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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소수자를 보지 않을 다수자의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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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시민 주최 문화행사를 놓고 경찰과 행정 당국이 충돌하는 이례적 풍경이 연출됐다. 지난 17일 대구에서 열린 성소수자 축제인 대구퀴어문화축제 얘기다. 시청 공무원 500명이 불법 도로 점거라며 행사 차량을 막아서고, 경찰 기동대 1500명은 길을 터주려 하면서 대치 상황이 연출됐다. “퀴어축제 반대” 의사를 밝힌 홍준표 대구시장이 집회 허가를 내준 경찰의 교통 통제 협조 요청을 거부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홍 시장은 SNS 등을 통해 “1%도 안 되는 성소수자의 권익만 중요하고, 99%의 성다수자의 권익은 중요하지 않냐”며 “99% 시민들이 불편한 번화가 도로 점거 불법 집회는 공공성이 없다” “집회를 하려면 다른 곳에 가서 하시라”는 발언을 이어왔다. 앞서 법원이 이 지역 상인들이 낸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집회는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표현하는 유일한 장이 될 수 있다”면서 “상인들의 재산권과 영업의 자유 제한 정도가 표현의 자유보다 무겁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바탕 소동 끝에 행사는 예정대로 열렸으나, 홍 시장은 대구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17일 오전 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 시청 공무원과 경찰이 충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연합]

17일 오전 대구에서 열린 대구퀴어문화축제 현장. 시청 공무원과 경찰이 충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연합]

대구퀴어축제는 2009년 시작돼 올해로 15년째다. 해외에도 유사한 퍼레이드들이 많고 우리나라는 2000년 서울퀴어축제를 필두로 전국 9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여름 서울퀴어축제 때는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참석하기도 했으나, 올해는 서울광장 사용이 불허됐다. 서울광장 사용을 심사한 시민위원회에서는 “(성소수자들이) 표현할 자유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보지 않을 자유도 중요하다”는 등의 발언이 나왔다. 춘천퀴어축제도 장소 대관에 난항을 겪었다.

잇딴 퀴어문화축제 제동 논란
다수자의 '싫어할 권리'라지만
소수자는 존재 자체 부정당해

그런데 ‘성소수자의 권익 못지않게 성다수자의 권익도 중요하다’는 말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과연 성다수자가 도로를 불편 없이 사용하는 권익과 성소수자가 온갖 불이익을 감수하고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는 권익을 등치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수자에게 소수자(퀴어축제)를 안 볼 권리가 있으니 소수자는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홍시장은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기독교 단체를 향해서는 “종교의 자유 침해일 뿐 아니라 기독교 정신에도 반한다”며 “글로벌 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10억 이슬람을 배척하고는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 이와 대비된다.
성소수자를 ‘싫어하거나,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존재적 특질만으로 따지자면 ‘흑인을 싫어할 권리’ ‘장애인이나 아시아인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권리’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소수자가 스스로 드러내며(가시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 달라는 게 퀴어축제의 본질일 텐데, 다수자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하라는 건 아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굉장히 낯선 어감인 ‘성다수자’와 성소수자를 권익이 배치되는 관계로 놓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극빈층이 잘살게 된다고 부자가 가난해지는 게 아니고 여성 인권을 신장한다고 남성 인권이 후퇴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이 개선된 사회는 사회 전반의 인권이 개선된, 그래서 다수자의 인권도 개선된 사회임은 세상이 아는 바다(세계보건기구가 동성애를 정신질환 목록에서 삭제한 게 1990년이다). 성다수자와 성소수자라는 또 다른 갈라치기 속에서 인권의식의 퇴보가 우려된다.

같은 날 밤 서울 여의도에서는 전 세계 40만 팬이 운집한 가운데 ‘BTS 10주년 페스타’가 열렸다. 서울 전역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시민들도 교통 통제에 기꺼이 협조했다. 데뷔 10년 BTS 일곱 청년의 성취가 감격스럽다가도 성소수자를 포함해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소수자성’으로 전 세계 젊은이를 사로잡은 이들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먹통인 건 아닌지, 마음이 무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