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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알처럼 마구 써야…우크라 전쟁서 깨달았다 '십만드론양병설' [이철재의 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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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10만 명을 양성하여 급한 일이 있을 때 대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10년을 지나지 아니해 토담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떨어뜨린 대전차탄에 파괴된 러시아 T-72B 전차. Walter Report 트위터 계정

우크라이나 드론이 떨어뜨린 대전차탄에 파괴된 러시아 T-72B 전차. Walter Report 트위터 계정

조선의 대학자인 이이(李珥)는 1583년 경연에서 이같이 주장한 것으로 『율곡집』 행장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류성룡은 “일이 없이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화근을 만든다”며 반대했다.

율곡 이이. 위키피디아

율곡 이이. 위키피디아

9년 후인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조선은 전쟁 시작 한 달도 안 돼 수도인 한성을 일본에 빼앗겼다. 6년 동안 수많은 백성들의 피눈물로 일본을 결국 몰아냈다. 류성룡은 나중에 “만약 그 말대로 했으면 나랏일이 어찌 이렇게 되었겠는가”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십만양병설’의 교훈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와 맥을 같이 한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은 평화를 위해 어떻게 전쟁을 준비할까. ‘십만드론양병설’이다.

대전차 미사일 대신 배회탄을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해병대의 스티븐 라이트풋 준장은 ‘포스 디자인 2030’ 라운드테이블 행사에서 “미 해병대는 값싼 장거리 배회탄(loitering munitions)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해병대의 장거리 배회탄은 장거리 공격탄(LRAM)이다.

 미국 공군이 개발 중인 군집형 배회탄. 사진 미 공군

미국 공군이 개발 중인 군집형 배회탄. 사진 미 공군

포스 디자인은 미 해병대가 태평양에서 중국과 ‘섬따먹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2030년까지 몸집을 가볍게 만들려는 부대 구조 개혁안이다. 2021년 개혁의 방향이 그려졌고, 이날 자리는 그동안 여러 실험을 통해 개혁안을 어떻게 진행하고 어떻게 고칠 것인지 밝히는 자리였다. 주요 내용은 보고서로도 나왔다.

배회탄은 자살 드론이라고도 불리는 무기다. 공중에 발사하면 빙빙 돌다가 목표를 발견하면 바로 돌진해 터진다.

라이트풋 준장은 “LRAM은 네트워크로 연결돼 무리를 지어 160㎞ 이상의 거리의 목표를 때린다”며 “다양한 헬리콥터는 물론 F-35B 라이트닝Ⅱ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 MV-22B 오스프리 틸트로터 수송기, KC-130J 허큘리스 공중급유기ㆍ수송기에서도 발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상발사대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해병대는 LRAM에 투자하는 대신 AGM-114 헬파이어 미사일을 줄일 계획이다. 헬파이어 미사일은 AH-1Z 바이퍼 공격헬기에서 쏘는 공대지ㆍ대전차 미사일이다.

라이트풋 준장은 “공격헬기에서 헬파이어로 8㎞ 거리의 적을 공격하면 방식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큰 효과를 거뒀다”며 “그러나 (중국과 싸울) 인도ㆍ태평양에선 8㎞론 부족하다”고 말했다.

미 육군이 개발 중인 배회탄인 공중발사효과(ALE). 미 육군

미 육군이 개발 중인 배회탄인 공중발사효과(ALE). 미 육군

배회탄에 관심을 가진 것은 미 해병대뿐만이 아니다. 미 육군은 공중발사효과(ALE)라는 무기를 연구하고 있다. ALE는 배회탄이다. 미 육군도 헬기ㆍ드론ㆍ풍선ㆍ지상발사대 등에서 ALE를 쏠 수 있도록 만들 생각이다.

24시간 싸움터 위에 맴도는 드론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의, 드론에 의한, 드론을 위한 전쟁’이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는 튀르키예산 바이락타르 TB2로 재미를 봤지만, 곧 러시아의 방공ㆍ전자전 때문에 TB2 활약상은 줄어들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고글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Злий Конопляний Джмелик 트위터 동영상 캡처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고글로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Злий Конопляний Джмелик 트위터 동영상 캡처

뒤를 이은 건 소형 드론들이다.

전투지역 위에선 정찰 드론이 날아다니면서 인기척이나 움직임이 있다면 바로 포격을 부른다. 우크라이나의 RAM-Ⅱ, 러시아의 Lancet, Kub-BLA 등 자폭 드론(배회탄)은 적의 목표물을 사정없이 때린다. 이들 드론은 3㎏ 대전차탄을 싣고 30~40㎞까지 날아갈 수 있다. 전차나 장갑차는 물론 방공 레이더 등이 드론 공격으로 파괴됐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모두 상용 드론도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 DJI의 매빅과 같은 상용 드론으로 정찰하고, 적진에 폭탄도 떨어뜨린다. 상용 드론간 공중전도 벌어졌다.

우크라이나 국제여단에서 싸우고 있는 한국인 김모(33)씨는 지난 2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상용 드론인 중국 DJI의 매빅 3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상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AFP=연합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상용 드론인 중국 DJI의 매빅 3를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상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AFP=연합

전선에는 사실상 24시간 러시아군의 드론이 떠 있다. 드론이 머리 위에 뜨면 그 순간 포격이 온다고 보면 된다. 드론이 계속해서 아군의 위치를 추적해 실시간으로 포병에게 전송하기 때문에 한 번 포격을 피했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이런 박격포보다도 무서운 건 머리 위에서 수류탄과 대전차 로켓포탄을 떨어뜨리는 드론이다. 보통 소리가 먼저 들리는 포격과 달리 이들 드론이 떨구는 폭탄은 한순간이라도 경계를 소홀히 하면 영문도 모른 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선 우크라이나군이 이런 드론을 활용해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영상이 많지만, 실제론 러시아군의 드론 전력이 우위다. 러시아군이 드론의 수량과 성능에서 모두 앞서고, 전파를 방해하는 전자전도 더욱 적극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변의 막사가 러시아군 자폭 드론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돼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게다가 자폭 드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철저히 밀폐된 실내에서 생활하다 보니 감기나 장염 등 전염병을 앓는 경우가 많다.

총알처럼 마구 써야하는 드론

그런데 드론이 왜 10만대나 필요할까. 정확히 10만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앞으론 드론은 총알이나 포탄처럼 많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포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열린 '2023 연합ㆍ합동 화력격멸훈련'에서 군집드론 비행. 드론 10만 양병을 위해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군집비행을 하면서 유인 체계와 협력하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방부

지난달 25일 경기도 포천 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열린 '2023 연합ㆍ합동 화력격멸훈련'에서 군집드론 비행. 드론 10만 양병을 위해선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군집비행을 하면서 유인 체계와 협력하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국방부

영국의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는 지난 5월 러시아의 전술을 분석하는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가 하루 300대가량의 드론을 잃었고, 그 수치가 한 달에 1만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대부분이 싸고, 작은 상용 드론일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러시아의 전자전이다. 러시아는 강력한 방해 전파를 써 드론의 조종을 방해하거나 GPS 유도를 못 하도록 만들고 있다. 또 드론은 작고 조용하지만, 소총 사격에 싑게 떨어진다. 북한도 러시아가 어떻게 우크라이나가 드론을 막고 있는지 철저하게 연구할 것이 분명하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

브레이킹디펜스와 같은 군사 전문 매체는 “양이 곧 질”이라고 주장한다. 상용 드론은 수천 달러 정도 한다. 이를 희생해 병사를 구하면 남는 장사다. 포탄도 수천 달러다. 하나의 목표를 타격하려면 여러 발을 쏴야 한다. 그러나 드론은 한 대면 충분하다.

드론은 소모품이다. 그래서 상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배치할 필요도 있다. 배회탄뿐만 아니라 정찰 드론, 폭탄 투하 드론 등 다양한 드론을 10만대, 즉 충분히 갖추고 있어야 한다.

공격헬기만으론 생존이 어려워

10만 드론을 양병하려면 생각해볼 사항이 있다.

우선 공격헬기.

우크라이나에서 추락한 러시아 Ka-52 앨리게이터 공격헬기. Militarnyi

우크라이나에서 추락한 러시아 Ka-52 앨리게이터 공격헬기. Militarnyi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격헬기의 무덤이다. 지금까지 최소 62대를 잃었다. 이 가운데 35대는 ‘러시아의 아파치’라 불리는 Ka-52 앨리게이터다. 우크리아의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MANPAD) 때문에 러시아 공격헬기가 전선에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일본 육상자위대는 올해 1월 방위력정비계획에서 아예 공격ㆍ정찰 헬기를 드론으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은 AH-1 코브라 공격헬기 50대,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12대, OH-1 닌자 정찰헬기 37대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이 헬기 전력을 없애려는 이유는 인구절벽에 자위대 기피 현상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일본은 1000명 정도의 인력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고육지책이지만, 일본은 드론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미 해병대나 미 육군 역시 배회탄이 공격헬기의 근접지원 임무를 상당히 떠 앉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

그렇다고 공격헬기가 퇴물이란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공격헬기와 드론의 합동 공격은 필수다.

소총 드론보다는 배회탄이 더 효과적

또 다른 하나는 소총 조준사격 드론이다.

육군의 소총 조준사격 드론. 연합

육군의 소총 조준사격 드론. 연합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화력격멸훈련을 참관한 뒤 참가 전력을 둘러보면서 소총 조준사격 드론에 대해 “드론 킬러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소총 조준사격 드론은 대형 드론에 K2 소총과 30발들이 탄창, 조준경, 자세안정장치를 달았다. 멀리서도 조준사격이 가능한 드론이다.

그런데 소총 조준사격 드론을 개발하는 나라는 많잖다. 군 관계자는 “비행 중 소총을 조준하는 게 상당히 어렵다. 처음엔 탄착군이 중구난방이었는데 요즘 많이 좋아져 모이고 있다”면서도 “정밀 조준사격은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

소총으로 목표를 정확히 사격하기보다는 싸고 작고 가벼운 배회탄으로 목표를 타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마지막으로 군의 인식이다.

국정감사에서 군의 드론 손실이 크다는 지적이 여러 번 나왔다. 그래서 군은 드론을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있다. 하지만 거듭 얘기하자면 드론은 소모품이다.

패트릭 도나휴 미 육군 예비역 소장은 브레이킹디펜스와의 인터뷰에서 “보스니아에서 대위로 MQ-1 프레데터의 행방을 찾기 위해 하루 반나절 동안 추적했고, 이라크에서는 대대장으로서 유프라테스 강에 떨어진 RQ-11 레이븐을 찾기 위해 대원들과 이틀을 보냈다. 왜 우리가 그런 일을 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AI 기반의 멈티 기술 개발이 필수

공격헬기가 살아남는 길은 드론과 합동 공격이다. 그러려면 유ㆍ무인복합체계(MUM-T)가 필요하다. 드론과 같은 무인 전투체계가 공격헬기와 같은 유인 전투체계와 팀을 이뤄 함께 정찰하고 공격하는 수행 방식이다. 인공지능(AI)은 기본이다.

미국 육군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왼쪽)와 MQ-1C 그레이이글 무인기. AH-64는 MQ-1C를 조종할 수 있다. 위험한 지역에 먼저 보내 정찰ㆍ공격을 하면 헬기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GA-ASI

미국 육군의 AH-64 아파치 공격헬기(왼쪽)와 MQ-1C 그레이이글 무인기. AH-64는 MQ-1C를 조종할 수 있다. 위험한 지역에 먼저 보내 정찰ㆍ공격을 하면 헬기의 생존성을 높일 수 있다. GA-ASI

15일 제주에서 열린 2023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 종합학술대회의 ‘AI 기반 유ㆍ무인 복합전투체계 발전 방향’ 세미나는 의미가 컸다. AI 기반 핵심 첨단전력으로 유ㆍ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윤석열 정부 국방혁신 4.0의 과제 중 하나다. 민ㆍ관ㆍ군과 산ㆍ학ㆍ연이 머리를 맞대고 AI 기술로 움직이는 유ㆍ무인 복합 전투체계를 개발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논의했다.

여기서 만난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는 “현재 기술론 드론을 10대 늘리면 그것을 조종할 10명의 사람이 필요하다. 1명이 10대, 20대의 드론을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이 먼저 개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군사 전문 자유 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러난 상용 소형 드론의 군사적 효용성은 미 육군도 인정하고 도입을 검토할 정도”라며 “드론봇 전투단을 추진하고 있는 육군은 소형 드론을 소부대에 접목시켜 다양한 전투시험을 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적절한 제품이 국내에 없다면 동맹국 유사 제품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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