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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여자 넷의 이야기…이들을 묶은 건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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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60대 여성 4명의 우정과 삶을 그린 연극 ‘20세기 블루스’가 2023 두산인문극장 프로그램 일환으로 공연 중이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60대 여성 4명의 우정과 삶을 그린 연극 ‘20세기 블루스’가 2023 두산인문극장 프로그램 일환으로 공연 중이다. [사진 두산아트센터]

나이듦과 여성, 두 소재의 조합이 이색 흥행 코드가 됐다. 60대 여자 친구 네 명의 하루를 그린 연극 ‘20세기 블루스’(윤색·연출 부새롬)가 연일 매진 사례로 공연계 화제에 올랐다.

지난달 30일부터 오는 17일까지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국내 초연 중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두산인문극장’이 ‘나이, 세대, 시대’란 주제로 기획한 작품이다. 인터파크 예매관객 평점은 9.8(10점 만점). “따뜻하고 건강하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란 공감과 함께 극중 명대사를 되새긴 후기가 많다. “나한테는 너희들이, 역사의 시간표니까. 너희들이 로큰롤이고, 우주선 발사고, 시민 평등권이라고. 가장 엄청난 변화들이 기록된 수십년의 역사가 너희들이야” 등의 대사다.

원작은 미국 교육자 겸 극작가 수잔 밀러(79)의 2018년 동명 연극이다. “여성이 60세가 되었을 때 갑자기 섹스리스가 되거나, 매력을 잃거나, 투명인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는 작품 의도대로, 1950년대 태어나 시대를 관통해온 동년배 여성들의 일상을 부각했다.

사진 작가인 60대 싱글맘 대니(우미화)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릴 개인 회고전에 40년간 매년 친구들을 기록한 사진을 걸기로 결심하지만, 연례 모임날 만난 친구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소환할 사진전에 쉽사리 동의하지 못한다. 91세 치매 어머니(이주실)를 모시는 대니,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남편과 보스턴에 사는 의사 개비(이지현), 저명한 신문기자이자 흑인 레즈비언인 맥(박명신·강명주), 별거 중인 부동산 중개인 실(성여진)까지…. 1950년대 미국 반공주의 광풍 속에 태어나 1970년대 반전 운동, 흑인·여성·퀴어 인권 운동에 뛰어든 네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성형수술, 다이어트, 데이트앱과 콘돔, 부동산 투자 등 가벼운 일상 대화가 외모 지상주의, 여성 및 노인 차별, 유방암, 성소수자 문제, 쇠퇴하는 인쇄 매체 등의 묵직한 고민으로 뻗어나간다. 죽음이 가까워진 나이의 공포도 보인다. 이런 개인의 삶이 동시대적 경험과 씨실과 날실처럼 얽히며 4명의 현재를 기록한 또 다른 초상화를 완성해간다.

미국 사회를 연구한 박진빈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주인공들의 20대 시절 배경에 대해 “1963년 사회운동가 베티 프리단의 저서 『여성성의 신비』를 계기로 (남녀 성 역할을 이분화한) 이상적 가정 생활의 신화에 갇혀 사회에서의 자아 성취가 차단되어 있던 여성들의 말 못할 고뇌가 공론의 장으로 터져 나왔던 때”라고 설명했다.

밀러의 원작이 탄생한 것도 근래 들어 이러한 여성들의 역사를 돌이켜보려는 예술적 흐름 속에서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현지 공연 당시 “이 연극은 2014년 현대미술관이 선보인, 니콜라스 닉슨의 아내와 누이들의 세월을 누적한 초상화 ‘브라운 시스터스: 포티 이어즈(The Brown Sisters: Forty Years)’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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