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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명 숨진 난민선 '의문의 7시간'…그리스, 알고도 무시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난민 밀입국선이 침몰해 600명 이상이 사망한 가운데,'반(反)이민' 기조로 국경 통제를 강화한 그리스 정부가 난민을 의도적으로 방치해 최악의 인명사고를 초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13일(현지시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연안에서 낡은 어선에 난민 수백 명이 탑승해 있다. 해당 난민선이 침몰하면서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공개한 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연안에서 낡은 어선에 난민 수백 명이 탑승해 있다. 해당 난민선이 침몰하면서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가 공개한 사진. AF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 가디언은 선박 위치추적 회사인 마리트레이스의 위성항법장치(GPS) 항로 추적 결과, 그리스 민간 선박 '럭키 세일러'와 '페이스풀 워리어' 등이 침몰 전 엔진 고장으로 멈춰 서있던 난민선 주변에서 최소 4시간 동안 배회했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당국에 따르면 이 민간 선박 2척은 침몰 전날인 13일 오후 3시쯤 지중해상에서 조난당했다는 난민선의 연락을 받고 물과 음식 등 보급품을 전달하러 나갔다. 그로부터 4시간가량 난민선 주위를 맴돌았다는 가디언의 보도가 나온 것이다. 그리스 당국이 난민선의 항적과 위급 상황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가디언의 보도 내용은 같은 날 오후 3시 30분쯤 "해안 경비대가 헬리콥터로 파악해 보니 난민선은 안정적인 속도와 정상 항로를 운항 중이었다"고 보고한 그리스 당국의 공식 입장과 배치된다. 앞서 지난 18일 BBC방송도 해당 난민선이 침몰하기 전 최소 7시간 동안 운항을 멈춘 채 같은 위치에 떠 있었던 것으로 GPS 항로 추적 결과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그리스 당국은 BBC 보도를 즉각 부인했다.

그리스 적십자사가 지난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난파한 난민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리스 적십자사가 지난 14일 그리스 남부 해안에서 난파한 난민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번 사고는 2015년 1100명이 사망한 지중해 난민선 침몰 사고 이후 최악의 참사로 꼽힌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의 진상 규명은 오락가락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가 "침몰 전 선박은 정상 운항 중이었고, 밧줄로 결박한 적 없다"고 밝혔으나, 현장에 출동한 해안 경비대가 밧줄로 난민선을 견인하려다 전복이 발생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이후 그리스 정부는 "난민선 위 난민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뱃머리에 밧줄 하나를 짧게 묶었다"고 번복했다.

길이 25m의 낡은 난민선엔 750~800명이 빼곡히 승선해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출발해 지중해를 건너 남유럽 이탈리아를 향하던 중에 지난 14일 새벽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연안에서 참변을 당했다.

현재까지 최소 78구의 시신이 발견됐고, 생존자는 104명이다. 아직 실종자에 대한 수색 작업이 진행 중이다. 충격에 빠진 그리스는 사고 직후 3일간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했고 오는 25일 총선을 앞둔 각 정당은 공식 선거 운동을 일시 중단했다.

그리스 당국이 더 신속하게 구조에 나섰어야 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그리스 해안경비대는 "침몰 3시간 전에 표류하던 난민선을 구조하기 위해 도착했으나, 난민들이 어떤 도움도 거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난민 인권단체들은 해당 난민선은 침몰하기 15시간 전부터 조난당했다고 수시로 구조 요청을 했다고 반박했다. 유엔은 그리스 정부에 사고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그리스 앞바다에서 배가 전복돼 목숨을 잃은 난민선 생존자들이 지난 16일 그리스 칼라마타 항구에서 아테네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리스 앞바다에서 배가 전복돼 목숨을 잃은 난민선 생존자들이 지난 16일 그리스 칼라마타 항구에서 아테네로 가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이번 사고 선박 내에서 국적과 성에 따른 차별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생존자들은 진술서에서 "파키스탄 국적자들이 전복 시 생존 가능성이 떨어지는 갑판 아래층으로 밀려났다"며 "여성과 어린이도 짐칸에 태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확인된 생존자는 모두 성인 남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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