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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신준봉의 시시각각

KBS가 사는 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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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문화디렉터
신준봉 문화디렉터

신준봉 문화디렉터

이 땅의 시청자들은 대략 5년 주기로 활극을 목격하게 된다. 새 정부와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영방송 수뇌부 간에 TV 수상기 바깥에서 벌어지는 공방전이다. 이번에는 KBS 수신료가 불쏘시개다.

지난 5일 대통령실이 여론 수렴 결과(97% 찬성)를 바탕으로 전기요금과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에 권고할 때만 해도 엄포용인 줄 알았다. 14일 방통위가 전체회의를 열어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가결하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넌 느낌이다. 정부로서는 칼을 빼들었으니 휘두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KBS 김의철 사장이 8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한 게 자충수라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분리징수를 철회하면 자기가 물러나겠다는 거니까, 강행하면 물러날 일이 없다. 철회해서 물러나면, 수신료 문제보다 KBS 사장을 날리는 게 정부의 애초 노림수일 거라는 음모론이 음모론 아닌 사실이 된다.

정부, 수신료 분리징수 강행할 듯
수입 5000억 줄어들면 기능 위축
기자·PD부터 내부 개혁 시작해야

음모론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분리징수를 강행하면 KBS가 입을 타격은 크다. 수신료 수입 5000억원가량이 줄어들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체 수입 1조4000억원의 3분의 1이나 되는 재원이다. 재난방송, KBS교향악단 운영 같은 공영방송 기능이 위축되고, 연차 높은 직원들 위주로 수신료 징수 TF가 만들어질 거라는 얘기까지 돈다고 한다. 1994년 통합징수 이전처럼 수금하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학자들 사이에 공영방송의 근간이 흔들릴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KBS가 가뜩이나 밉상인 국민들이 공영방송 죽어간다고 수신료 통합징수를 다시 수용할 리 없어 보인다. 한번 분리징수하면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다.

분리징수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큰 손실이 불가피할 텐데, KBS 앞에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지금부터는 대책이다.

정부의 ‘속공’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KBS도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얼마나 ‘공영’이라는 태생적 역할에 충실했는지 말이다. 5년 주기 공방의 배경에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싶은 권력의 욕망이 깔려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집권 여당이 KBS 사장 인사권은 물론 감독 기관인 방통위도 장악하게 되는 지배구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송법 조항이 가장 큰 문제다. 인사권을 쥔 정부는 수뇌부에 자기 사람을 앉힌다. 선거에서 우호적인 언론 환경이 만들어진다. 진보든, 보수든 이런 카드를 마다할 권력은 없어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정권에 줄 서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정치적) 후견인에게 복종과 지지를 하면 그 대가로 피후견인(언론인)에게 자원이 배분되는” 정치적 후견주의, 미디어 가산주의(家産主義·patrimonialism)다(조항제, ‘한국 공영방송 노동조합의 자율성 투쟁’). 그런 먹이사슬에 길들여지면 특정 정당의 이념을 자신의 신념으로 내면화하게 된다. ‘공영방송이 이런 걸 내보내도 돼?’ 이런 의구심이 드는 프로그램들을 누군가 신념에 차서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방송법을 공정하게 개정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권력은 공영방송 지배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사람이 문제라고 얘기하는 언론학자가 적지 않다. 공영방송다운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KBS 내부에서, 일선 기자와 PD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외부 개입이나 영향력 행사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직업 수칙을 항시 가동하면 꼭두각시 공영방송이 되지 않으리라는 얘기다(서울대 윤석민 언론정보학과 교수).

그렇게 되면 좋겠다. 다음과 같은 얘기도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공영방송도 어느 시점에서 완성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기보다 한 국가가 지속적으로 형성해 가는 ‘가치’나 ‘제도’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최영묵, 『공영방송의 이해』)

완벽한 공영방송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