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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대표""범법자" 외치며 킥킥…아이들이 본 대한민국 국회 [현장에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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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21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을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총선을 열 달 앞둔 국회는 전쟁터처럼 뜨겁우나, 반대로 국회 밖 민심은 싸늘하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가 21일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한 말이다. 배 원내대표는 “지난 이틀 동안 여야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서로의 아픈 부위를 사정없이 후벼파며 저마다 정견을 밝혔다”며 이같이 말한 뒤, 정치 개혁과 선거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배 원내대표의 연설문에도 다른 당을 향한 날선 표현이 가득했다. 그가 “윤석열 정부 1년은 민주주의가 역주행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맞습니다”라며 손뼉을 쳤다. 그가 “민주당도 마찬가지”라고 말하자, 이번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배진교 잘한다”고 호응했다. 국회 본회의장이 한눈에 보이는 3층에선 중고생 참관객 20여명이 이런 국회의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에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서로를 비난하기만 하는 이런 모습은 19~21일 사흘간 교섭단체 연설 내내 반복됐다. 전날 민주당 최고위원인 정청래 의원은 연단에 오른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 “울산 땅” “땅땅땅” 땅 파세요”라고 수차례 외쳤다. 그러자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벌떡 일어나 “야 정청래! 당신 지금 본회의장이야”라고 외쳤다. 정 최고위원은 “왜 그래!”라며 맞받아쳤고, 민주당 의원들은 저마다 킥킥대며 응원전을 펼쳤다.

그 전날엔 반대로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연설 중간중간 고성을 질렀다. 이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 순방 논란을 언급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문재인 때문에 엉망이 된 것”이라고 외쳤다. 대북정책 비판 발언에는 “그래서 (북한이) 핵을 만들었다”는 외침이 나왔다. 이 대표가 “지난 1년, 대통령은 야당과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을 땐 5선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범법자를 어떻게 만나냐”고 소리쳤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국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 중 야유를 보내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이 20일 국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 중 야유를 보내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물론 관중석의 이런 모습은 여야 대표의 ‘남 탓’ 연설문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한국 정치를 대표한다는 여야 대표는 상대를 비난하기 위한 작명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첫날인 19일 연단에 오른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를 ‘압구정(압수수색·구속기소·정쟁)’으로 명명하며 “압구정 정권의 실상을 국민에게 드러내겠다”고 외쳤다. 그러자 다음 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사돈 남 말(사법 리스크·돈 봉투 비리·남 탓 전문·말로만 특권 포기) 정당대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이 대표를 비난했다.

상호 대립·비판이 민주주의의 한 요소라지만, 과거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는 “정파를 초월해 손을 맞잡자”는 제안이 적지 않았다. 상임위에선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적어도 TV로 생중계되는 국회 본회의장 연단에서만큼은 품격을 보여야 한다는 게 여의도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 9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야는 오직 국민을 위해 일하는 파트너여야 한다”며“국가안보·민생만이라도 협치하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다음날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여야가 더 이상 정치적 이유로 민생을 외면하고 국민을 편 가르기 해서는 안 된다”고 화답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3개월 앞둔 국회조차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양보와 타협의 여지를 남겼다. 불과 7년 전 여의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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