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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공동묘지" 교황도 개탄…난민 핏빛 물든 휴양섬 [지도를 보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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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 나라의 최남단 섬입니다. 어디일까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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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①투명한 코발트빛 바다에 뜬 배가 공중부양하는 듯한 착시 현상으로 유명한 곳.

②난민 문제를 다룬 영화 ‘화염의 바다(Fire at Sea)’ 배경지. 이 작품은 2016년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③어원은 고대 그리스 섬 이름인 '라파두사'. 섬에 바위가 많아 바위를 뜻하는 그리스어 '레파스'에서 유래. 또는 뱃사람들을 위해 세운 등대 때문에 횃불을 의미하는 '람파스'에서 왔다는 설도.

주변 국가들을 살펴볼까요.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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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이탈리아의 남쪽 끝에 위치한 ‘람페두사 섬’입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였다가, 이후 오랜 세월 무인도로 방치됐죠. 현재처럼 시칠리아 섬의 부속도서로, 이탈리아령이 된 건 1861년입니다.

이 섬은 북쪽으로는 유럽,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사이에 끼어있습니다. 이탈리아령이지만 거리상으로 이탈리아 본토보다 아프리카와 더 가깝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인 튀니지에선 113㎞,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섬과는 205㎞ 떨어졌습니다.

이런 지리적 위치 때문에, 람페두사 섬은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징검다리가 됐습니다.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등으로 아프리카 치안이 혼란해지면서 폭증한 난민들은 람페두사 섬을 중간 거점 삼아, 위험천만한 보트에 올라타고 지중해에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지중해를 통한 아프리카 난민 유입이 급증하자 이탈리아 정부가 11일(현지시간) 6개월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진은 2017년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가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

지중해를 통한 아프리카 난민 유입이 급증하자 이탈리아 정부가 11일(현지시간) 6개월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사진은 2017년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가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모습.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 초부터 지난 16일까지 람페두사 등 이탈리아로 들어온 난민 수는 3만 명이 넘습니다. 유럽 전역에 도착한 난민(4만3000여명)의 75%, 지난해 같은 기간(7900명)의 4배에 달합니다. 특히 지중해의 물결이 잔잔해진 날이면, 하루 1000명의 난민이 람페두사 섬에 상륙할 정도입니다.

스페인·그리스 등 다른 남유럽 국가들이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높이자, 난민들은 이탈리아로 대거 밀려들면서 람페두사 섬도 난민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겁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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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면적의 6배가 조금 넘는 20.2㎢ 크기에 5000여 명이 사는 조그마한 섬인 람페두사는, 애초에 연간 수만 명씩 밀려들어오는 난민을 수용할 여건이 안됩니다. 심지어 이곳엔 난민센터가 단 한 곳뿐입니다. 최대 수용 인원이 400명인데, 이미 3000명을 넘긴 상태죠.

난민센터 소장은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이 많고, 보호자 없는 미성년자도 있다"며 "우리는 긴급 상황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마실 물도 부족하고 거리엔 쓰레기가 넘쳐나는 등 '카오스(무질서 상태)'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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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극우 정치인들은 람페두사 섬의 이같은 상황을 반(反)난민 정서를 끌어올리는 데 이용하고 있죠.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선거철마다 람페두사 섬으로 달려가 난민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며 표몰이를 하는 식입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극우 정당 북부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는 람페두사를 찾아 "이탈리아는 유럽의 난민촌이 아니다"라며 "강간·약탈 등 범죄를 일삼는 '가짜 난민'을 추방하겠다"고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망명 신청한 난민들을 향해 "침략자"로 지목하기도 했습니다.

극우 성향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급기야 지난 11일 '난민 폭증'을 이유로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까지 체류 허가를 받지 못한 불법 난민들은 본국 송환 등 강제 추방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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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죽음 당한 난민들의 무덤

휴양지로 유명한 람페두사 섬의 또다른 별명은 '유럽 최대 공동묘지'입니다. 안전벨트 하나 없는 좁고 낡은 불법 보트에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은 채 망망대해를 나선 난민들이 람페두사 섬 근처에서 침몰·조난 사고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끊이지 않고 있어서입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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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10월엔 섬 인근에서 난민 368명이 한꺼번에 바다에 빠져 숨진 사건이 발생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람페두사 섬의 한 병원 의료진은 "이탈리아엔 남은 관이 없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죠. 주민들은 익사한 난민들을 추모하기 위해 바다 앞에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란 이름의 위령비를 세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즉위 후 첫 공식 방문지로 람페두사 섬을 찾았습니다. 교황은 "이곳은 묘비도 없이 차가운, 유럽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라며 개탄했습니다.

올해도 인명 사고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엔 튀니지 해안에서 난민선 5척이 침몰하며 9명이 사망하고 67명이 실종됐죠. 불과 사흘 뒤 같은 해상에서 난민선 3척이 가라앉으며 29명이 물에 빠져 숨졌습니다.

지난 2월 이탈리아 서남부 칼라브리아주(州) 동쪽 해안에선 어린이를 포함해 난민 200여 명을 태운 선박이 난파하며 76명이 익사했습니다. 현재까지 지중해를 건너다 목숨을 잃은 난민은 총 569명으로, 2017년 이후 같은 기간 가장 많은 사망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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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은 왜 이토록 위험천만한 불법 보트에 몸을 실을까요. 이주·난민 전문가인 제니 필리모어 영국 버밍엄대 교수는 CNN에 "난민들은 고향에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에 내몰린 경우가 많다"면서 "도망치는 게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습니다. 난민들에겐 보트를 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겁니다.

지난해 1월 리비아 해안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고무보트에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고무보트 위에서 표류됐다. 스페인 비정부기구가 이들에게 구명조끼를 건네며 구조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해 1월 리비아 해안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고무보트에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이 고무보트 위에서 표류됐다. 스페인 비정부기구가 이들에게 구명조끼를 건네며 구조하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특히 중동·아프리카의 정치적 혼란상은 난민들의 등을 떠밀고 있습니다. UNHCR에 따르면, 올해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중 58%는 튀니지에서 들어왔습니다. 지난해(31%)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겁니다.

최근 튀니지 정부는 내전 중인 사하라 이남(나이지리아·소말리아 등)에서 들어오는 난민에 대한 적대 정책을 펴고 있는데요. 지난 2월 카이스 사이에드 튀니지 대통령은 "튀니지로 불법 입국하는 난민들은 튀니지의 인구 구성을 바꾸려는 범죄자"라며 노골적인 혐오 발언을 쏟아냈죠.

내전을 피해 튀니지를 찾은 난민들이 결국 이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또다시 유럽으로 향하게 된 겁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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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솅겐조약'도 난민을 강하게 유혹합니다. 이 조약에 따르면, 솅겐조약 가입국(유럽 27개국) 중 한 나라에 입국하면, 다른 나라로는 국경 검문 없이 무비자로 자유롭게 넘어갈 수 있게 됩니다. 유럽 각지를 자유롭게 오가며 거처를 찾을 수 있단 점이 난민들을 끌어당기는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죽음의 고비를 넘고, 겨우 살아남아 유럽 땅에 발을 디딘 이들도 기근과 인신매매 등 또다른 비극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서로 떠넘기는 EU 

사실 난민 문제는 이탈리아뿐 아닌 '유럽 전체'가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EU 국경·해안 경비대는 지난해 허가 없이 EU에 입국하려는 불법 난민들의 시도 건수가 약 33만 건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2016년 이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EU는 난민의 구속력 있는 국가별 의무배분 문제에 합의하지 못하는 등 유럽의 난민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대표적인 난민 수출국인 중동·북아프리카 국가에 대해 직접적인 압박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 사실상 손 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현재 유럽 각국은 난민을 막기 위해 저마다 철책을 쌓으며 '폭탄 돌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영국은 도버 해협을 건너 들어오는 불법 난민을 모두 추방하고 재입국을 막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거친 튀니지 이주민에 대해 입국을 거부하는 등 외교 갈등으로도 비화했습니다.

본래 유럽은 중동·아프리카 난민 수용에 우호적이었던 곳입니다. 하지만 경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며 분위기가 반전됐습니다. 자국민도 어려운 상황에, 난민을 위해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복지비를 쓸 여력이 없어진 겁니다. 일부 난민들이 일으킨 범죄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반 난민 정서도 강해져, 극우 세력이 힘을 얻는 발판이 되는 등 정치적 부담으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달 7일 런던에서 불법 이주민 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수낵 총리가 선 단상에 '보트를 멈춰라(STOP THE BOATS)'라고 쓰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지난달 7일 런던에서 불법 이주민 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수낵 총리가 선 단상에 '보트를 멈춰라(STOP THE BOATS)'라고 쓰여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반이민·반이슬람을 주창하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해 9월 집권한 멜로니 총리는 지중해의 난민 구조선을 "불법 이민 셔틀"로 규정하며, 난민 구조선의 구조 활동 횟수를 줄이고 이탈리아 정부가 미리 지정한 항구에만 입항하도록 하는 규제 법안을 제정했습니다.

최근엔 리비아 해안경비대와 합의 하에 유럽행 난민들의 입국 자체를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EU 쪽으로는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한 더욱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난민 수용을 위한 재정적인 지원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얼마 전엔 이탈리아와 몰타 사이 해상에서 800명을 태운 난민선에서 보낸 구조 요청을, 양국이 모두 열흘 이상 방치한 일도 있었습니다. 결국 난민선을 구조한 건 비정부기구(NGO)였죠. 구조 당시 난민선은 토사물로 뒤덮여 있었고, 난민들은 심각한 탈수 증세를 겪고 있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무관심과 방치 속에, 수많은 난민들이 희생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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