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있었던 일이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과 병무청, 성우회가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구절벽 시대의 병역제도 발전 포럼’을 열었다. 인구절벽 시대에서 병역자원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색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 포럼에서 군복무기간을 현재 18개월에서 더 늘려야 하며, 여성도 징집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고 알려지면서다.
특히 군 복무 당사자인 20대 남성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들은 군복무기간 확대에 분명히 반대하면서, 여성 징병제엔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논란이 격해지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국방부는 여성 징병제, 군복무기간 확대, 대체복무 폐지 등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병무청도 설명자료를 내고 “포럼 간 군복무기간 연장, 여성 징병제 필요성, 대체복무 폐지 등과 관련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으나, 발제자 및 토론자의 개인 의견으로 정부 측 공식입장이 아니며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이날 포럼을 공동 주관한 성우회도 여성 징병제는 국민적 논의가 필요하고, 군복무기간 연장은 여러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으로 보도자료를 고친다고 발표했다.
군복무기간 연장은 문재인 정부 때 군복무기간이 18개월(육군ㆍ해병대 기준)로 준 뒤 나온 이슈이지만, 여성 징병제는 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달군 주제다.
2042년 병역자원은 2013년의 3분의 1 수준
군복무기간 연장과 여성 징병제가 불거진 배경엔 인구절벽이 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2022년 기준 0.78명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가 1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저출산을 넘어서 대한민국 인구는 2020년부터 줄어들고 있다. 그 속도가 가팔라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을 걱정할 정도다. 인구절벽은 인구 분포가 마치 절벽이 깎인 것처럼 역삼각형 분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구절벽은 병역자원 절벽으로 이어진다. 군에 입대하는 20대 남성의 숫자가 줄기 때문이다. 조관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책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세 남성은 2013년 37만 6000여명에서 올해 25만 5000명으로 줄었다.
국방부와 군 당국은 국방개혁을 통해 군 정원을 50만명으로 줄이고 간부(장교ㆍ부사관)와 군무원의 숫자를 늘렸다. 그리고 부대구조 개편(감군)을 단행해 2006년 육군 10개 군단 47개 사단에서 올해 6개 군단 34개 사단으로 축소했다.
정부 소식통은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정원을 채우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병역자원 문제가 앞으로 더 심각해진다는 것이다. 20세 남성 인구 예상 그래프는 2026~2032년 23만 1000여명에서 25만 5000여명으로 왔다 가다 하다 2033년부터 아래로 확 꺾인다. 2037년 18만 7000여명으로 20만명 밑으로 떨어지더니 2042년엔 2013년의 3분의 1 수준인 12만 5000여명으로 예상된다.
제2차 병역자원 절벽에 대비할 시간은 이제 10년도 안 남은 셈이다.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여성 징병제가 대안으로 검토됐다.
성 평등 문화가 강한 북유럽의 여성 징병제
여성의 군 복무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 이뤄졌다. 이전에도 여성이 전쟁이나 전투에 뛰어든 사례가 있었지만, 국가가 조직적으로 여성을 모병한 것은 1차 대전부터다. 여성은 전방에서 전투를 치르기보다는 주로 후방에서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여성은 군에 입대할 수 있다. 그리고 전 세계 21개 국가에서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징집하고 있다.
선진국으론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이 있다. 노르웨이는 남성과 여성이 생활관(내무반)을 같이 쓴다.
북한도 2015년 여성 징집을 시작했다. 북한에선 남성과 여성 모두 17세가 되면 입대 대상자로 분류된다. 최대 군복무기간이 남성은 10년, 여성은 8년이다.
베냉, 카보 베르데, 에트루리아, 말리, 모로코, 모잠비크, 볼리비아가 여성도 징집하는 나라로 꼽힌다.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적도 기니, 기니비사우. 니제르, 세네갈은 여성 징집이 확실치 않다. 수단, 베트남은 여성 징병제이지만, 실제론 남성만 징병한다. 미얀마, 차드,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은 평시 징병제를 운용하지 않고 있다.
대만과 덴마크에선 여성 징병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북유럽(노르웨이ㆍ스웨덴)은 여성 징병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적극적 지지가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 북유럽 사례를 단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전체 병력이 적고, 각종 대체복무 제도가 발달했다. 실제로 군에 입대하는 남성과 여성은 전체 20대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북유럽의 여성 징병제는 성 평등 문화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스라엘의 경우 여성의 군복무기간(21개월)은 남성(36개월)보다 짧다. 그리고 실제 여성 징병률은 낮다. 그래서 연구자들 사이에선 “한국이 여성 징병을 검토할 때 벤치마킹 대상은 북한”이라는 농담이 나온다고 한다.
헌법재판소로 올라간 여성 징병제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4월 19일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라는 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29만 3140명이 동의했다. 20대 남성의 화력지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청와대는 여성 징병제에 대해 “병역제도 개편 논의는 국가 안보의 핵심 사항”이며 “한반도 안보 상황을 고려한 상비병력 충원 가능성과 군사적 효용성 등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여성 징병제는 병력의 소요충원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쟁점을 포함하고 있어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 등 충분한 공론화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답했다.
“여성 징병이 실제로 구현되려면, 군 복무 환경, 성평등한 군 조직문화 개선 등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와 사전 준비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시기상조라는 취지의 답변이다.
여성 징병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세 차례나 검토한 사안이다. 헌법에서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진다’(39조)고 돼 있지만, 병역법에선 남자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3조 1항) 게 위헌이라고 제기됐다. 그러나 헌재는 2010년, 2011년, 2014년 모두 병역법 3조 1항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국방의 의무는 병역법에 의해 군 복무에 임하는 등 직접적 병력 형성 의무만 가리키는 것은 아니며 간접적인 병력 형성 의무 및 병력 형성 이후 군 작전 명령에 복종하고 협력해야 할 의무도 포함한다”고 밝혔다. 또 헌법 39조에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라는 돼 있는데, 이는 입법의 재량을 법률에 위임한 것이기 때문에 남성만 병역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헌재는 판단했다.
헌재는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신체적 능력이 뛰어난 여성도 생리적 특성이나 임신과 출산 등으로 훈련과 전투 관련 업무에 장애가 있을 수 있다”며 “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여성 징병제 놓고 20대 남녀 대결
한국에선 여성 징병제는 병역자원 감소의 대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만 다뤄지고 있지 않다. 남성과 여성, 특히 20대에서 뚜렷한 성 대결 구도의 연장선 상에 여성 징병제가 있기 때문이다.
20대 남성은 군가산점제가 폐지된 뒤 박탈감이 더 커진 데다 남성만 의무복무를 다 하는 제도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여성 징병제가 공론의 장에 나올 때마다 20대 남성이 앞장서 논의를 주도하는 경향이다.
정치권에서도 공동징병제도(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혼합병역제도(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는 여성 징병제를 화두로 던지기보다는 20대를 성별로 가른 뒤 남성의 표심을 노렸다는 평가다.
국방부에서 인력정책 업무를 담당했던 김신숙 박사(현재 교육훈련 파견)는 『역사와 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의 병역제도』에서 “여성의 징집 여부보다는 국가가 남성들의 병역 부담과 여기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박탈감을 회복시키는 데 정책의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여성 징병제나 군복무기간 연장을 검토하는 것은 인구절벽ㆍ병역자원 절벽 대안 모색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아니다.
현재 군 정원은 50만명이다. 그런데 이 숫자는 노무현 정부 때 국방개혁을 짜면서 나온 것이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50만명을 유지해야 하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조관호 책임연구위원은 ‘인구절벽 시대의 병역제도 발전 포럼’에서 “우리 군은 만성적 병력부족시대로 진입했다”며 “기존의 징병제 기반 충원 모델로는 미래의 인력소요 충원이 제한된다. 새로운 대응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50만명이 필요하니 50만명을 채워야 한다며 군 당국이 여성을 징집하고 군복무기간을 늘릴 것을 요구하기보다는 안보 상황과 위협 요소를 놓고 최소 얼마의 병력이 있어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게 최우선 순위다.
유무인 복합체계 등 첨단기술을 적용하고, 예비군을 최대한 활용하면 군 정원을 줄일 수 있다. 장태동 국방대 예비전력센터 센터장은 “예비군 예산을 늘려 동원예비군ㆍ지역예비군 30만명 정도를 상비군 수준으로 정예화하자”고 주문했다.
여성의 군복무 기반부터 다져놔야
여성 징병제에 앞서 여성의 군복무에 대한 기반을 다져놓는 것도 방법이다.
여성 예비군제 확대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지금까지 여성 장교나 부사관이 전역하면 자동 퇴역이다. 여성이 예비군에 편입하려면 자원해야 한다. 이를 여성 간부 전역자도 남성처럼 최소 40세까지 예비군에 편성하도록 하자.
유급 지원병제의 문을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에게도 열어놓자. 여성이 원할 경우 기초 군사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기초 군사훈련을 받은 여성 중 지원자에 한해 예비군으로 받도록 하자.
그러면서 생활관 등 시설, 근무 형태, 훈련 형태 등을 점검하고 고쳐놓자.
여성 징병제는 최후의 카드다. 가뜩이나 인구가 부족한 데 노동 생산성이 높은 20대에서 일부 남성뿐만 아니라 일부 여성도 군대로 보내는 게 국가ㆍ경제ㆍ사회적으로 이득이 클지 따져보면 그렇다.
개인차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남성의 전투력이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가 있다. 미 해병대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전투에서 부상의 위협이 2배나 높고, 남성이 여성보다 전술 이동이 더 민첩하며, 각종 화기도 남성이 여성보다 잘 쐈다.
미 해병 중령 출신의 데이브 그로스먼에 따르면 일찍부터 여성을 징집한 이스라엘에선 남성 장병이 여성 장병이 다치는 것을 볼 경우 통제할 수 없이 과도한 공격성을 보였다고 한다.
이 같은 경향의 여성까지 군대로 동원하려면 한국이 존망의 갈림길에 처했을 때와 같은 상황이어야만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뒤 18~60살의 여성도 병적부에 등록하도록 법과 규정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