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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수신료 합산 청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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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전영선 기자 중앙일보 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전영선 K엔터팀장

“모든 시청자는 공영방송의 주인으로서 재원을 균등하게 부담하고, 공영방송은 균형 있고 보편적인 방송서비스를 통해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에 대한 공적 책임을 수행한다.”

KBS가 밝힌 수신료 징수의 변이다. 수신료가 전기요금 고지서에 합산 청구되기 시작된 것은 1994년 10월 1일부터다. 그 전엔 KBS가 직접 걷었다. 합산 징수는 수신료 징수율이 떨어지자 찾아낸 ‘묘수’였다.

이 방식은 처음부터 반발에 부딪혔다.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면 전기가 끊기는지” 문의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KBS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안정적 재원 마련이라는 명분을 앞세웠다. 이후 2006년엔 한 시민단체가 수신료 강제징수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지만, 결국 각하됐다.

손쉬운 징수는 KBS의 축복이자 저주다. 1981년 정해진 수신료 월 2500원은 당시 한 달치 일간지 구독료에 준해 결정됐다. 신문 구독료가 월 2만원으로 오르는 동안 수신료는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강제 징수라는 불만이 있는 만큼 인상 명분 확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영방송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묶어 두는 나라는 흔치 않다. 그리스·파키스탄·튀르키에·이탈리아 등이 이 방식을 따른다. 공영방송 모델을 만든 영국도 수신료(TV Licence)는 따로 징수한다. 연간 159파운드(약 25만원)로 연 3만원인 한국보다 한참 비싼 것 같지만 뜯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수신료엔 BBC를 포함, 모든 지상파 채널의 ‘다시 보기 서비스’ 등이 포함돼 있다. 스마트TV나 PC로 이들이 만든 콘텐트를 보더라도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수신료를 내도 KBS 콘텐트를 다시 보려면 추가 비용이 든다. 지상파 3사가 합작으로 만든 OTT 웨이브의 최저 요금제(7900원)를 택해 본다고 하면 연간 최소 12만4800원이 든다. 게다가 KBS 2TV는 광고도 한다. 가성비가 좋다고 하기 어렵다.

OTT 전성시대에도 공영방송 모델의 장점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KBS의 대응을 보면 그 존재 이유에 대한 철학이 완전히 증발한 것 같다. 지금은 수신료를 걷는 방식으로 싸우기보다 지갑을 열 공영방송의 주인인 시청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설득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