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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 논설위원이 간다

광주 민심 “국회서 코인 하믄 되겄어요? 윤 대통령, 야당과 대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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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민주당 지지율 하락한 광주 르포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난 요새 라디오도 안 듣고 텔레비전도 안 봐부러. 들어봐야 ‘니가 잘 못 했네, 우리는 잘했네’ 해 싸는데, 봐서 뭐할 것이요.” 지난 9일 낮 광주광역시는 한여름처럼 후덥지근했다. 서구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탄 택시를 운전하던 이모(68)씨는 여야 정치권에 대한 반응을 묻자 시큰둥해 했다.

주말이 시작된 지난 10일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큰 서구 양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 광주=김성탁 기자

주말이 시작된 지난 10일 광주광역시에서 가장 큰 서구 양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모습. 광주=김성탁 기자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이다. 이재명 대표 관련 수사에 이어 송영길 전 대표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 등이 불거졌다. 정치에 관심이 떨어졌다지만 민주당에 대해 묻자 곧 답변이 돌아왔다. “민주당 지지율이 광주에서도 당연히 떨어지죠. 나도 실망했어요. 여태 거기만 찍었는디,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이 밖이나 집에서면 몰라도 국회 회의하는 데에서 코인을 하믄 되겄어요? ‘너는 해라, 나는 돈 벌란다’ 이거지.” 상대적으로 돈 봉투 사건에 대해선 반감이 덜했다. 이씨는 “여당 쪽도 차떼기까지 하지 않았느냐”며 “전부 다 안 해야 하고, 돈으로 국회를 움직이면 나라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했다.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누가 선전할 것 같냐고 묻자 그는 “민주당이 저번 총선처럼 압승은 못 할 것”이라면서도 윤석열 대통령 얘기를 꺼냈다. “대통령 된 지 1년이 넘었는디 야당하고 대화 한 번을 했어요? 국민을 위해 거짓으로라도 만나야죠.” 그는 이어 “경제가 중요한데 물가가 너무 올랐다"며 "광주에서 조금만 나가면 다 농촌인데, 엊그제 망종(芒種)에도 모내기나 보리 타작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호남 민주당 지지율, 50%대 머물러

 호남은 지난 대선 때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이런 호남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했다. 지난 3월 첫째 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30%대 아래로 떨어졌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부결 과정에서 30여 명의 이탈표가 발생한 직후였는데, 광주·전라에서도 전주 대비 무려 14%p가 빠진 51%를 보였다. 이달 첫째 주 같은 기관 조사에서도 호남의 민주당 지지율은 50%대에 머물러 있고,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13%로 전국 최저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런 현상은 민주당에 실망했지만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터미널 광장에서 만난 회사원 박모(54·남구)씨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였지만 싫어하게 됐다”며 “그나마 역할을 해줄 세력이라고 봤는데 그런 모습은 없고, 선거 때만 팔아먹지 지역 발전을 위해 해준 것도 없다”고 쏘아붙였다. 박씨는 “국민의힘 쪽이 여기도 들어와 지역 발전을 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윤 대통령이 정치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이쪽저쪽 다 짜증 나니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주말이 시작된 지난 10일 오후 서구 양동시장에서 만난 최모(71·서구)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서울시장·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그래 부렀제, 이재명 대표 건도 그렇고 이번에 또 거시기(송영길·김남국 사건)도 나와 불제, 민주당에서 악재가 계속 터지니 사람들이 말을 못해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운동을 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뭐하러 그런 것들 도우려 하냐. 되는대로 찍고 말지’라고 합디다.”

 그러면서 최씨는 “웬만하면 민주당 지지세가 흔들릴 상황인데, 윤 대통령이 못하니 무너질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정부가 6·10 민주항쟁 기념식에 처음으로 불참했다는데, 수십 년 쌓아온 민주화를 다 까먹어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마치 ‘너는 마음에 안 들어’하는 식으로 포용을 못 하고, 검찰 출신들을 중요한 자리에 앉혀 어쩌자는 거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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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서 민주당 지지 감소 뚜렷

 광주에서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은 젊은 층에서 두드러졌다. 한국갤럽이 KBS광주방송의 의뢰로 지난 3월 초 광주시민 803명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20대에서 43%, 30대에서 52.7%를 보였다. 50대 이상에서 70%를 웃돈 것과 큰 차이다. 직업별로는 학생층에서 39%로 유독 낮았다.

 “취업 준비나 공부에 시간을 많이 쓰니 친구들끼리 정치 얘기를 잘 안 해요. 그런데도 김남국 얘기는 많이 했습니다.” 이날 오후 전남대 도서관 앞에서 만난 대학원생 김모(32·북구)씨는 코인 의혹이 민주당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일반 사람들은 코인으로 손해 본 경우가 많은데 김 의원의 투자 정황을 보면 상식적이지 않은 게 많은 것 같다”며 “‘서민 코스프레’도 해서 더 배신감이 크다”고 꼬집었다. “한 친구가 제2, 제3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코인에 투자했다가 1억원까지 빚을 지고 멈췄는데, 김 의원은 어떻게 그렇게 벌 수 있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죠. 작전 세력 등 의혹이 밝혀진 건 아니지만, 뭔가 나온다면 심판받을 겁니다.”

 김씨는 “윤석열 정부도 좋게 보이진 않는다”며 “검찰 수사가 국민의힘 의원들보다 민주당 의원들에만 집중되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그래도 과거 지역 차별이 심했던 때에 비하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계속 참석하는 등 통합 시도를 하는 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전남대 대운동장 근처에서 만난 로스쿨 재학생 김모(28)씨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윤석열 정부가 하려는 목표가 없다고 할까, 아무것도 안 하는데도 민주당이 제대로 견제를 못 하니 싫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검찰 수사는 정권이 대놓고 견제하니 당하는 거라고 치더라도, 야당 역시 내부 편싸움만 하지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는 전남대 후문 지역의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광주=김성탁 기자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는 전남대 후문 지역의 횡단보도를 시민들이 건너고 있다. 광주=김성탁 기자

이재명 대표에 대한 평가 엇갈려

 대선 패배 후 당을 이끄는 이 대표에 대한 평가는 다양했다. “검찰이 수사를 그렇게 해도 나온 게 뭣이 있어. 여권을 그렇게 수사하믄 안 나오겄어?” 양동시장을 찾은 이모(69·서구)씨는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등에서 못했으니 정권이 교체됐으면 잘하면 될 일이지, 전 정부 탓을 왜 하느냐”며 “야권에 이재명을 대체할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와 달리 한모(75·서구)씨는 “민주당이 뭉치면 살 수 있는데 하나로 못 뭉친다”며 “원인은 이재명에게 있는 것 같은데, 국회의원을 안 해봐 기반이 없어서인지 당내 세력을 휘어잡는 장악력이 약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젊은 층에서도 서로 다른 반응이 나왔다. 전남대에서 만난 대학원생 이모(29·북구)씨는 “의혹을 정면 돌파하지 못해 그 자리에 있으면 계속 공격당할 테니 다른 당 대표가 나와야지 않겠느냐”며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에 오래 있었던 분들보다는 세대가 바뀌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반면 대학생 김모(26·동구)씨는 “이 대표를 빼고 실력을 보여준 사람이 민주당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어스름한 저녁 무렵 식당이 밀집한 금호지구 한 가게에서 50대 초반 남성들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자리에 동석했다. 자영업을 한다는 김모(52·북구)씨는 “부동산값 폭등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싫었지만, 막상 대선 투표장에선 1번을 찍었는데 후회한다”며 “미국하고 척 질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일본과도 관계를 개선해야 하니 윤 대통령이 잘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때문에 풀렸던 돈이 걷히고 자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제가 어려워지는 건데 왜 대통령 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함께 있던 치과의사 김모(52·서구)씨가 “가장 큰 우방이지만, 미국의 정책 1순위는 자국 우선주의”라며 “우리나라는 미·중 사이에서 새우등이 터진 격인데, 미국에 잘해주면서 뭐라도 얻어냈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호남이 민주당을 찍어온 것은 현 여권 쪽이 싫으니 차악을 택했던 것”이라며 “과거에는 진보·보수 논리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경제 쪽으로 관점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던 이정현 전 의원이 19대 총선 때 광주 서구에 출마해 39% 정도나 얻고 떨어졌는데, 이후 보궐선거 때 순천·곡성에서 당선됐었다. 공약대로 예산 폭탄을 퍼부어 다른 지역이 다 어려울 때 그쪽만 돈이 남아돌았다더라. 이젠 여기도 산업을 키울 예산을 따오고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쪽이 당선될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