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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프트 41순위 요키치, NBA 정복자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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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덴버의 파이널 우승을 이끈 니콜라 요키치가 한 손에 MVP 트로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딸을 안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덴버의 파이널 우승을 이끈 니콜라 요키치가 한 손에 MVP 트로피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딸을 안고 있다. USA투데이=연합뉴스

 세르비아 출신 센터 니콜라 요키치(28)가 덴버 너기츠의 미국프로농구(NBA) 첫 파이널 우승을 이끌었다.

 덴버는 13일(한국시간) 미국 콜로다로주 덴버의 볼 아레나에서 열린 2022~23 파이널(7전4승제) 5차전에서 마이애미 히트를 94-89로 꺾고 4승1패를 기록했다. 1967년 창단한 덴버는 1976년 NBA에 입성 이후 47년 만에 처음으로 파이널에 오른 데 이어 첫 우승까지 이뤄냈다.

 70-71로 뒤진 채 돌입한 4쿼터 시작과 함께 요키치가 훅 슛을 넣었다. 마이애미의 지미 버틀러가 4쿼터 막판 13점을 몰아쳤지만, 요키치는 야투 16개 중 12개를 넣는 등 양 팀 최다인 28점(16리바운드)을 기록했다.

 요키치는 이번 플레이오프(PO)에서 골밑을 향해 탱크처럼 밀고 들어갔다. 스핀 무브로 앤서니 데이비스(LA레이커스), 뱀 아데바요(마이애미) 등 상대 빅맨들을 가볍게 요리했다. 거구(키 2m11㎝, 체중 129㎏)의 센터인 그는 포인트 가드처럼 정확한 패스를 뿌려줘 ‘포인트 센터’라 불렸다. 슛 릴리즈 포인트가 머리 뒤쪽이라서 ‘인간 투석기’라 불리기도 했다. NBA 공룡 센터 샤킬 오닐(2m16㎝)은 3점슛이라도 부정확한데, 요치키의 3점슛 성공률은 46.1%에 달했다.

 요키치의 이번 플레이오프(PO) 스탯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1승1패로 맞선 3차전에서 파이널 최초로 30점-20리바운드-10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했다. 윌트 체임벌린의 PO 최다 트리플 더블을 넘어 총 10회나 기록했다. 역대 최초로 PO에서 500점, 250리바운드, 150어시스틀 넘겼고, 세 부문 모두 1위에 올랐다. 세르비아에서 날아온 백인 센터가 모든 통계를 다 깨버렸다.

 당연히 11명 만장일치로 파이널 MVP(최우수선수)에 주어지는 빌 러셀 트로피를 받았다. 데니스 존슨(1979년 드래프트 29순위)를 제치고, 역대 드래프트 가장 낮은 순위로 파이널 MVP를 수상한 선수가 됐다.

 요키치가 2014년 드래프트 2라운드 41순위로 지명되는 순간, ESPN은 중계를 멈추고 타코 광고를 내보낼 만큼 무관심했다. ‘니콜라 요키치, 파워포워드, 세르비아’라고 밑에 자막 처리했다. 덴버는 2015년 요키치와 마이클 멀론 감독이 오면서 강팀으로 변모했다. 특히 요키치는 던버의 ‘컨트롤 타워’였다. 큰 엉덩이로 스크린을 걸어주며 자말 머레이(26·캐나다)와 투맨 게임을 펼쳤다.

요키치가 2014년 드래프트 2라운드 41순위로 지명되는 순간, ESPN은 중계를 멈추고 타코 광고를 내보낼 만큼 무관심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요키치가 2014년 드래프트 2라운드 41순위로 지명되는 순간, ESPN은 중계를 멈추고 타코 광고를 내보낼 만큼 무관심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요키치는 이타적인 플레이로도 유명하지만, 이번 파이널에서는 동료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우승 확정 후에는 상대 팀 선수를 한 명씩 안아줬다. 우승 세리머니 때도 그는 딸을 안고 중앙이 아닌 가장자리에 서서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요키치는 네 살이던 1999년 코소보 전쟁의 악몽을 겪은 세대다. 그는 “사이렌과 대피소, 어둠을 기억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어릴 적 과체중이었던 요키치는 말을 너무 좋아해 한때 기수를 꿈꾸기도 했다. 경마 클럽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먼저 농구선수가 되면 나중에 훌륭한 기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설득했다.

 NBA 입성 당시 요키치는 플랭크 자세로 30초도 못 버텼다. 그러나 요키치는 NBA에 진출한 뒤 좋아하는 콜라를 끊고 체중을 20㎏이나 줄였다. 왼쪽 발목을 다친 뒤엔 오른발을 디딤발 삼아 슛을 쏘는 ‘솜보르 셔플’을 만들었다. 세르비아 고향인 솜보르의 지명을 따서 만든 시그니처 동작이다.

세르비아 솜보르에서 요키치를 응원하는 세르비아인들. AP=연합뉴스

세르비아 솜보르에서 요키치를 응원하는 세르비아인들. AP=연합뉴스

 AP통신에 따르면 솜보르 주민들은 새벽인데도 낡은 강당에 모여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를 지켜봤다. 요키치가 득점하거나 리바운드를 잡으면 “MVP, MVP”를 외치며 열광했다. 요키치는 우승 확정 후 “좋다. 할 일이 끝났다. 이제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가장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키치는 휴식 기간 솜보르로 돌아가 경주마를 돌보면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인구 700만이 조금 넘는 세르비아인에게 6월은 특별하다. 지난 11일 세르비아의 테니스 스타 노박 조코비치(36)가 프랑스 오픈 테니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요키치는 이름(jokic)과 발음이 비슷한 데다 카드게임의 조커처럼 다재다능하다고 해서 ‘조커’로도 불린다. 조커는 조코비치의 별명이기도 하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조코비치는 자신은 ‘놀(nole)’이란 애칭이 더 좋다며 요키치에게 별명을 쓰는 걸 허락해줬다고 한다. 요키치는 이날 “세르비아에서 스포츠는 특별하다. 우리에겐 역대 최고인 노박(조코비치)이 있다. 이제 NBA 챔피언까지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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