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모터가 감당 못해"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10년 전과 판박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8일 부상자 14명이 발생한 수인분당선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사고. 오른쪽은 2013년 7월 발생한 수인분당선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사고.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지난 8일 부상자 14명이 발생한 수인분당선 수내역 에스컬레이터 사고. 오른쪽은 2013년 7월 발생한 수인분당선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사고. 사진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부상자 14명이 발생한 경기도 성남시 수인분당선 수내역 2번 출구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 현장을 11일 찾았다. 폐쇄회로(CC)TV 장면으로는 10년 전인 2013년 7월 일어난 수인분당선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와 닮은 꼴이다. 에스컬레이터 계단이 힘없이 아래로 내려가더니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고, 가장 밑에 있던 어린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계단 모서리에 머리라도 부딪혔다면 중상자나 사망자도 나올 법한 사고였다.

사고 현장 맞은편 3번 출구에서는 지난 6월부터 에스컬레이터 신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공사 안내판에 적힌 건설 사무소로 전화를 걸어보니 “오는 9월에야 개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했다. 지난 4월에는 이곳에서 1.2㎞ 떨어진 탄천 교량 정자교의 한쪽 보행로가 무너져 당시 이곳을 지나던 40세 여성이 숨지고, 28세 남성이 다쳤다. 두 사고 지역 모두 수내역을 나와 상업 지구로 가는 길목에 있다. 수내역 인근에는 4400여명이 근무하는 분당두산타워가 2021년 1월, 5000여명이 근무하는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가 2023년 1월 입주하는 등 대기업 사무실이 많아지면서 유동 인구도 크게 늘었다.

수내역 지하철 이용객 4년 동안 1.5배

실제로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수내역 지하철 이용객은 2020년 4월 54만명에서 2023년 4월 81만명으로 1.5배 늘었다. 인근 정자역도 같은 기간 102만명에서 151만명으로 1.5배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방향으로 놓인 지하철 입구 두 곳 중 한 곳이 공사를 시작해 에스컬레이터 한 개에 더욱 많은 사람이 몰렸다. 에스컬레이터 업계 관계자는 “백화점 같은 한적한 건물에서 역주행 사고를 본 적이 있느냐”며 “유동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에스컬레이터 하중 부담도 커져 사고 확률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와 관련, 서울지방철도특별사법경찰대‧국립과학수사연구원‧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오는 13일 사고 현장에서 합동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수내역의 운영 주체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이지만, 에스컬레이터 관리는 다른 유지·보수 전문 업체가 맡고 있다. 이 전문 업체는 매달 1회 수내역 내 에스컬레이터에 대한 안전 점검을 실시하는데,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는 지난달 10일 진행된 최근 검사에서 ‘양호’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해당 에스컬레이터는 지난해 9월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해마다 실시하는 안전 점검에서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에스컬레이터 등 승강기는 설치 뒤 15년이 지나 노후화하면 3년마다 정밀안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는 2009년에 설치된 9m 길이의 승강기로, 올해가 사용 14년 차가 된다.

2013년 7월 부상자 39명 낸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가 일어난 곳은 수내역에서 세 정거장 앞에 있는 야탑역이다. 당시 검찰 수사 결과 이 사고는 사고 보름 전 에스컬레이터 보수정비업체가 이상 소음 신고를 접수하고 점검하던 중 감속기와 모터를 연결하는 피니언기어를 강도가 떨어지는 짝퉁 부품으로 교체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뛰면 하중 20배 커져”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4년 7월 새로 설치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역주행 방지 장치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했다. 역주행 방지 장치는 이상 동재을 감지하면, 구동 체인이 연결된 톱니바퀴를 기계적으로 제지해 역주행을 막는다. 하지만 한국승강기안전공단이 2015년 발표한 ‘승강기 사고원인 분석·안전 대책’에 따르면 역주행 방지 장치 설치가 의무화된 2014년 이전까지 전국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2만6128대에 달한다.

또 2014년 이후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일지라도 야탑역 사고처럼 올바른 부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관리를 부실하게 할 경우 역주행 방지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황수철 한국승강기대 석좌교수는 “출근 시간대 시간이 급해서 걷거나 뛰면 충격이 사람 몸무게의 20배 이상 커져 모터와 감속기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며 “가급적 서 있는 자세에서만 에스컬레이터를 타도록 대중교통 이용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2013년 7월 부상자 39명이 나온 수인분당선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조사보고서. 기어가 마모된 흔적이 보인다. 중앙포토

2013년 7월 부상자 39명이 나온 수인분당선 야탑역 에스컬레이터 역주행 조사보고서. 기어가 마모된 흔적이 보인다. 중앙포토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