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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이용하는 에어비앤비도 불법, 낡은 법이 문제 키웠다 [기득권에 발목 잡힌 혁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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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10면

SPECIAL REPORT 

지난 4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불법 숙박업소를 운영한 숙박업자 76명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불법 운영된 객실 내부를 확인하는 장면. [사진 서울시]

지난 4월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은 에어비앤비를 통해 불법 숙박업소를 운영한 숙박업자 76명을 공중위생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불법 운영된 객실 내부를 확인하는 장면. [사진 서울시]

코로나19 엔데믹을 맞이해 전국 곳곳에서 에어비앤비 등 불법 공유숙박 업체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에서 공유숙박업체(외국인도시민박, 한옥체험, 관광펜션, 농어촌민박 등)로 등록된 업체 수는 지난해 6월 기준 4955개다. 하지만 공유숙박 플랫폼인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등록된 전국 공유숙박업소는 10배가 넘는 5만개에 달한다. 숙박업상 영업 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운영되는 불법 업체가 합법 업체의 10배 규모라는 뜻이다. 서울 마포구는 지난해 전세계에서 에어비앤비 숙박예약이 가장 많은 곳으로 꼽혔지만 5월 기준 마포구에 등록된 숙박업소는 70곳에 불과하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 관계자는 “도심에서 운영되는 공유숙박업체 상당수가 불법 업소”라며 “실거주자와 이용객을 구분하기도 어렵고, 처벌받지 않는 이용객들도 협조를 꺼려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전했다.

도심 공유숙박 내국인 받으면 불법

지난 14일 서울 강남역 일대의 오피스텔 20여 곳을 취재한 결과 곳곳에는 ‘불법 단기임대 금지’, ‘공유숙박업소 운영 시 고발’ 등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안내문도 불법 업소들에는 무용지물이다. 강남역 역세권에 위치한 한 오피스텔의 관리소장은 “전체 700세대 중 약 50~60세대가 에어비앤비로 운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주민들에게 층간소음, 과도한 쓰레기 배출 등으로 신고가 들어오지만 구청으로 인계만 할 뿐 관리사무소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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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인근 오피스텔에 부착된 불법 숙박 금지 안내문. 오유진 기자

서울 강남역 인근 오피스텔에 부착된 불법 숙박 금지 안내문. 오유진 기자

관광객이 자주 찾는 지역일수록 피해 규모는 더욱 컸다. 문진석 의원실이 각 지자체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과 강원, 부산, 제주에서 최근 5년간 미신고 숙박업으로 단속된 업소 중 82.6%가 에어비앤비를 통해 중개된 숙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광안리, 해운대 일대 오피스텔의 불법 공유숙박으로 몸살을 앓는 부산시는 지난해 6월부터 경찰서, 세무서, 구청이 공조해 불법 공유숙박업체에 세금 부과, 영업금지 처분 등을 내리고 있다. 서울시 민생사법경찰단도 오피스텔이나 주택에서 숙박업 영업 신고를 하지 않은 채 숙박 시설을 운영하는 업체를 지난해 10월부터 집중 수사하고 있다. 문진석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에어비앤비에서는 사업자등록, 영업신고 여부와 관계없이 영업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미등록 불법숙박업은 탈세는 물론 미성년 숙박, 마약, 불법촬영, 성범죄 등 이용객이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이를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2014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공유숙박업체들에 지자체가 뒤늦게 전쟁을 선포한 건 공유숙박업체가 급속도로 늘어나며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해서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오피스텔에 거주하던 30대 후반 교사 A씨는 인근 에어비앤비의 층간소음으로 이사까지 결심했다. 그는 “오피스텔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음으로 관리사무소와 실랑이하던 중 하루는 집에 외국인이 있고, 다음날이면 낯선 남자가 있는 등 매번 거주자가 바뀌는 것을 보고 불법 에어비앤비 업소임을 알아챘다”며 “지난 3년간 30번가량 경찰에 신고했지만 공유숙박 특성상 현장 적발이 어려워 수사가 지지부진했고, 에어비앤비 고객센터를 통해서도 5차례 불법 운영에 대해 신고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택시 ‘타다’ 사례 반면교사 삼아야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그래픽=남미가 기자 nam.miga@joongang.co.kr

잇따르는 피해와 끊임없는 단속에도 ‘꼼수 영업’을 해결하지 못한 본질적인 이유는 국회에 계류 중인 낡은 관광진흥법에 있다. 에어비앤비 등을 통한 공유숙박업소가 급격히 증가했지만, 관광숙박업법은 수차례 개정 시도에도 2012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행법상 도심에서 공유숙박업소를 운영하려면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에 사업 등록을 해야 한다. 이 경우 영업대상이 ‘외국인’에게만 한정돼 내국인을 손님으로 받으면 불법이다. 숙박업소 손님을 두고 내국인과 외국인을 구별해 제한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해외에서는 관광객 유치 수단으로 쓰이는 공유숙박이 한국에서는 지자체의 골칫덩어리이자 업자들의 미꾸라지 영업수단으로 변질된 이유다.

불법 영업행위가 적발돼도 실제 처벌 수위가 낮다는 점 또한 문제다. 불법 공유숙박 업소는 현행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하지만 공유숙박업체가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하면 벌금이 크지 않아 이를 감수하고 운영하는 업소가 대다수다. 부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매일 잠복해 1곳을 겨우 잡아도 다음날 10곳이 새로 생겨나는 상황이라 도저히 근절하기 어렵다”며 “운영자들이 이제는 ‘경찰이 와도 절대 협조하지 말라’고 말하며 영업하는 것을 보면 무작정 금지할 게 아니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부산 광안리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다 경찰 단속을 경험한 임모(25)씨도 “호텔이든 리조트는 범죄 위험은 똑같은데, 왜 에어비앤비만 안 된다고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어차피 이용객은 처벌받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편리한 에어비앤비 숙소를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업주는 불법, 이용객은 합법이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으냐”며 “주민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에어비앤비 운영을 합법화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지난 12일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미신고 숙박업소를 중개하는 플랫폼 업체에 온라인 중개를 금지하는 공중위생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에어비앤비 등 온라인 숙박업소 중개 플랫폼이 미신고 숙박업소를 중개할 경우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조건적 금지에 매몰된 낡은 규제가 불법을 조장한다는 점을 먼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경영학부 교수는 “공유숙박이 국내에 등장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에 걸맞은 제도를 만들려는 시도는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낡은 숙박업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낙인찍고, 자국인만 차별해 이용을 막는 제도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2021년 경희대학교 관광산업연구원과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이 실시한 ‘도시지역 내국인 공유숙박’ 인식 조사에 따르면 성인남녀 500명 중 73%가 코로나19 이후 국내 관광 산업 활성화를 위해 공유숙박업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서 교수는 “원룸, 오피스텔 등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공유숙박의 경우도 사업자등록 등을 통해 철저하게 관리해 운영하도록 양성화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고영대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여행 행태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호텔, 리조트가 충족하지 못하는 수요를 공유숙박이 채워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처럼 명확한 규정 없이 방치하면 범죄, 탈세를 비롯한 여러 문제가 연달아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과거 일본이 에어비앤비 내 모든 불법 숙소를 일괄 삭제하면서 관광객 유입에 큰 타격을 입었던 점을 예로 들며 단순 규제보다는 폭넓은 수용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택시 문화를 바꾸기 위해 등장했던 ‘타다’ 서비스가 규제에 갇혀있는 동안 택시산업은 오히려 후퇴했다는 점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국내외 관광객들의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공유숙박을 합법화해 국내 관광 인프라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법제화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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