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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사교육 광풍 잡을 특단 대책 나올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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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01면

‘쉬운 수능’ 발언 파장

윤석열 대통령이 ‘공정’과 ‘카르텔 해소’를 핵심 키워드로 삼아 사교육과 수능 개혁에 나섰다.

김은혜 홍보수석은 16일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융합형 문제 출제는 교육 당국이 (학생을) 사교육으로 내모는 것으로 아주 불공정하고 부당하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뜻”이라고 밝혔다. 전날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는 수능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지시사항이 일각에서 “어려운 수능은 안된다”는 취지로 해석되면서 수능 5개월을 앞두고 수험생의 혼란이 우려되자 추가 설명에 나선 것이다. 김 수석은 “윤 대통령은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것이 아니다”며 “모든 시험의 본질인 공정한 변별력은 갖추되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은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교육계의 카르텔 해소와 공정성 강화가 윤 대통령의 오랜 소신이란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평소 참모들에게 “부모의 경제력으로 교육격차가 확대되는 것은 미래 세대의 공정한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라며 “교육 당국과 사교육의 이권 카르텔이 촉발한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라”는 지시를 수차례 내렸다고 한다.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사교육 시장의 과열이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 학생이 쓴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교육부는 윤 대통령의 ‘공정한 수능’ 기조가 ‘쉬운 수능’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내심 수능이 어려울수록 사교육 업계만 웃는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교육부는 이날 대입 담당 국장이던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을 대기발령하고 이 기획관 자리에 심민철 디지털교육기획관을 임명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몇 달간 지시하고, 이 장관도 이에 따라 지시한 공정한 수능 관련 지침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이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도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계에서는 수능 난이도 조절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책임자 문책에 감사까지 한다는 마당에 출제기관이 고난도의 문제를 감히 낼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수능 난도를 낮추는 것이 변별력과 공정성 확보에 도움이 될지, 사교육비 지출이 줄어들지 미지수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수능이 평이하면 한두 문제만 틀려도 2·3등급으로 밀리기 때문에 중상위권의 부담이 더 커진다”며 “수능 점수로 줄 세워 1등부터 뽑는 현실 아래서는 여전히 사교육을 통해 대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입국장 경질, 출제기관 감사…수능 5개월 앞 ‘칼’ 뽑았다

수능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1일 경기 효원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문제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수능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1일 경기 효원고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문제지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에서 벗어난 수능 문제를 지적한 지 하루 만인 16일 교육부는 대입 담당 국장인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을 경질했다. 정부는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묻겠다며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도 예고했다. 이 국장은 올해 1월에 임명됐는데 6개월도 채우지 못했다. 이날 대통령실은 교육부의 인사 조치에 대해 “강력한 이권 카르텔의 증거로 오늘 경질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날 윤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강도 높은 사교육 경감 대책을 요구하면서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이란 말인가”라고 했는데, 또다시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3월경부터 수능 시험이 공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돼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며 “이러한 기조가 올해 본 수능에 반영되도록 6월 모의평가부터 면밀히 관리할 것을 대입 담당 부서에 지시했지만, 노력이 미진해 담당 국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인 ‘경질성 인사’를 두고 장 차관은 “대통령실에서 어떤 지시를 내려 경질이 이뤄진 건 아니다”며 “6월 모의평가 문항과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이 부총리가 고심 끝에 독자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일에 치러진 6월 모의평가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을 출제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는 “무슨 과목에서 어떤 문항이 문제가 됐는지는 지금 당장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입시업계에서는 2023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에서는 독서 부문의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룬 과학 지문(14~17번)을 까다로운 유형으로 꼽는다. 상용로그, 기울기, 편차 등 과학 용어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는 풀이가 어렵다는 것이다. 2022학년도 ‘헤겔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예술의 위상을 설명하는 지문, 달러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면서 미국 국제수지 적자가 지속하는 상황을 일컫는 ‘트리핀 딜레마’를 소재로 한 경제분야 지문도 수험생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공교육에서 다루지 못하는 문제가 자꾸 나올수록 사교육 의존이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판단이다. 이권 카르텔이란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통령실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놓은 배경에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사교육비 문제가 있다. 실제로 지난해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으로 전년보다 11.8% 증가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4월 10년 만에 사교육대책팀을 부활했고, 조만간 사교육비 경감 종합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발언이 전해진 이후 부담감이 더 커졌다”며 “입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들으며 대책을 수정·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대학 입시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대한민국의 특징은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더 많다는 것”이라며 “학교 공부를 보충하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비를 투입하는 만큼 현행 대입구조를 바꾸지 않는 이상 사교육 난제를 풀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공정한 수능 기조가 사교육비 경감과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꾼 이후에도 영어 사교육은 여전했다”며 “오히려 수능의 변별력이 줄어들면 수시를 공략한 외부 컨설팅이나 논술, 면접 등 대학별 고사 수요가 늘면서 사교육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수능 대박’을 노리고 재수, 반수를 하는 수험생이 늘면서 입시 시장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공교육이 실제로 수능 대비를 못 해주고 있기 때문에 (사교육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학생들 입장에서는 대학 입시를 복잡하게 만든 것이 카르텔이라면 카르텔”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고교 교육과정에 충실하게 출제한 수능으로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신뢰를 얻으려면 교육부의 정책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내년 수능은 어떻게 될 것이고, 앞으로 수능은 이런 방향으로 변할 것이고, 대입 전형은 이런 방식으로 설계해서 사교육이 이제는 유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설계도를 정확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말잔치만으로는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며 “차라리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입 개편 방안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교육 개혁 드라이브가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 차관은 “모든 시험의 본질인 공정한 변별력을 갖추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의미지 결코 쉬운 수능이나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이 빠지면 난이도가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서울중등진학지도연구회 소속인 장지환 서울 배재고 교사는 “평균을 올리기 위해서는 쉬운 문제를 많이 배치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최상위권을 변별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원석 인천하늘고 교사는 “한 문항이라도 실수하면 대입 실패로 이어진다는 과도한 긴장감이 올해 수능 응시자들을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고2 학부모는 “수험생들은 대입 전략을 다 짜놓고 거기에 따라서 공부하는데 올해 수능 경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 불안한 것이고, 9월 모평이 대통령 때문에 쉽게 나온다면 더 불안해질 것”이라며 “(대통령은) 사교육 잡기 위해서 발언을 꺼낸 것 같은데 사람들이 불안해지면 더 사교육을 찾게 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 부총리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고심 중이기 때문에 대통령 발언을 참고해 수능은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면 풀 수 있게 출제하겠다”며 “추가 내용은 곧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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