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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불쾌" 與 "추방 검토"에도…中 '싱하이밍 조치' 사실상 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 논란이 일파만파다. 외교부의 초치와 국민의힘의 맹폭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관련 논란을 직접 언급하고 불쾌감을 드러내면서다. 상대국 외교관의 활동과 언행을 주재국 정상이 비판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싱 대사의 부적절한 발언이 외교적 항의의 범주를 벗어나 양국 관계 자체를 뒤흔드는 대형 악재로 비화한 셈이다.

尹 직접 나섰다 "부적절 처신, 국민 불쾌"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 논란에 대해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발언 논란에 대해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 대사의 ‘베팅 발언’에 대해 “외교관으로서 상호 존중이나 우호 증진의 태도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어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중 관계 악화의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미·중 경쟁 속)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 등 싱 대사의 발언을 단순한 외교적 결례를 넘어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 문제적 언행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주한중국대사는 중국을 대표해 한국에 파견된 외교 사절이고, 그런 만큼 싱 대사의 발언엔 중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인식이 반영돼 있다고 봐야 한다”며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지난해 말부터 싱 대사가 공식 석상에서 발언한 내용을 꾸준히 모니터링했고 특히 이번 베팅 발언은 선을 넘는 언행이자 한국의 국익과 주권을 침해한 명백한 문제행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 탓하는 中 "인신공격성 보도"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발언 논란과 관련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브리핑에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발언 논란과 관련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 중국 외교부

정부의 강경한 입장에도 중국 측은 싱 대사에 대한 징계나 대사 교체 등의 조치를 사실상 거부했다. 오히려 싱 대사 개인을 겨냥해 문제 삼는 한국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국이 싱 대사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한국 측의 입장 표명과 함께 일부 매체가 싱하이밍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 심지어 인신공격성 보도를 한 점에 주목한다”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왕 대변인은 특히 싱 대사의 발언 논란에 대해 “대대적으로 부각할 화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을 더 이상 언급하거나 문제 삼지 말라는 취지다. 왕 대변인은 또 싱 대사가 대만 문제 등 중국의 핵심 이익 사안과 관련 한국 정부 당국자와 정치권 인사를 무분별하게 만나 항의성 입장 표명을 이어간 것에 대해서도 “중·한 관계의 발전을 유지하고 추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도 "강제 추방 검토" 강경 모드 

국민의힘은 지도부 차원에서 싱 대사에 대한 ‘페르소나 논 그라타(PNG·외교상 기피 인물)’ 지정을 압박하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싱 대사와 중국 정부가 책임 있는 사과 표명 없이 오직 힘을 과시하려 한다면 외교적으로 심각한 악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철규 사무총장 역시 “싱 대사가 외교관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망각하고 계속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앞으로 외교적 기피 인물 지정까지 검토해야 한다”며 중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미국에 베팅할 경우 후회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내정 간섭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제 발언을 쏟아냈다. 김현동 기자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는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미국에 베팅할 경우 후회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내정 간섭으로 해석될 수 있는 문제 발언을 쏟아냈다. 김현동 기자

외교적 기피 인물 지정은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9조에 근거한 합법적인 외교관 추방 절차다. 임무 수행이 강제로 중단되고 면책특권의 효력 역시 박탈된다는 점에서 외교관에게 부과하는 가장 큰 처벌로 평가된다. 비엔나 협약에 따르면 주재국에선 언제든 특정 외교관을 기피 인물로 지정해 파견국에 통고할 수 있고, 이 경우 파견국은 해당 외교관의 공관 직무를 종료시켜야 한다. 외교상 기피 인물로 지정된 외교관의 경우 72시간 이내에 주재국을 떠나는 게 관례다.

외교부 역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중국 정부의 입장 표명과 추가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실제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이 지난 9일 싱 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외교 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하라”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외교 소식통은 “싱 대사에 대한 외교상 기피 인물 지정 검토를 공식화한 적은 없지만, 모든 결과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입장 자체에 최악의 경우 외교적 기피 인물 지정 등의 대응까지 감안하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며 “대통령실 역시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싱 대사의 문제적 언행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고 중국 측 입장을 요구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기로 선 대화·협력 모드…'악재 장기화' 우려 

13일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예비역 장성들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문제 발언을 규탄하는 시위에 나섰다. 왼쪽부터 김종배 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교육사령관), 김근태 예비역 육군 대장 (전 1군사령관), 손정목 예비역 해군 중장 (전 천안함재단이사장). 연합뉴스

13일 서울 중구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예비역 장성들이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문제 발언을 규탄하는 시위에 나섰다. 왼쪽부터 김종배 예비역 육군 중장 (전 교육사령관), 김근태 예비역 육군 대장 (전 1군사령관), 손정목 예비역 해군 중장 (전 천안함재단이사장). 연합뉴스

이번 논란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제안한 반관반민(半官半民) 형태의 ‘1.5트랙 대화 체제’와 외교차관 전략대화 등 양국 간 대화 채널 복원 협의를 이어가는 상황이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역시 지난달 “한·중 양자 간 전략대화를 시작해보려 한다. 계획이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싱 대사의 발언 논란에 대한 중국 측의 조치 필요성을 분명히 함에 따라 한·중 관계 역시 대화 채널 복원 흐름에서 갈등 국면으로 급격히 전환되는 모양새다. 특히 중국이 사과 등 공식적인 입장 표명과 싱 대사에 대한 조치 없이 논란을 무마하려는 태도를 지속할 경우 한·중 협력을 가로막는 장기적 악재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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