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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무네·향수…백화점 상품에 비친 경성의 욕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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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20면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경성백화점 상품 박물지
최지혜 지음
혜화 1117

백화점은 욕망의 공간이다. 소비와 자기표현을 갈구하는 인간의 속마음을 비추는 만화경이다. 아울러 당대에 판매되던 소비 상품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식민지 시대인 1920~30년대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서 팔았던 상품들은 그 자체로 근대화의 상징이다. 서양 문물·문화를 일상 속에서 접한 문화 교류·접촉의 증거다.

미술사학자이자 국내에선 찾기 힘든 근대 건축 실내재현 전문가로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을 맡고 있는 지은이는 백화점에서 취급했던 숱한 상품을 미시적으로 접근한다. 이제는 너무도 당연해진 상품과 오래된 유래를 살핀다. 백화점이라는 숲에서 상품이라는 나무를 하나하나 살피고 거기에서 근대라는 거대한 숲을 재구성하기 위한 작업이다.

지금의 명동 롯데 영플라자 자리에 있었던 조지야 백화점 신축을 기념해 제작한 엽서. [사진 혜화 1117]

지금의 명동 롯데 영플라자 자리에 있었던 조지야 백화점 신축을 기념해 제작한 엽서. [사진 혜화 1117]

경성에는 일본인이 세운 미쓰코시(三越弦)와 히라타(平田)·미나카이(三中井)·조지야(丁子屋)와 함께 조선인이 세운 화신 등 5대 백화점이 있었다. 책은 1933년 개성상인 이근무(1902~?)가 백화점을 세우겠다는 꿈을 위해 경성의 여러 백화점에 다니면서 벤치마킹한 내용을 잡지 삼천리에 기고한 ‘일지’에서 시작한다. 대구에 서적·양품 상점인 무영당을 설립하고 37년 무영당 백화점을 세운 100년 전 ‘청년 벤처사업가’ 이근무의 기록을 살피는 일부터 흥미롭다. 무영당 백화점 건물은 지금도 대구 경상감영길에 남아있다.

조지야 백화점 전경 사진. [사진 혜화 1117]

조지야 백화점 전경 사진. [사진 혜화 1117]

백화점에서 손님을 맞은 상품 중 단연 인기는 개항 뒤 한반도에 들어온 외래 상품인 맥주였다. 1901년 서양잡화상 가메야 상회는 “세계 각국인이 매우 칭찬한 것”이라며 조선 궁내부 어용맥주로 궁궐에 공급된 일본맥주양조소의 에비스(惠比須)를 광고했다. 지금도 일본에서 만들고 한국도 수입하는 브랜드다. 33년 경성에서 많이 팔린 맥주는 기린-삿포로-사쿠라-유니온-아사히 순이었다. 당대 패권국인 영국에 이어 신흥국가인 독일에서 맥주 양조법을 배워와 자체 개발 맥주의 품질을 높인 일본은 경성 맥주 시장을 장악했다.

서양 술인 포도주는 자양강장제로 선전돼 팔렸다. 일본은 개항 이래 서양 포도주를 수입하다 1870년대 야마나시(山梨)에서 자국산 포도주를 출시했다. 일본인들이 시고 떫은 서양 포도주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단맛을 가미한 코잔은 26년 조선에 들어왔다. 일본 기업 미쓰와(三輪)는 1918년 포항의 오천과 동해에 접한 지역에 거대 포도밭을 조성하고 퀴닌(말라리아 예방치료제인 키나 일본 발음)에 철분을 첨가한 규나철포도주와 인삼포도주를 생산해 자양강장제로 팔았다.

청량음료인 사이다와 라무네(레몬수의 일본식 표기)는 당시 ‘민중의 여름 친우(親友)’라는 광고 문구로 선전됐다. 28년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 2800개소, 조선에 23개소, 경성에 5개소의 제조사 또는 공장이 있어 경성에서만 매일 5만 병의 라무네와 3만5000병의 사이다가 생산됐다. 조선의 첫 탄산수·라무네 공장은 한말인 1906년 일본인이 인천에 세웠다니 당시에도 여름 음료로 인기였던 모양이다. 첫 조선인 음료 기업인은 보성고보 출신의 고흥찬으로 30년 감천사를 세워 감천 사이다, 감천 라무네, 감천 과일물 등을 만들어 팔았다. 대구에서는 상표에 태극기가 붙은 금봉 사이다가 팔려 조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 팔리는 청량음료 중 가장 오래된 것이 50년 동방청량음료합명회사가 만든 칠성사이다(현재는 롯데 칠성에서 제조)라니, 감천이나 금봉은 이들의 조상에 해당한다.

한의원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가 직접 사서 간단한 증상을 해소할 수 있는 매약은 당대의 인기 상품이었다. 천일약방은 조고약을 제조해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는 사양길에 접어든 은단은 소화부터 해독까지 다양한 용도의 종합 보건약으로 각광받았다. 약은 공급이 수요를 낳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소비자가 약이 아니라 광고를 복용한 기분을 느끼는 건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가 건강염려증 환자로 설정된 이유일 것이다.

왼쪽부터 잡지에 실린 여성 갱년기 치료제 중장탕 광고, 화신백화점 수영복 카탈로그, 최초의 공산품 화장품이었던 박가분. [사진 혜화 1117]

왼쪽부터 잡지에 실린 여성 갱년기 치료제 중장탕 광고, 화신백화점 수영복 카탈로그, 최초의 공산품 화장품이었던 박가분. [사진 혜화 1117]

피부를 정돈하는 화장수(스킨케어)로는 피부를 희게 해준다는 백색 미안수와 지성 피부에 맞다는 육색 미안수 등이 팔렸다. 일본 제품이 많이 들어왔지만 1935년에는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사과를 이용한 화장수를 개발해 조선산 화장품 개발의 싹을 틔웠다.

향수도 일본의 프랑스산 향수 수입업체 오자키구미(大崎組)가 자체 개발한 금학(金鶴) 향수, ㈜오리지나루가 만든 오리지나루 향수가 인기였다. ‘샤넬의 제오번’으로 불렸던 프랑스 향수 샤넬 No.5는 1937년 쌀 여섯 가마 값을 넘는 130원의 가격이 매겨졌다.

이처럼 식민지시대 경성의 백화점은 당시 사람들의 소비는 물론 삶의 방식과 인식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식민지시대’라는 용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조선의 근대 풍경을 세밀화처럼 그렸다. 우리의 조상은 그런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변화하는 세계와 접속했다.

이 책만큼 흥미로운 건 지은이의 작업 이력이다. 백 년 전 서양인이 살던 경성의 옛집 딜쿠샤,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 미국 워싱턴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의 실내 재현 및 복원을 맡았던 실내역사 재현 분야 ‘마이더스의 손’이다.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상품 광고와 사진, 신문을 비롯한 당시의 기록을 ‘추출’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 tzschaei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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