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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윤석만 논설위원이 간다

잠자는 학생 깨웠다고 신고? 사라지는 학교 규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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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아동학대냐 vs 생활지도냐

윤석만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수업시간에 떠든 학생을 야단쳤다가 아동학대 혐의로 기소된 40대 A교사가 지난달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른 학생에게 피해 주는 행동으로 통제가 필요해 훈육했다면 아동학대로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당시 A교사의 변론을 맡았던 박재성 변호사는 “학생지도에 힘쓰는 교사들이 오히려 형사사건에 휘말려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상벌점 운용, 소지품 검사 금지
“학생들 책임·의무 없이 권리만”

교권 침해 13년간 237→520건
“폭행당한 교사들, 말도 못 꺼내”

학생 스스로 규칙 만든 반월초
선진국에선 교칙 어기면 엄벌

학생 지도 기피하는 교사들

지난 5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초 사회 수업 시간. 한 학생이 ‘자유’와 ‘자율’을 칠판에 쓰고 그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윤석만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안산시 반월초 사회 수업 시간. 한 학생이 ‘자유’와 ‘자율’을 칠판에 쓰고 그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다. 윤석만 기자

A교사가 아동학대 피의자로 몰린 것 역시 소란 피운 학생들을 지도하면서였다. 2021년 A교사는 수업시간에 떠든 학생을 앞으로 불러낸 후 다른 학생들에게 “얘가 잘못한 점을 말해보라”며 야단쳤다. 친구와 다툰 또 다른 학생에게는 “선생님도 너희가 말을 안 들으면 몽둥이로 때리고 싶다”고 했다.

재판부는 “연필로 다른 학생의 팔을 찌르고 반복적으로 다툼을 벌여 따끔한 훈계가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학교폭력 의심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듣고 충분한 지도와 훈계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일부 학생은 A씨의 교육방식에 문제가 없다고 했고, 평소 열성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판결이 나온 뒤 교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무죄에 안도하기보다 법정 싸움에 휘말릴 수 있단 우려에 생활지도를 꺼리게 된 것이다. 12년째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손덕제 울산 외솔중 교사는 “칭찬 스티커를 못 받은 아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니 학대라는 학부모도 있었다”며 “아동학대로 몰릴까 봐 학생지도를 놓으려 하는 교사들이 많다”고 했다.

“유죄 추정의 원칙?”

한국교총에 따르면 2022년 중학교 교사 B씨는 담임을 맡은 반의 학생이 흡연한다는 말을 듣고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로 불러 상담키로 했다. 곧바로 학교 선도위원회에 넘기면 생활지도 이력이 많은 학생의 피해가 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틀째까지 한 번도 교무실에 오지 않자 복도에 있던 학생을 발견하곤 어깨를 잡아 돌려세웠다. 그러자 이 학생은 오히려 B교사에게 폭행당했다며 신고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B교사는 곧바로 분리조치 됐고 담임 업무가 정지됐다. 몇 개월의 조사 기간 동안 본인의 행동이 폭력이 아니었다는 점을 소명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았다. 무혐의로 종결되긴 했지만, 이미 ‘폭력교사’로 낙인찍힌 뒤였다. 이 밖에도 잠을 자고 있는데 깨웠다거나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신체접촉이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아동학대 신고된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김동석 한국교총 교권본부장은 “신고 즉시 해당 교사는 직위 해제되고 무혐의 입증 책임이 교사에게 있어 심적 부담이 매우 크다”며 “학교에서의 아동학대는 ‘유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령상 아동학대는 의심만 있어도 신고가 가능해 무혐의를 받더라도 무고죄조차 물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도에서는 한 초등학교 교사가 아동 성추행 혐의로 신고 됐다. ‘내 친구가 선생님한테 허벅지 만짐을 당했다’ ‘시험에서 백점 맞은 뒤 머리를 쓰다듬은 게 기분 나빴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교사는 즉각적인 출근 금지조치와 함께 8개월 동안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해당 신고 내용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꾸며낸 이야기로 드러났다.

아동학대방지법의 부작용

당초 아동학대방지법은 가정에서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아동학대 신고가 급증했다. 2012년 16건에 불과했는데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엔 2154건으로 폭증했다. 2020년(882건)과 2021년(1089건)은 대면수업이 적어 줄긴 했지만 팬데믹이 끝난 뒤 다시 느는 추세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학교 안에서 아동학대방지법은 일부 학생·학부모가 교사들을 괴롭히는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지난 1월 한국교총 설문조사(5520명)에 따르면 교원의 65%가 “정당한 교육활동인데도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어 억울하고 교육 의욕이 약화한다”고 답했다. 77%는 “생활지도 중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당할까 봐 불안하다”고 밝혔다.

신고가 남발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직무 수행 중 아동학대범죄를 알게 되거나 의심이 있는 경우 즉시 신고해야 한다”는 조항(10조 2항) 때문이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C중학교에서 담임교사가 숙제하지 않은 아이들을 훈육했는데, 얼마 후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피해자로 지목된 학생이 학대 사실을 부인하며 무혐의로 끝났다.

나중에 보니 신고자는 교감이었다. 자녀로부터 해당 소식을 들은 한 부모가 교감에게 문제를 제기해 신고가 이뤄졌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장은 “사태가 커질 수 있어 조금만 의심 가면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교사가 아동학대로 무혐의·불기소 처분을 받은 비율(53.9%)은 전체(14.9%)보다 압도적으로 높다(경기교사노조). 김영준 경상남도 거제시 대우초 교사는 “생활지도가 언제 아동학대로 둔갑할지 몰라 카메라를 달고 다녀야 하나 생각도 든다”고 했다.

급속히 무너지는 교권 현장

생활지도가 위축되면서 교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6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D교사가 동급생과 몸싸움하던 E군을 제지한 뒤 연구실로 따로 불렀다. 흥분 상태의 E군은 연구실 서랍에서 목공용 톱을 꺼내 들고 “뭘 째려봐 이 ×××아 죽여버린다” 등의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지금 나가도 어차피 선생님은 못 잡을 것 아니냐”고 으름장을 놨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 사건으로 D교사는 정신적 충격을 받고 몇 주 동안 병가를 냈다. 복귀 후엔 다른 학교로 전출했다. 손덕제 교사는 “학생들에게 교권침해를 당하고도 부끄러워서 신고조차 못 하는 교사들이 많다”며 “교사 대상 폭력은 학생부에 기재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총에 따르면 교권침해는 2009년 237건에서 2022년 520건으로 늘었다.

현장에선 교권 추락의 원인 중 하나로 학생인권조례를 꼽는다. 손덕제 교사는 “담배 냄새가 나 가방을 보자고 했더니 학생인권조례에 소지품 검사는 금지돼 있다고 반박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했다. 김태석 경기도 용인시 성복초 교장은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나기 위해선 책임과 의무를 함께 배워야 하는데 학생인권조례는 권리에만 치우쳐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학생인권조례에 따르면 학교에서 소지품 검사와 개인 기록물 열람, 상벌점제 운용 등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학생 면담 시에도 학부모 동의가 필요하다. 박준철 경기도 평택시 원정초 교사는 “아이들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교육하다가 자칫 범법자로 몰릴 수 있는 상황에서 누가 열심히 하겠느냐”며 “많은 교사가 생활지도에 손을 놓아버렸다”고 했다.

책임과 의무 함께 가르쳐야

지난해 한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목공용 톱을 들고 있는 모습. [PD수첩 캡처]

지난해 한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목공용 톱을 들고 있는 모습. [PD수첩 캡처]

교사의 생활지도가 어려워지자 학생들 스스로 규칙을 만든 사례도 있다. 지난해 6월 반월초는 수차례의 학급회의와 교사 토론, 학부모 동의를 거쳐 선도 규정을 구체화했다. 김도형 교장은 “수업 태도가 불량하거나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 교사에게 불손한 언행을 했을 때 등 학생들이 제안한 의견을 바탕으로 교칙을 개정했다”고 밝혔다.

교칙에 따르면 문제 학생은 경중에 따라 자기성찰 보고서 작성, 교내·외 봉사, 특별교육, 출석정지 등 조치를 받는다. 아울러 새 학년이 되면 학생들 스스로 각 반에서 지켜야 할 ‘반칙’을 만든다. 6학년 1반에선 수업 중 소란을 일으키거나 비속어·욕설을 쓰면 10분간 ‘묵언 수행’을, 지각 시엔 방과후 교실 청소를 한다. 전혜원(12)양은 “자유롭게 의견을 낸 뒤 50% 이상 찬성으로 ‘반칙’을 정했다”고 말했다.

교실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반 담임인 김미희 교사는 “최근 설문조사에서 우리 반 학생의 80%가 스스로 만든 규칙을 지키고 있거나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김성천(12)군은 “나의 자유가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지각생이 절반 이상 줄고”(장소윤·12), “비속어나 욕을 하던 친구들도 많이 바뀌었다”(이에스더·12)는 의견도 있었다.

선진국에선 학생인권을 존중하되 그만큼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교칙을 어기면 엄격히 처벌한다. 핀란드는 수업방해, 부정행위 등 발생 가능한 각종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그에 따른 대한 학생지도 방법이 방과후 잔류(detention), 서면경고 등으로 구체적이다. 영국은 엄격한 상벌점제로 학생 행동을 기록하며, 문제 학생에 대해선 전담팀을 투입해 휴게·점심시간 자유 박탈, 교실 격리 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