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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180) 뵈올까 바란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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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뵈올까 바란 마음
이육사(1904∼1944)

뵈올까 바란 마음 그 마음 지난 바램
하루가 열흘 같이 기약도 아득해라
바라다 지친 이 넋을 잠재올가 하노라

잠조차 없는 밤에 촉(燭) 태워 앉았으니
이별에 병든 몸이 나을 길 없오매라
저 달 상기 보고 가오니 때로 볼까 하노라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호국보훈의 달에 생각하는 이육사

참으로 애절한 사랑시다. 뵈올까 바라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않고, 지친 넋을 잠재울까 하다가 촛불을 켜고 앉는다. 이별에 몸은 병들고, 저 달에서나 임의 모습을 때로 보리라.

그러나 이 시조가 20대 초부터 독립운동에 투신, 39년이라는 짧은 생애에 17번이나 옥살이를 한 이육사의 작품이라는 것을 상기하면 범상한 연시(戀詩)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시인이 그리워하는 대상을 광복된 조국으로 치환하면 이 시조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다.

육사가 중국 베이징 감옥에서 숨지고 광복이 되자 문우 신석초·김광균·오장환·이용악은 20여 편의 시를 수습해 『육사시집』을 냈다. 동생 원조(源朝)는 발문에서 “실로 그 발자취는 자욱자욱이 피가 고일 만큼 신산하고 불행한 것이었다”고 썼다. 소개한 작품은 그가 남긴 유일한 시조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