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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카르텔" 지목된 교육부…26조 사교육 시장 잡을 특단 대책 나올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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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공교육에서 벗어난 수능 문제를 지적한 지 하루 만에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이 경질됐다. 정부는 대통령 지시 사항을 이행하지 않은 책임을 묻겠다며 수능 출제를 담당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도 예고했다.

대입 국장 경질에 출제기관 감사 카드까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있다. 연합뉴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1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이 답안지에 이름을 적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교육부는 대학 입시를 담당했던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국장)을 대기발령 조치하고 후임으로 심민철 디지털교육기획관을 임명했다. 인재정책기획관은 수능 등 대학 입학전형과 각종 인재양성 및 학술지원 정책을 총괄하는 보직이다. 이 국장은 올해 1월에 임명됐는데 6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3월경부터 수능 시험이 공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돼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며 “이러한 기조가 올해 본 수능에 반영되도록 6월 모의평가부터 면밀히 관리할 것을 대입 담당 부서에 지시했지만, 노력이 미진해 담당 국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례적인 ‘경질성 인사’를 두고 장 차관은 “대통령실에서 어떤 지시를 내려 경질이 이뤄진 건 아니다”며 “6월 모의평가 문항과 가채점 결과를 토대로 이주호 부총리가 고심 끝에 독자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지난 1일에 치러진 6월 모의평가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와 달리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항이 출제됐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는 “무슨 과목에서 어떤 문항이 문제가 됐는지는 지금 당장 설명해 드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모의평가와 수능 문제 출제를 관할하는 평가원을 총리실과 함께 감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장 차관은 “대통령의 메시지는 공정한 변별력을 갖추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모의평가와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것”이라며 “이 같은 공정한 수능 기조가 모의평가에도 반영되도록 평가원에도 수차례 뜻을 전달했었다”고 강조했다.

교육부 겨냥해 “이권 카르텔”…배경에는 26조 사교육 시장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연이은 대통령실발(發) 경고로 교육부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이날 대통령실은 교육부의 인사 조치에 대해 “강력한 이권 카르텔의 증거로 오늘 경질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날 윤 대통령이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강도 높은 사교육 경감 대책을 요구하면서 “교육 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편이란 말인가”라고 했는데, 또다시 경고성 발언을 한 것이다.

이권 카르텔이란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대통령실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놓은 배경에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는 사교육비 문제가 있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26조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41만원으로 전년보다 11.8%가량 증가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4월 10년 만에 사교육대책팀을 부활시켰고, 조만간 사교육비 경감 종합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통령실의 발언이 전해진 이후 부담감이 더 커졌다”며 “입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여러 의견을 들으며 대책을 수정·보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경민 기자

박경민 기자

문제는 대학 입시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대한민국의 특징은 공부를 잘할수록 사교육비 지출이 더 많다는 것”이라며 “학교 공부를 보충하는 게 아니라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교육비를 투입하는 만큼 현행 대입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사교육 난제를 풀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쉬운 수능 아니라지만…“난이도 조절 불가피”

2019학년도 수능 국어에서 킬러문항으로 꼽힌 만유인력 관련 문항. 평가원이 이례적으로 난도가 높았던 점을 사과하기도 했다.

2019학년도 수능 국어에서 킬러문항으로 꼽힌 만유인력 관련 문항. 평가원이 이례적으로 난도가 높았던 점을 사과하기도 했다.

교육부는 윤 대통령의 ‘공정한 수능’ 기조가 ‘쉬운 수능’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장 차관은 “모든 시험의 본질인 공정한 변별력을 갖추되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는 수능에서 배제하라는 의미지 결코 쉬운 수능이나 어려운 수능을 얘기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수능 난이도 조절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책임자 문책에 감사까지 한다는 마당에 출제기관이 고난도의 문제를 감히 출제할 수 있겠느냐”며 “킬러문항(초고난도 문제)이 줄어들면 수능 난도가 낮아지는 건 상식적으로 봐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킬러문항 출제를 지양하면서 난도를 낮추지 않는 방향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당장 구체적인 답을 해드리긴 어렵지만, 평가원 출제위원들이 전문성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수능 5개월 남았는데…수험생 혼란 우려

2021년 3월 서울 목동 학원가 모습. 뉴스1

2021년 3월 서울 목동 학원가 모습. 뉴스1

수능 시험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원석 인천하늘고 교사는 “당장 올해 수능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쉬운 수능이라는 시그널이 전달될 경우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한 문항이라도 실수하면 대입 실패로 이어진다는 과도한 긴장감이 올해 수능 응시자들을 압박할 것이다”고 했다.

공정한 수능 기조가 사교육비 경감과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임 대표는 “수능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꾼 이후에도 영어 사교육은 여전했다”며 “오히려 수능의 변별력이 줄어들면 수시를 공략한 외부 컨설팅이나 논술, 면접 등 대학별 고사 수요가 늘면서 사교육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학교에서 배운 수준대로 문제를 내라는 건 결국 학생들이 학교에서 열심히만 공부하면 모두 수능을 잘 볼 수 있도록 하라는 의미인데 또 변별력은 갖춰야 한다고 하니 교육적 방향과 목표가 상충할 수밖에 없다”며 “차라리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대입 개편 방안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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