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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예외적인 ‘김남국 방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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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김기환 경제부 기자

국회도 마음만 먹으면 일을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코인 투자’ 의혹이 처음 터진 건 지난달 5일이었다. 여야가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공개 대상에 가상자산(암호화폐)을 포함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일명 ‘김남국 방지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건 같은 달 25일. 논란이 일고 법안이 통과하기까지 딱 20일 걸렸다. “이때다, 때려잡자”는 여당과 “급한 불부터 끄자”는 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여야의 의기투합은 드물고도, 선택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법안 2만4141건(정부안 포함) 중 1만5125건이 폐기됐다.(폐기율 62.6%) 가결한 법안은 3195건(수정 포함)에 불과했다.(가결률 13.2%) 법안을 발의해 처리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577.2일이었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김남국 무소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실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김남국 방지법처럼 단순한 데다, 대의명분까지 갖추고도 국회에서 잠자는 법안이 수두룩하다. 재정준칙이 대표적이다. 재정준칙은 정부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기금을 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60%를 초과할 경우 적자 폭을 2% 내로 유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처음 1000조원을 넘긴 국가 채무가 폭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취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도입할 만큼 ‘글로벌 스탠더드’다.

예산을 아껴 쓰자는 내용이다 보니 의원 입장에선 시큰둥하다. 2020년 10월 문재인 정부 당시 재정준칙을 법제화하기로 한 뒤 32개월째 논의가 공전하는 이유다. 게다가 야당은 연간 정부 공공조달액의 최대 10%(약 7조원)를 사회적기업 3만5000여 곳에서 의무 구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재정준칙과 연계해 통과시켜야 한다는 조건까지 내걸었다.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하더라도 ‘표가 안 되는’ 법안의 운명이 이렇다.

정부 부처 중 가장 힘세다는 기획재정부가 밀어붙이는 재정준칙이 이럴진데 키를 잡으려는 주체도 없고, 더 먼 미래를 다루는 연금·노동·교육개혁 법안은 말해 뭐하랴. 저출산 고령화 대책? 난망하다. 한 3선 의원에게 법안의 신속한 통과 조건을 물었다. “아주 빨라야 법안 통과까지 6개월 걸린다. 여야가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법안소위에서 설득도 잘해야 한다. 국민 관심을 끌 수 있으면 더 좋다. 무엇보다 의원에게 도움이 돼야 한다”고 대답했다. 좋은 법안 빨리 처리하자는데, 의원님 보시기엔 갖춰야 할 조건이 많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