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차 산업혁명의 ‘눈’… 반도체 버금 가는 필수 부품 만든다

중앙일보

입력

차이나랩

차이나랩’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4차 산업혁명의 주인공으로 '반도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반도체 못지않은 ‘주연’이 있다. 바로 광학렌즈다. 광학렌즈는 기계 작동의 시각적 시스템 운용을 위한 부품으로 자동차, 스마트 가전, 통신, 항공·우주, 의료, 보안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활용돼 4차 산업 혁명의 '눈'이라 불린다. 인류의 진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망원경과 현미경, 의학 분야의 혁신을 이끈 내시경과 초음파, 휴대가 용이해지며 현대인의 필수품이 된 카메라는 모두 광학 제품에 속한다. 기술이 진보할수록 수요가 늘어나는 산업군이다.

광학렌즈는 기계 작동의 시각적 시스템 운용을 위한 부품으로 4차 산업 혁명의 '눈'이라 불린다. 사진 셔터스톡

광학렌즈는 기계 작동의 시각적 시스템 운용을 위한 부품으로 4차 산업 혁명의 '눈'이라 불린다. 사진 셔터스톡

사용 범위가 넓은 만큼 글로벌 업체의 기술력, 양산 능력 등 규모도 천차만별이다. 프리미엄 광학렌즈 산업은 독일, 일본에 집중돼 있다. 라이카(독일), 칼자이스(독일), 캐논(일본), 니콘(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후발주자인 중국의 로컬 업체가 기술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부지런히 뒤를 쫓고 있다. 중국은 각종 가전 및 보안 장비의 주요 생산국으로 전 세계 광학렌즈 소비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최대 소비국'이다.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서는 실력 있는 로컬 기업의 부상이 필수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할만한 중국 광학렌즈 제조 기업이 있다. 2008년 중국에서 설립된 천루이광쉐(辰瑞光学·AAC OPTICS, 이하 AAC옵틱스)다. 스마트폰,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 태블릿 PC, 드론, 차량용 기기, CCTV, AR/VR 기기, 3D센서, 반도체 검사 장비, 각종 공업 분야와 의료 장비 등에 AAC옵틱스의 제품이 활용된다.

2008년 중국에서 설립된 광학렌즈 제조 기업 AAC옵틱스

2008년 중국에서 설립된 광학렌즈 제조 기업 AAC옵틱스

특히 스마트폰은 광학렌즈가 가장 많이 응용되는 분야다. AAC옵틱스는 샤오미, 오포, 비보, 화웨이, 아너(榮耀), 한국 삼성 등 유수 스마트폰 기업에 자사 제품을 꾸준히 공급하고 있다.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2019~2021년 기준 샤오미, 오포, 비보, 화웨이, 아너 등 주요 스마트폰 고객사를 통해 벌어들인 매출이 총매출의 8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립 10년 만에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입증한 셈이다. AAC옵틱스는 지난 4월, 중국의 산업 컨설팅 기관인 후룬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글로벌 유니콘' 리스트에서 364위에 올랐다. 후룬연구소는 AAC옵틱스의 기업 가치를 190억 위안(약 3조 4600위안)으로 평가했다.

스마트폰 보급률 높아지며 제품 수요 폭증

광학렌즈는 소재에 따라 ▲플라스틱 ▲유리 ▲유리 플라스틱 렌즈 세 종류로 나뉜다. AAC옵틱스는 주로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렌즈, 유리-플라스틱 하이브리드 렌즈, 웨이퍼 레벨 유리(WLG),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 및 자동차, 스마트 가전에서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는 제품인 '카메라 모듈'과 자동차에서 활용되는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DMS(Driver Monitoring System, 운전자모니터링시스템) 광학 솔루션, 산업용 렌즈 등 광학 부품 연구 개발·제조·판매에 주력하고 있다.

자동차에서 활용되는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DMS(Driver Monitoring System, 운전자모니터링시스템) 광학 솔루션. 사진 AAC옵틱스 공식홈페이지

자동차에서 활용되는 ADAS(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DMS(Driver Monitoring System, 운전자모니터링시스템) 광학 솔루션. 사진 AAC옵틱스 공식홈페이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카메라 모듈에 힘을 쏟았다. 굵직한 고객사에 AAC옵틱스의 제품을 판매했다. 2021년 룽치뎬쯔(龍旗電子), 화베이뎬쯔(華貝電子), 샤오미커지(小米科技)에 판매한 카메라 모듈 매출액은 각각 3억 3000만 위안(642억 3780만 원), 3억 1000만 위안(603억 4460만 원), 2억 5600만 위안(498억 3296만 원)에 달한다. 스마트폰용 렌즈 분야에서도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신형 광학 흔들림 방지 모듈을 포함한 일련의 스마트폰용 카메라 모듈 솔루션을 자체 연구 개발했다. 해당 솔루션은 드론, 차량, AR/VR 기기 등 다양한 스마트 장치에 적용된다.

카메라 모듈. 사진 AAC옵틱스

카메라 모듈. 사진 AAC옵틱스

AAC옵틱스의 저력은 '선구안'과 '연구개발 투자'

설립한 지 15년 된 AAC옵틱스가 글로벌 유니콘 기업 300위권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업계는 경영진의 탁월한 선구안과 경영 철학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AAC옵틱스의 법정대표는 돤윈젠(段勻健)지만, 회사를 이끄는 실질적인 지도자는 모기업 AAC테크놀로지(瑞聲科學·AAC Technologies)의 최고경영자(CEO)인 판정민(潘政民)이다.

루이성커지의 창업주 부부인 우춘위안(왼)과 판정민(오). 사진 바이두바이커

루이성커지의 창업주 부부인 우춘위안(왼)과 판정민(오). 사진 바이두바이커

판정민과 우춘위안(吳春媛) 부부는 1992년 선전(深圳)에 성쉐커지(聲學科技)를 세웠다. 지금 AAC테크놀로지의 전신인 성쉐커지는 음향 기기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다. 스피커, 마이크 등 휴대전화나 디지털 음향 기기에 쓰이는 부품을 주로 생산했으며 모토로라, 소니, NEC 등 당시 내로라하는 IT 기업을 고객사로 두었다.

창업 초기부터 음향 분야만 전문적으로 다룬 덕분에 중국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휴대전화용 스피커를 중심으로 ‘소형 음향 장비'의 제왕으로 군림했다. 특히 모토로라와의 협력은 AAC테크놀로지의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이를 토대로 회사는 델(Dell), 지멘스(Siemens) 등 여러 기업에 회사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중국의 음향 장치 제조 및 솔루션 업체 루이성커지(瑞聲科學, AAC Technologies)

중국의 음향 장치 제조 및 솔루션 업체 루이성커지(瑞聲科學, AAC Technologies)

2010년, AAC테크놀로지는 애플에 아이폰용 음향 제품을 납품하는 공급업체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2021년 애플이 발표한 공급업체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AAC테크놀로지와 애플 간 진행된 주문 금액은 연간 171억 위안(3조 3288억 5700만 원)에 달했다. 애플은 전 세계적으로 700개 이상의 공급업체를 보유하고 있는데, 각 업체의 순익 기준 AAC테크놀로지는 대만 TSMC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판정민과 우춘위안이 ‘대기업 주문 확보’라는 눈앞의 이익에만 집중한 게 아니라 ‘연구 개발’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혁신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2019~2021년 AAC옵틱스의 연구 개발 투자액은 누계 16억7400만 위안(3258억2736만 원)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누적 매출의 32.23%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아무리 많은 기업과 계약해도 기술력을 지속해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다면 존속이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이들 부부의 생각이었다. AAC테크놀로지는 오디오 송신기에서 소형 수신기, 음향기에서 마이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지속 업그레이드해왔다.

판정민 부부는 선구안도 갖고 있었다. 독자적인 기술력이 부족하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그들이 택한 방법은 선진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AAC테크놀로지는 미국, 스웨덴 등지에 음향 연구기관을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 연구 개발을 위해 중국 국내외 수많은 고등교육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혁신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뛰어난 기술력을 지닌 소규모 기업을 인수했다.

모기업의 철학은 AAC옵틱스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AAC 옵틱스에는 전문 광학 분야의 연구 개발 인력이 700명 이상, 광학 분야의 특허 수가 4600건을 상회한다. 산업이 고도화됨에 따라 제품에 대한 시장의 기준도 높아질 것을 내다본 처세다.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는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AAC 옵틱스가 AAC 테크놀로지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임서영 차이나랩 에디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