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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와 그 앙숙, 화해시킨 中…다급한 美, 이스라엘 데려왔다

중앙일보

입력

미국과 중국이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에 경쟁적으로 구애의 손을 뻗치고 있다.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란이 관계 복원을 선언한 데 이어, 최근 양국 외교 수장이 만나 화해 분위기를 본격화하자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 관계 정상화를 서둘러 중재하고 나섰다. 미·중이 중동에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우디 끌어안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알자지라·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사우디 외무장관인 파이살 빈 파르한 왕자가 이날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과 회담하고,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를 만났다. 빈 파르한 왕자는 최근 20년래 이란을 방문한 사우디 최고위급 인사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오른쪽)이 17일 테헤란에서 사우디의 빈 파르한 왕자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호세인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오른쪽)이 17일 테헤란에서 사우디의 빈 파르한 왕자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날 빈 파르한 왕자는 아미르압둘라히안 외무장관과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국 관계는 상호 존중, 내정 불간섭에 기초해야 한다”면서 “주요 해상로 안전을 보장하고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도 금지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모두는 양국의 관계 개선이 이 지역과 이슬람 세계 전체에 긍정적 영향을 주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또 빈 파르한 왕자는 라이시 대통령를 사우디로 공식 초청했다.

사우디와 이란은 이슬람교 양대 진영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중동의 패권을 놓고 다퉈왔다. 앞서 2016년 사우디가 자국 시아파 지도자들의 사형을 집행하자 이란의 강경 보수 세력이 이란 주재 사우디 공관 2곳을 공격한 것을 계기로 국교를 단절한 바 있다. 이후 2019년 사우디 정유시설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아 원유 생산의 절반 가량이 타격을 입었을 때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시 미국은 공격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中이 중동 긴장완화 기여했다"

양국간의 해빙 무드가 조성된 계기는 지난 3월 중국의 중재로 사우디와 이란이 관계 정상화를 선언하면서부터다. 이란은 이달 초 사우디에 대사관을 열었고 사우디 역시 이란에 외교관을 파견한 상태다.

중동 내에선 두 나라의 화해가 역내 긴장 완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예멘 내전은 2014년 시작된 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으로 변질돼 10년 가까이 지속됐는데, 양국의 관계 정상화 이후 휴전이 모색되고 있다. 또 이란은 사우디의 최대 맹방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8년 만에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다.

때문에 “중국이 중동 내 긴장 완화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래 사우디는 미국과 약 70년 간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중동 내 '미국의 혈맹국’이었으나 2018년 미국이 사우디 출신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 암살 사건의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하면서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엔 치솟는 국제유가 안정을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해 증산을 요청했지만, 사우디가 받아들이지 않아 양국 관계가 한층 꼬였다.

미국과 패권 경쟁 중인 중국은 미국·사우디의 틈새를 파고들었다.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사우디와의 경제 협력 강화에 나섰다. 일대일로( 一帶一路, 중국 주도의 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위안화 석유 거래와 함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의 중재에 나서 역내 존재감을 높였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이란과 사우디 관계자와 회담을 가졌다. 로이터=연합뉴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지난 3월 베이징에서 이란과 사우디 관계자와 회담을 가졌다. 로이터=연합뉴스

美, 사우디-이스라엘 관계 정상화 중재

이에 미국은 서둘러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추진하며, 중동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려 나섰다. 뉴욕타임스(NYT)는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6일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한 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전화해 사우디 측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이날 사우디는 이스라엘에 대한 요구 외에도 미국에 우라늄 농축 허용과 기술 지원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사우디가 핵 개발에 나설 것을 우려해 이같은 요구를 오랜 기간 거부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는 거리를 둬왔다. 동맹국인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수단 등 아랍권 4개국이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아브라함 협약’을 맺고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 것과 대조적이다. 외신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적대적 관계이면서도 이란에 대한 불신을 공유하며 ‘신중한 구애’를 거듭해온 관계”라고 설명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사우디의 제다에서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7일 사우디의 제다에서 무하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만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NYT는 바이든 행정부 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블링컨 국무장관의 통화는, 중동의 역사적인 두 적대국(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외교적 합의를 중재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획기적인 외교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만약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성공한다면 중동 정세 재편 흐름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건이 될 것이며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점점 중국과 관계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 사우디의 움직임을 사전 차단하고, 경색된 미국과 관계 회복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교가에선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합의 가능성은 50% 미만”이라고 보고 있다. 블링컨 장관도 “협상으로 가는 길에 환상은 없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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