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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바가지 요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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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조현숙 경제부 기자

15년 전쯤 일이다. 지방에 사는 친구가 서울로 왔다. 서울역에 마중을 갔고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충정로. 걸어도 되는 거리지만 짐이 있어 택시를 선택했다. 친구와 열심히 사투리로 수다를 떠는데 아차, 택시가 가는 방향이 이상했다.

충정로로 꺾지 않고 시청을 지나고 있었다. 충정로는 저 뒤편인데 택시는 앞으로 가기만 했다. 교통 체증도 심했다. 떡하니 서 있는 광화문을 마주하니 정신이 퍼뜩 들었다. 충정로로부터 더 멀리 달아나려는 듯 안국동으로 향하는 택시기사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너무 돌아가는 거 아닙니까.”

회사가 근처라 밥 먹듯 다니는 거리였다. 사투리를 쓰고 짐이 있으니 서울 초행길이라 여겼나 보다. 택시기사와 실랑이하며 겨우 충정로에 도착했다. 걸어도 20분이 안 걸릴 곳을 1시간 돌아내렸다.

턱없이 비싼 값을 뒤집어씌운다는 뜻으로 ‘바가지’란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건 1960년대 즈음이다. 그때도 서울역은 바가지의 온상이었다. 택시만이 아니었다. 냉차를 비싼 가격에 강매하는 서울역전 다방이 많았고, 10배 넘는 가격에 화를 낸 시골 손님에게 구두닦이가 칼부림을 한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도 바가지를 쓰지 않는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최단 경로가 실시간으로 뜬다. 요금을 미리 확인해 택시를 부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제 가격이 맞는지 클릭 몇 번이면 알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지난 4일 한 방송에서 지방 시장 상인이 출연진에게 터무니없이 비싼 값에 옛날과자를 파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갔다. 관할 군청에서 하루 만에 사과문을 올릴 만큼 역풍이 셌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건 그 상인 같다. 전국에서 팔리고 있는 옛날과자 가격을 온라인에서 100g 단위로 비교할 수 있는 시절이다.

바닥 경기가 여전히 차다. 요즘 소비자는 짠물 소비에 진심이다. 일본과 비슷한 장기 불황에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도 잡힌다.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 ‘장사의 신’으로 통하는 우노 다카시는 “손님이 횡재했다는 느낌이 들게 해야 살아남는다”고 했다. 코로나 때 어려웠다는 이유로 한탕을 노리는 상인이 있다면 그 욕심 내려놔야겠다. 옛날과자의 교훈에서 알 수 있듯 세상이 바뀌었다. 서울역이 예전 그 서울역이 아니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