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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제약·바이오 사기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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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원석 기자 중앙일보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장원석 증권부 기자

의학 세상은 넓고도 깊지만 크게 진단과 치료 둘로 나뉜다. 언뜻 치료가 주인공처럼 보여도 정확한 진단 없이는 좋은 치료도 없다. 그런데 진단이란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경험 많은 의사가 딱 알아봐 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드물다. 조금만 애매해도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수많은 검사가 동원된다. 좀 더 쉽고, 간단한 진단 기술이 의료계의 숙원인 이유다.

피 몇 방울로 250개 질병을 진단한다는 한 스타트업의 등장은 그래서 화젯거리였다. 엘리자베스 홈스가 창업한 테라노스다. 홈스가 2012년 이런 주장을 꺼냈을 때 많은 이가 의문을 표했다. 다수의 병을 진단하려면 혈액량 역시 많아야 하는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었다. 혈액 채취 과정에서의 오염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여론은 “그러니까 신기술 아니냐”며 홈스에게 힘을 실어줬다. 명문대 출신, 탁월한 언변,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하는 터틀넥 패션도 환상을 더했다. 믿음이 생기니 돈이 몰렸다. 루퍼트 머독 같은 큰손이 거액을 투자했고, 대형 약국 체인 월그린스는 아예 동업자가 됐다. 이내 홈스는 자수성가한 여성 억만장자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전 세계를 속인 거짓말은 2015년 한 언론의 탐사보도로 막을 내렸다. 애초에 그런 기술 따윈 없었고, 진실을 감추려는 수많은 조작이 드러났다. 테라노스는 퇴출당했고, 홈스 역시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임신 등의 이유로 무려 8년을 버티던 그는 지난달 30일에야 교도소에 수감됐다.

사기에 영역이 따로 있겠느냐마는 바이오 업계엔 유독 이런 일이 잦다. 업의 목적 자체가 기존에 없던 걸 창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시도 덕에 혁신적인 신약과 기술이 탄생하지만, 환자의 실낱같은 희망을 짓밟는 일도 적지 않다. 20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든 황우석 사태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제약·바이오를 국가전략기술로 격상하고, 100조원대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내놨다. 반도체를 잇는 대표 산업으로 만든다는 의지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고, 감염병과 기후변화도 갈수록 예측이 어렵다. 바이오만큼 성장이 확실한 산업도 없으니 방향은 옳다. 과감한 지원과 함께 ‘제2의 홈스’를 걸러낼 장치도 꼼꼼히 챙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