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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상 첫 핵민방공 훈련 8월 실시…北위협에 尹 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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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부가 사상 처음 북한의 핵공습 상황을 상정한 '핵민방공 훈련'을 추진한다. 북한의 ‘핵사용 문턱’이 날이 갈수록 낮아지면서 실제 핵 공격 가능성에 대비한 훈련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달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414차 민방위의 날, 민방공 대피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414차 민방위의 날, 민방공 대피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북한의 핵공습에 대비한 민·관·군·경 통합 훈련을 오는 8월 을지연습 때 실시하기로 하고 세부 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아직 방식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관계 부처별 토론식 도상연습(Table-Top Exercise·TTX)은 물론 핵공습을 가정한 사이렌 등 경보에 이어 민·관·군·경의 역할 구분에 따른 실제 대피 및 대응 훈련이 진행될 예정이다.

여권의 핵심 관계자는 이와 관련 “핵공습 훈련은 윤석열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안다”며 “관련 상황의 상정과 작전 계획 등을 놓고 여러 전문가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민방공 훈련은 재래식 무기나 화생방 테러에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북한의 핵공격 상황을 상정한 훈련은 사실상 처음이다. 이번 훈련은 "북한이 핵무력 법제화를 공식화하고 전술핵 선제 사용 의지를 드러낸 만큼 핵무기 발사의 예방과 억제에 실패할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다. 동시에 하반기 을지연습을 계기로 국가 핵방호체계를 점검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특히 북한의 핵·미사일은 이미 현실적인 위협으로 자리잡았지만, 이에 대비한 전국민적 비상 대비 태세는 여전히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지난달 31일 수도권에 울린 북한 발사체 경보를 놓고 우왕좌왕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북한이 휴전 이후 처음 북방한계선(NLL) 이남에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떨어뜨렸을 때도 뒤늦은 대응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오전 6시29분 북한 발사체에 발송된 위급재난문자 내용. 이후 행정안전부는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1일 오전 6시29분 북한 발사체에 발송된 위급재난문자 내용. 이후 행정안전부는 ″서울특별시에서 발령한 경계경보는 오발령″이라고 정정했다. 연합뉴스

한국은 북핵 위협의 최전선에 노출돼 있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 시스템은 주변국과 비교해 오히려 느슨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경우 2017년 11월 29일 북한이 화성-12형을 발사하자 같은 해 12월 하와이에서 민방공 대피훈련을 벌였다. 일본은 북한 미사일이 본토에 접근한다고 판단되면 발사 1분 만에 전국순시경보시스템(J-ALERT)을 발령하고 관련 지방자치단체의 사이렌과 스피커로 대피 방송을 내보내는 등 수시로 실전 같은 훈련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간 북한 핵공격을 상정한 민방공 훈련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청와대와 합동참모본부는 ‘북한 핵위협 대비 정부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세부 추진방안 마련하려고 했지만, 해당 계획은 논의에만 그친 채 실행되지 못했다. 정부 소식통은 “이후 지난 정부에서도 관련 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시됐지만 국민 불편과 불안감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미뤄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에 대한 대비와 관련한 기류 변화의 계기는 지난 2월 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중앙통합방위회의였다고 한다. 당시 윤 대통령은 7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이 직접 해당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통합방위태세와 경보 체계를 보고 받고 이에 대한 정밀 점검을 지시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국가 핵민방위 체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한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5월 전국 단위 민방공 훈련을 2017년 8월 이후 처음 실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6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56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핵공격 대비 훈련은 일단 북한의 전술핵 공격을 가정한 국지적 상황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전면적 핵공격을 가정할 경우 을지연습의 작전계획 자체를 마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에 대해 “우선 인구가 희박한 지역에 대한 핵공습 상황을 가정해야 전체적인 을지연습에 핵공습에 대비한 상황을 반영하기 용이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를 시작으로 향후 전국적 전면 핵공습에 대비한 훈련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국가 핵민방위 체계의 초기 수립 단계인 만큼 기본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재완 국민대 정치대학원 안보전략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에 “경보와 안내 체계, 피해 지역 이탈과 대피 훈련 등의 현주소를 우선 들여다보고 미흡한 점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민방위기본법을 개정해 핵공습 대비 훈련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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