된 것이 히키코모리의 어려움인데 외국에선 말이 안 통하는 게 당연하니 오히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올해 삼일절 기념식에 독립선언문 낭독자로 선정돼 주목받은 그는 "한국에도 일본처럼 은둔 청년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원 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K2를 매개로 한국과 일본 청년이 함께 생활했다. K2를 통해 사회에 복귀한 사례가 잇따랐고 ‘은둔 고수’(은둔 경험이 있는 상담가)가 육성됐다.

코로나 직격탄에 일본 지원 단체 철수

지난해 말 비보가 전해졌다. K2 한국지부가 활동을 중단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늘 서너 명씩 한국에 머물던 일본 은둔 청년이 출입국 제한 등으로 끊어졌다. K2가 한국 활동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해온 식당도 거리두기 여파로 문을 닫았다. 공동생활을 해오던 청년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로 자구책 마련에 들어갔고 K2 직원들은 자리를 옮겨 활동을 지속한다. 미노루 전 팀장은 청년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는 씨즈에서 청년 지원에 나섰다. K2 출신 ‘은둔 고수’ 유승규씨 등은 방문 상담과 부모 코칭을 하는 (주)안무서운회사를 설립했다. 유씨는 “은둔 청년들이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도록 회사명을 정했다”고 설명한다. 공동생활도 이어간다.

지난 3일 오후 6시쯤 이들이 사는 서울 강북구의 주거 공간을 찾아갔다. 다세대 주택에 남녀 숙소와 안무서운회사 사무실 등을 마련했다. 공동생활 중인 세 청년과 오랜 대화를 하면서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풀렸다. C씨(24)는 중학교 때 주재원 발령을 받은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 갔다가 왕따를 당해 은둔을 시작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던 D씨(28·여)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괴롭히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칩거를 시작했다. E씨(29)는 장손 집안이라는 이유로 제사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쌓였던 분노 등이 어느 날 일상을 무너뜨렸다.

“전문가 상담 반드시 받아야”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이유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싫어서다.”(C씨)

"낮에도 누군가 나를 볼까 봐 블라인드를 친다."(D씨)

-지저분한 환경을 방치한다.

"멍하게 있다 보니 방이 엉망이 된다. 어떻게 치울지 생각이 안 난다."(E씨)

”힘이 없다. 씻을 기운이 없다. 냄새나고 혐오스러운데 씻을 엄두가 안 난다.“(D씨)

-세상과 담을 쌓으면 마음은 편한가.

"절대 아니다. 사회에 나가야 하는데 그러고 있는 게 하루하루 고통이다."(C씨)

"하루 지나면 ‘또 나이를 먹었다’는 두려움이 든다. 이러다 영영 못 나갈까 봐 미칠 것 같다."(D씨)

-은둔 청년에게 조언한다면.

"상담을 받아야 한다. 혼자 해결 못 한다"(E씨)

"정신과든, 상담소든 많이 가야 한다."(D씨)

-부모가 잘 설득하고 대화하면 나아질까.

"안 된다. 부모님 사랑을 알지만, 효과는 없다."(C씨)
"소용없다. 역효과만 난다."(D씨)

"그렇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전문성이 필요하다."(E씨)


이용섭·오세훈 "맞춤 지원"

이들과 얘기하던 중 ‘은둔형 외톨이가 맞나?’하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대화가 순조롭고 생각이 건전했다. 사회의 훌륭한 일원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이들에 대한 지원 체계가 미비하고 일본 단체마저 활동을 중단한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뒤늦게나마 대책 마련에 나선 건 다행스럽다.

2019년 지원 조례를 마련한 광주광역시는 2020년 상반기에는 349명의 은둔 청년을 찾아냈다. 이용섭 시장은 "은둔형 외톨이와 가족들이 지역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민주인권도시답게 맞춤형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조례를 제정하고 은둔 청년을 찾는 작업에 들어간다. 오세훈 시장은 "이 문제에 사회적 관심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지만 더 이상 방치는 안 된다"며 "이들의 사회 참여를 촉진하는 맞춤형 대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무조정실은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를 꾸려 정책 검토에 들어갔다.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모 모임도 생겼다. 주상희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대표는 "부모들이 비영리 민간단체를 설립해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혜원 교수는 "많은 은둔 청년의 능력이 묻히는 건 사회적으로도 큰 손실"이라며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가를 육성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다. 은둔 위험이 있는 청년을 빨리 찾아내 도울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표 참조〉

〈은둔형 외톨이 간단 체크리스트〉

다음 15문항에 대해 각각 배점 기준(전혀 아니다 0점 / 가끔 그렇다 1점 / 자주 그렇다 2점 / 매우 그렇다 3점)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합산해 총점을 산출한다.
총점이 높을수록 은둔형 외톨이 성향이 강하다. 30점 이상이면 요주의 상황이다.

1.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2. 일상생활이 불규칙적이다(기상 시간, 식사 등)

3. 목욕이나 샤워를 하지 않는다.

4. 옷을 갈아입지 않거나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5. 가족이 없을 때(혹은 잘 때)만 움직인다.

6. 방에서 나오지 않거나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한다.

7. 가족이나 타인에게 과격한 말이나 행동을 한다.

8. 다른 사람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도 짜증이 난다.

9. 타인의 시선이나 말이 신경 쓰이고 불편하다.

10. 사람과의 연락이나 만나는 활동을 가급적 피한다.

11. 학교나 직장(알바)에 가지 않는다.

12. 친구가 없다.

13. 무기력하다.

14. 나의 장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15.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 (SNS, 게임, 손 씻기 등)

자료=김혜원 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학과 교수팀

방에서 탈출한 청년들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 의욕을 보인다. C씨·D씨·E씨 모두 이번 대선에 사전투표를 했거나 9일 투표장에 나갈 계획이다. 세상에 돌아온 이들은 누구보다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싶어했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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