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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성 젖어 있던 통일운동 핵실험에 정신 번쩍 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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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3일 "북핵에 대한 비판 여론을 가볍게 보는 것은 통일운동의 자세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백 교수는 '한반도식 통일과 북의 핵실험'을 주제로 한 프레시안 창간 5주년 기념강연에서 통일운동 세력을 겨냥해 "국민의 냉담이나 비난을 냉전세력과 수구보수 언론의 탓으로 돌리는 건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강연 요지.

"10월 9일 북의 핵실험으로 6.15 시대는 전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흔들리는 6.15 시대''6.15 시대의 종언'까지 거론될 정도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남쪽 국민이 6.15 선언의 정당성.유효성에 의문을 갖게 된 건 중대한 타격이다. 통일운동에서나 분단상태에 대해서나 그동안 타성에 젖어 너무 쉽게 쉽게 넘어온 면이 있는데, 핵실험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해줬다. 북의 핵실험에는 시민.민중운동을 가능케 해주는 원칙의 문제가 걸려 있다. 즉, '반전평화'를 강조하면서 반핵을 빼는 것은 평화운동의 자기부정이자 통일운동의 패배를 자초하는 길이 된다. 환경운동의 경우 핵발전소 건설마저 반대해온 입장에서 핵무기 개발과 핵폭발을 용인하면서까지 대북 협력을 추진하기는 어려워졌다. 반핵은 대원칙이며 당연히 북핵에 대해서도 끝까지 폐기를 주장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정부 당국이 북의 핵보유를 방지하거나 철회시킬 수 있는 처지가 못 됨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미국과 북측이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원리에 따라 풀어가도록 맡겨두고 우리는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한반도식 통일의 현장작업에 치중해야 한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을 비롯한 경제협력과 사회문화 교류 등 앞으로 민간사회의 몫이 중요해질 것이다. 남한 시민들이 6자회담 당사국들과 견줄 수 있는 '제7의 당사자' 역할을 해야 한다."

신은진 기자

◆ 백낙청 교수=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로 진보학계의 대표적 인물. 학술.문학 계간지 '창작과 비평' 편집인과 시민방송 이사장이다. '6.15 공동선언 실천 민족공동위원회' 남측 대표직도 맡고 있다. '민족문학론''분단체제론' 등 1980년대 사회변혁적 담론 생산의 '대부'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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