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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3대에 걸친 붓의 장인 ‘필장’과 함께 전통 붓의 세계로

중앙일보

입력

기원전부터 기록·그림도구였던 붓 
포유류 털뿐 아니라 닭털·볏짚으로도 만들었죠 

붓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도구 중 하나죠. 연필·펜·컴퓨터·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붓은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축적한 지식을 보존해 문명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런데 이러한 도구적 측면 외에도 붓은 만드는 과정만 3개월이 넘게 걸리는 예술품이기도 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전통 붓 전문 박물관을 찾아 3대에 걸쳐 붓을 만들어 온 장인을 만나 다채로운 붓의 세계와 거기에 깃든 장인정신을 들여다봤습니다.

유정현(서울 목동초 5)·구시연(서울 월촌초 6)·추승찬(서울 역촌초 5·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전통 붓 장인을 만나 우리 붓의 역사와 예술성에 대해 알아봤다.

유정현(서울 목동초 5)·구시연(서울 월촌초 6)·추승찬(서울 역촌초 5·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전통 붓 장인을 만나 우리 붓의 역사와 예술성에 대해 알아봤다.

강원도 춘천시에 자리한 붓이야기박물관은 우리 고유문화를 보존하는 데 중요한 도구였던 붓의 역사를 알리고, 예술품으로서 붓의 가치를 조명하기 위해 2017년 행정자치부·강원도·춘천시의 지원을 받아 설립됐어요. 전통 붓의 역사·종류와 제작 과정을 담은 전시 콘텐트를 보고 붓 만들기 등 관련 체험도 할 수 있죠.

붓이야기박물관은 3대가 전통 붓 제작이라는 가업을 잇고 있는 장인정신이 깃든 공간이기도 합니다. 박경수 붓이야기박물관 관장은 1974년부터 전통 붓을 만들어 온 붓의 장인, 즉 필장(筆匠)인데, 1985년부터 춘천에 터를 잡아 강원도의 재료를 이용해 붓을 제작하고 있어요.  2013년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기도 했죠. 박 필장은 부친과 스승에게 전통 붓 제작 기술의 기초를 전수받았고, 박 필장의 아들들도 무형문화재 춘천필장 이수자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고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이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박 필장과 그의 아들 박창선 학예사가 인사를 건넸죠.

박경수 필장은 1974년부터 붓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2013년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박경수 필장은 1974년부터 붓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2013년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다.

박물관 내부에는 다양한 형태의 붓들이 진열돼 있었어요. 일단 붓촉의 색깔이 우리가 익히 봤던 흰색뿐만 아니라 빨강·초록·주황 등 여러 가지였죠. 또 붓촉의 재료도 염소·소 등 포유류의 털이 아닌 새의 깃털, 사람의 머리카락, 볏짚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붓의 크기도 다양했어요. 화방이나 문구점에서 보던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붓은 물론, 소중 학생기자단의 키와 높이가 비슷한 거대한 크기의 붓도 있었죠.

색깔과 크기는 다양하지만, 붓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붓대 부분인 필관(筆管)과 붓촉인 초가리 그리고 붓뚜껑이죠. 초가리는 다시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중심이 되는 심소(芯素), 심소를 바깥쪽에서 둘러싸는 부분인 의체(衣體)로 구분해요. 붓에 따라서 심소와 의체 사이에 중소(中素)로 불리는 털을 혼합하기도 하죠.

동물의 털을 사용하는 모필 기준으로 의체는 보통 윤기가 나고 매끄러우며, 가늘고 긴 형태 가장 좋은 털을 사용해요. 반면 심소의 경우에는 좀 더 굵으며 거칠고 의체보다는 좋지 않은 부위의 털을 사용하죠. 심소가 초가리의 안쪽에서 힘을 지탱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창선 학예사(맨 오른쪽)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붓의 역사와 제작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박창선 학예사(맨 오른쪽)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붓의 역사와 제작 방법에 관해 설명했다.

전시실을 둘러보던 정현 학생기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초가리에 필관이 달린 형태의 붓은 언제 처음 만들어졌나요"라고 말했어요. 박 학예사가 "기원전 3세기 진(秦)나라 몽염 장군이 최초로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어요"라고 설명했죠. 하지만 그 이전 시대인 은(殷)나라 시대 갑골 문자에도 붓으로 쓴 흔적이 확인되며, 문헌상으로도 여러 설이 있기 때문에 몽염이 살던 시대 이전에도 현대와 같은 형태의 붓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 탄생한 뒤 발전을 거듭하던 붓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졌어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붓은 경상남도 창원시 다호리 제1호 고분에서 출토된 붓 5점이에요."(박 학예사) 창원 다호리 유적은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에 위치하는 시대를 뜻하는 원삼국시대 전기에 해당하는데요. 한반도에서의 붓 사용 시기가 기원전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유물이죠.

붓대에 해당하는 필관도 흔히 본 대나무 외에 옥·금·은·상아·소뿔·도자 등 여러 재료로 만들 수 있으며, 크기도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다.

붓대에 해당하는 필관도 흔히 본 대나무 외에 옥·금·은·상아·소뿔·도자 등 여러 재료로 만들 수 있으며, 크기도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다.

박 학예사의 설명을 듣던 승찬 학생기자가 "삼국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등 과거에 붓은 주로 어떤 용도로 사용했나요?"라고 궁금해했어요. "지금의 볼펜처럼 기록용으로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썼죠. 또 건축에도 사용했어요. 집의 벽·기둥·천장 등에 여러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리는 걸 단청(丹靑)이라 하는데, 이때도 붓이 필요했죠." 현대에 전통 붓은 글을 쓰는 서예와 함께 사군자·불화·민화를 그릴 때는 물론, 글씨의 모양·색상·크기에 상징적 의미를 담는 시각 예술인 캘리그래피에도 사용돼요.

붓의 초가리 재료 따라 다양하게 제작

전통 붓의 초가리 재료는 흔히 염소·소 등 포유류 동물의 털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다양한 범위의 재료가 쓰인답니다. 초가리 재료는 크게 동물성과 식물성으로 구분해요. 동물성 재료는 족제비·노루·청설모·말·사슴·돼지·토끼·호랑이·쥐·늑대·소·개·담비·염소 등 포유류의 털을 이용한 모필(毛筆)과 공작·닭·꿩 등 조류(鳥類)의 깃털로 만든 깃털붓으로 나뉘죠. 식물성 재료는 띠풀·갈대·대나무·칡넝쿨 등 섬유질이 긴 식물의 줄기·나무 등을 이용하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공작의 꼬리털로 만든 붓을 살펴봤어요. 공작의 꼬리털을 그대로 살리고 붓대에는 용을 그려 넣은 붓은 글씨를 쓰는 도구의 차원을 뛰어넘은 하나의 예술품이었죠.

전통 붓은 초가리와 필관의 재료를 다양하게 조합해서 만들 수 있다. 사진은 공작·장닭·은계(위쪽부터)의 깃털로 초가리를 만든 붓들.

전통 붓은 초가리와 필관의 재료를 다양하게 조합해서 만들 수 있다. 사진은 공작·장닭·은계(위쪽부터)의 깃털로 초가리를 만든 붓들.

필관 제작에 가장 많이 이용하는 재료는 대나무이지만, 과거 옥·금·은·상아·소뿔·도자(陶瓷)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했죠. 붓이야기박물관 전시실에서는 승찬 학생기자의 키만 한 거대한 붓을 볼 수 있었는데요. 초가리는 말의 꼬리털인 말총, 붓대는 코끼리의 엄니인 상아로 만든 것이죠.

닭의 털로 만든 계모필(鷄毛筆)은 박 필장의 대표작이기도 합니다. "과거 제가 아끼던 앵무새가 죽었는데, 그 새를 기리고 간직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어요.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앵무새였기에 그 깃털로 붓을 만들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죠"라며 깃털붓 제작 계기를 밝혔어요.

이후 박 필장의 필방이 있는 강원도와 춘천만의 색깔을 가진 붓을 제작하기 위해 고민한 끝에 계모필도 탄생했죠. 그런데 알고 보면 계모필은 선조들도 제작했던 우리 전통 붓이에요.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의 저술 총서인 『청장관전서』 11권에는 "계모필을 비스듬히 뽑아 들었네(斜拈鷄毛筆)"라는 문장이 등장해요. 또 정약용의 『다산시문집』 제7권에서는 "계모필로 베개 맡의 벽에다 기록하노라(鷄毛筆記枕邊牆)"라는 문구를 찾을 수 있죠. 하지만 명칭이 언급만 됐을 뿐, 만드는 방법은 전하지 않아요. 박 필장은 5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계모필 제작에 성공했죠.

흰색 닭털을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한 계모필. 깃대가 살아있어 캘리그라피를 할 때 다양한 효과를 줄 수 있다.

흰색 닭털을 여러 가지 색으로 염색한 계모필. 깃대가 살아있어 캘리그라피를 할 때 다양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하나의 액자에 11개의 계모필이 전시된 작품을 살펴봤어요. 박 필장이 흰색 닭털을 빨강·주황·노랑·초록·보라·파랑 등 여러 색으로 염색해서 만든 겁니다. 가까이서 보자 부드러운 털 사이로 깃대의 형태도 남아있었죠. 즉, 곱게 다듬은 깃털을 묶은 모양인 겁니다. 그래서 초가리가 긴원뿔 모양인 일반적인 붓과는 형태도 달라요. 박 필장이 계모필을 들고 화선지에 글씨를 써 내려 갔는데, 붓으로 화선지 표면을 긋자 획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형태의 선이 나타났어요. 이런 의외성이 계모필의 매력이죠. 그래서 캘리그래피를 할 때 계모필로 효과를 주면 훨씬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죠.

시연 학생기자가 "이런 붓을 제작하실 때 가장 힘이 드는 부분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박 필장이 "초가리의 재료가 되는 동물 털의 기름기를 제거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워요. 동물은 사람처럼 샴푸와 린스로 털을 관리하지 않죠. 그리고 (야외에서 비를 맞으니) 방수를 위해 털에 기름기가 많아요. 이걸 제거하기 위해 털 위에 재를 뿌려서 다리미질을 해 열을 가하는데, 기름기를 덜 제거하면 붓이 먹물을 잘 머금지 못해요. 반면 기름기를 너무 많이 제거하면 붓의 수명이 짧아지죠. 특히나 닭털은 포유류의 털에 비해 기름기가 훨씬 많아서 손이 많이 가요"라고 답했어요.

붓이야기박물관에서는 아기가 엄마 배 속에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머리카락인 배냇머리로 만든 붓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붓을 태모필이라 하는데요. 박 필장은 아들이 태어난 후 아이의 머리카락으로 붓을 만들어 주면 평생 기념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배냇머리를 이용해 붓을 만들었죠.

공작의 꼬리 깃털로 만든 거대한 붓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붓이야기박물관에서는 고정관념을 깨는 전통 붓도 만날 수 있다.

공작의 꼬리 깃털로 만든 거대한 붓을 살펴보는 소중 학생기자단. 붓이야기박물관에서는 고정관념을 깨는 전통 붓도 만날 수 있다.

박 학예사가 "초가리의 끝을 호(毫)라 해요. 배냇머리는 아기가 출생한 후 한 번도 깎지 않은 갓난아이의 머리털이기 때문에 붓을 만들기 적합한 재료입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머리카락을 잘랐을 경우 털끝에 단면이 생겨서 초가리로 만들기 적합하지 않아요. 초가리가 호를 향해 원뿔 모양으로 모이지 않고 흩어지기 때문이죠"라고 말했어요.

닭털붓과 태모필 외에 전통적 요소로 장식한 붓도 붓이야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어요. 초가리는 꿩·타조의 깃털과 볏짚 등 여러 동·식물성 재료로 만들고, 필관은 전통 혼례복을 입은 신랑과 각시의 모습을 조각해 장식했죠. 우리에게 익숙한 염소·소 등 포유류의 털로 만든 붓부터 닭·공작의 깃털, 볏짚 등 다소 생소한 재료로 만든 붓까지. 전통 붓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붓 만들기

붓이야기박물관에서는 초가리의 재료인 털을 직접 만지고 다뤄보며 나만의 붓을 만들 수 있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 붓 만들기 체험에 도전했죠. 박 필장이 "제가 하는 걸 먼저 잘 보세요"라며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염소털·소털·종이띠를 건넸어요.

붓이야기박물관에서는 전통 붓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나만의 붓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붓이야기박물관에서는 전통 붓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나만의 붓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앞서 붓의 구조를 설명할 때 초가리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며 중심이 되는 부분을 심소, 심소를 바깥쪽에서 둘러싸는 부분을 의체로 구분한다고 했죠. 먼저 소털을 의체로 삼아 적당량을 종이띠 위에 놓은 뒤, 도구로 눌러 비벼주면서 반듯하게 펼쳐줍니다. 펼친 의체 위에는 심소 역할을 하는 염소털을 올리고 종이띠를 손가락으로 잡아 의체로 심소를 말아 종이띠를 붙여줍니다.

이 과정까지 하면 영어 알파벳 유(U)자 모양의 초가리가 되는데요. 초가리의 밑동 부분을 엄지와 검지로 잡고 바닥에 툭툭 두드려 털들이 밑동까지 내려오도록 정렬해주세요. 초보자의 경우 초가리의 밑동을 바닥에 올바르게 세우기도 쉽지 않죠. 박 필장이 "밑동을 바닥과 90도 각도로 유지한 상태에서 스냅을 이용해 바닥으로 살짝 던져야 해요. 그랬을 때 밑동에서 맑은 느낌의 '딱' '딱' 소리가 나면 잘하는 겁니다"라고 설명했어요.

박 학예사는 "만약 10cm 길이의 초가리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전통 붓은 10cm짜리 털만 쓰지 않아요. 그러면 붓끝이 일자 모양이 될 테니까요. 10cm짜리 초가리를 만들려면 그 안에 5cm, 7cm짜리 털도 있어야 해요. 이렇듯 초가리에 사용된 털들의 길이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털들이 밑동까지 잘 내려오도록 정렬해 줘야 해요"라고 덧붙였죠.

전통 붓 한 자루가 탄생하려면 3개월이 넘는 시간과 100여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할 만큼 손이 많이 간다.

전통 붓 한 자루가 탄생하려면 3개월이 넘는 시간과 100여 번의 단계를 거쳐야 할 만큼 손이 많이 간다.

1차 정렬이 끝나면 종이띠에 테이프를 붙여 고정하고, 초가리 밑동을 아까처럼 바닥에 살짝 던져서 2차 정렬을 합니다. 그리고 치게(쇠빗)으로 초가리를 빗으면서 삐져나오거나 잘린 털을 찾아 제거해요. 이후 실로 초가리 밑동을 묶고, 접착제로 붓대와 결합하면 우리가 아는 전통 붓의 형태가 되죠. 이 상태에서 우뭇가사리풀을 먹여서 초가리가 호를 향해 뾰족한 모양이 되도록 다듬으면 나만의 전통붓 완성. 소중 학생기자단의 붓 만들기를 지켜보던 박 학예사가 "여러분은 붓을 만드는 과정에서 95%는 미리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한 거예요. 그런데도 5%를 채워서 완성하기가 쉽지 않죠?"라고 말하며 미소 지었어요.

1층 전시실 옆에서는 내가 만든 붓으로 화선지에 글을 쓰는 체험을 할 수 있어요. 모양을 잡은 붓을 물로 충분히 풀어주고, 화선지 위에 표시된 사각형 안에 내가 원하는 글자들을 쓰는 것이죠. 박 필장이 시범을 보이며 "엄지와 검지로 필관 아래쪽을 잡고 붓대를 90도로 세워서 붓끝으로 글씨를 써보세요. 글씨가 사각형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집중해서 쓰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질 거예요"라고 말했어요.

소털을 의체로, 염소털을 심소로 삼아 직접 만든 붓으로 박경수 필장의 지도 하에 화선지에 글씨를 써 본 소중 학생기자단.

소털을 의체로, 염소털을 심소로 삼아 직접 만든 붓으로 박경수 필장의 지도 하에 화선지에 글씨를 써 본 소중 학생기자단.

직접 만든 붓으로 화선지에 글씨를 쓰기 시작한 소중 학생기자단. 승찬 학생기자는 "붓이야기 박물관"이란 단어를, 정현 학생기자는 "유정현 굿(Good)"이란 문장을, 시연 학생기자는 "시연, 붓, 시작"이라는 3개의 단어를 적었어요. 내 손으로 만든 붓으로 글씨를 쓰니 학교에서 받았던 서예 수업과는 다른 새로운 기분이었죠.

"저는 1974년부터 붓을 만들었는데, 당시만 해도 붓을 만드는 사람이 전국에 500~600명은 됐어요. 그런데 중국 등에서 수입된 붓들이 국내 시장에 팔리다 보니 붓을 만드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었죠. 다행스럽게도 저의 아들들이 제가 걸어온 길을 따른다니 마음이 흡족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이 쓰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제 마음에 정말 만족스러운 붓은 아직 못 만들어 봤어요. 언젠가는 꼭 만들어 봤으면 해요."(박 필장)

서예 시간 준비물로만 기억하던 전통 붓. 알고 보니 원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는 물론, 창작자의 의도를 담아 다양한 재료로 응용해 만들 수 있는 데다 장인 정신이 깃든 예술품이었네요. 소중 독자 여러분도 전통 붓의 매력에 한 번 빠져보세요. 규격화된 공산품에서는 만날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이 여러분을 기다린답니다.

붓이야기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종류의 전통 붓을 살펴보고 나만의 붓을 만들어 본 유정현·추승찬·구시연(왼쪽부터) 학생기자.

붓이야기박물관에 전시된 다양한 종류의 전통 붓을 살펴보고 나만의 붓을 만들어 본 유정현·추승찬·구시연(왼쪽부터) 학생기자.

전통 붓의 용도별 분류

우리나라 전통 붓은 용도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각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세요. (사진: 붓이야기박물관)

한문붓: 서예를 할 때 보통 많이 사용하는 붓 중의 하나. 초가리를 활용하는 면이 넓기 때문에 한글붓에 비해 초가리를 크고 두껍게 만들어요.

한글붓: 한글을 쓸 때는 초가리의 끝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초가리의 끝맺음을 날카롭게 하며, 초가리가 한문붓과 사군자붓의 중간 정도의 탄력성을 가집니다.

사군자붓: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그릴 때 쓰는 붓. 용도를 고려해 초가리를 서예용 붓보다 탄력성이 좋고, 길고 예리하게 만들어요.

산수화(동양화)붓: 사군자용 붓보다 초가리의 길이가 짧아 붓끝의 힘이 좋아요. 붓의 끝이 완만하게 모여 뾰족한 형태죠.

채색붓: 그림을 그리거나 채색하려면 손놀림이 빨라야 때문에 초가리·필관의 길이가 다른 붓에 비해 짧아요. 초가리의 끝부분도 예리하지 않고 둥글게 만들어요.

면상붓: 사람의 눈썹·머리카락 등 그림의 세밀한 부분을 그릴 때 사용하는 붓이에요. 용도를 고려해 초가리가 작고, 그 끝도 예리하게 제작해요.

하나의 붓이 만들어지기까지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붓이 한 자루 탄생하려면 약 3개월이 넘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과정도 세부적으로 나누면 100여 단계나 되죠. 소중 친구들을 위해 전통 붓 제작 과정을 모필을 기준으로 간략히 정리했어요. (사진: 붓이야기박물관)

1. 원모 채집: 동물의 털가죽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일주일 정도 불려 기름기를 어느 정도 제거한 뒤, 초가리의 재료인 원모(털)를 채집한다.

2. 원모 선별: 채집한 털은 치게(빗)를 이용해 솜털과 가죽 찌꺼기 등을 제거하고, 품질별·길이별로 구분해 심소·중소·의체용으로 나눈다.

3. 기름기 제거: 털을 바닥에 펼친 뒤 그 위에 왕겨를 태운 재를 뿌리고, 종이를 깔아 기름기가 적당히 제거될 때까지 다리미질을 반복한다.

4. 1차 혼합: 기름기를 제거한 털을 한데 모은 뒤, 한 손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털 뭉치를 떼어주는 과정을 반복하며 긴 털과 짧은 털을 골고루 섞는다.

5. 앞정모: 1차 혼합이 완료된 털 뭉치에서 털을 소량씩 빼내어 털의 끝부분(초가리의 호가 될 부분)을 일자로 맞추며 모은다. 이렇게 모은 털 뭉치는 한 손으로 쥐고 도모칼로 뒤집어지거나 잘린 털을 골라 제거하며 다듬는다.

6. 길이별 재단: 앞정모가 끝난 털 뭉치를 판에 놓고 두드려 가지런히 다듬은 후 털의 뿌리 부분을 제작하고자 하는 붓의 길이에 맞춰 가위로 재단한다. 전통 붓은 한 자루에 다양한 길이의 털이 섞여 있기 때문에 심소·중소·의체용을 구분해 재단해야 한다.

7. 2차 혼합: 심소·중소·의체용으로 재단된 각 털 뭉치를 적정 비율로 고르게 섞는다. 긴 털에 짧은 털들이 최대한 고르게 섞을 때까지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며, 뒤집어지거나 잘린 털은 제거한다.

8. 뒷정모: 2차 혼합이 끝난 털 뭉치를 털의 뿌리 부분을 기준으로 비슷한 길이로 모은다. 이렇게 만든 여러 뭉치의 털은 종이로 감싸 심소·중소·의체용으로 나눠 정리·보관한다.

9. 분모: 크기가 큰 대필의 경우 제작을 원하는 초가리의 양에 맞춰 손질이 끝난 털을 저울을 이용해 같은 무게로 나눠 보관한다. 크기가 작은 세필의 경우 털의 길이도 짧기 때문에 털 뭉치의 아랫부분(초가리 밑동이 될 부분)에 밀가루를 바르고 벌이 벌집을 만들 때 사용하는 찐득찐득한 봉밀로 지져서 한데 모은 후 건조한다.

10. 초가리 제작: 바닥에 종이띠를 깔고 그 위에 의체에 해당하는 털을 얇게 펼쳐 놓는다. 그 위에 심소에 해당하는 털을 올린 뒤 종이띠로 의체와 심소를 함께 둥글게 말아준다. 초가리가 될 털에 아직 남아있는 뒤집어지거나 잘린 털을 제거하고, 붓촉의 뿌리 부분을 기준으로 털을 정렬한다.

11. 물끝보기: 초가리를 물에 적셔 최종적으로 모양을 확인하고, 털끝도 다시 한번 일일이 확인해 손상된 털을 제거한다.

12. 초가리 묶기: 초가리에 남아있는 물기를 건조한 뒤, 무명실이나 명주실로 초가리의 끝에서 3mm 정도 떨어진 부분을 묶어준다.

13. 대나무 채집 및 건조: 대나무를 채집해 껍질을 벗기고 황토를 발라 약 3개월 동안 건조한다. 휘어진 대나무는 불에 그을린 후 열기가 있을 때 대잡이 틀에 끼워 곧게 만든다.

14. 붓대 재단 및 결합: 제작을 원하는 붓의 크기에 맞는 대나무를 선택해 길이에 맞게 재단한다. 이후 대나무 속을 파내어 초가리를 붙일 자리를 만들고, 접착제를 발라 결합한 후 건조한다.

15. 풀 먹이기: 초가리의 형태를 고정하기 위해 붓을 우뭇가사리를 끓여 만든 풀에 담근 뒤, 끝을 뾰족하게 만든다. 초가리에 남은 풀은 실로 훑어내고, 3~7일 정도 건조한다.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붓은 제가 평소에 접해보지 못한 생소한 분야예요. 하지만 작년 5학년 때 처음 서예를 접한 뒤로 관심이 커져서 큰 기대감을 안고 취재를 갔죠. 이번 취재를 통해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닭의 털, 각종 식물로도 붓을 만들 수 있다는 점과 붓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장인도 있다는 점을 새로 알게 되었어요. 붓을 제작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고 복잡해서, 하나의 붓을 만들 때 최소 100번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벽한 붓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굉장히 인상 깊었죠. 붓이 아주 옛날부터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인 만큼 우리 모두 붓에 대해 조금 더 많은 관심을 가져보았으면 해요. 붓의 소중함을 느끼고, 붓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된 의미 있는 취재였어요.

구시연(서울 월촌초 6) 학생기자

붓은 일반 문구점이나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취재로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했고, 전통 붓과 관련된 정보를 알게 됐죠. 붓을 만드는 재료에 소털·닭털, 심지어 태어난 후 처음으로 자른 아기의 머리카락인 배냇머리까지 다양하게 사용한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박경수 필장님, 박창선 학예사님과 붓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도 알아봤는데 하나의 붓을 만드는데 여러 가지 까다롭고 오랜 과정을 거쳐야만 붓이 완성된다는 것이 놀랍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미술시간에 붓을 사용한다면 오늘의 경험이 생각나 무척 반가울 것 같아요.

유정현(서울 목동초 5) 학생기자

붓이야기박물관 취재를 통해 붓의 종류가 다양한 걸 알았어요. 1층 전시실에서 박경수 필장님의 작품을 살펴봤는데, 공작새의 깃털로도 붓을 만드는 게 신기했죠. 배냇머리붓이 이발한 적 없는 아기의 머리카락으로 만드는 것도 알게 돼 좋았어요. 저는 여러 번 머리카락을 잘랐기 때문에 지금 제 머리카락으로는 붓을 만들기 어렵다는 사실은 아쉬웠죠. 머리카락을 한 번 자르면 초가리의 모양을 원뿔처럼 만들기 어렵대요. 붓을 만드는 체험도 했는데 재미있었지만 조금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붓털을 도구로 골고루 펼 때 자꾸 털이 바닥에 떨어지더라고요. 필관에 초가리를 붙이는 과정도 어려웠죠. 왜냐하면 본드를 칠해서 붙이다가 실수하면 초가리를 못 쓸 것 같았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과정들을 거쳐 붓을 다 만드니 뿌듯했어요.

추승찬(서울 역촌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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