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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이어 테슬라도 중 CATL과 손잡아, IRA ‘우회’ 횡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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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3호 13면

힘 못쓰는 배터리 대중 봉쇄

“다가오는 자동차 무역 전쟁은 아버지 세대의 전쟁과 다를 것이다.”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가 전기차 시장을 두고 최근 블룸버그를 통해 내놓은 평가다. 오일쇼크로 일본차가 미국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높이자 자동차 업계가 앞장서 일본 업체를 견제한 1980년대와 상황이 다르단 것이다. 당시엔 전미자동차연맹(UAW)이 앞장서 일본 업체를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했다. 이어 미국 정부의 압력이 더해지자 일본 업체들은 1981년부터 자발적수출제한(VER)에 들어갔다.

전기차 시대의 자동차 무역 전쟁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 중이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미국 정부가 전기차는 물론 전기차 배터리에서도 중국 업체 배제에 한창인 반면,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우회 경로를 통해 중국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적어도 자동차용 배터리 분야에서 만큼은 중국 업체를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는 중국 배터리 업체인 CATL과 함께 35억 달러(약 4조5700억원) 규모의 미국 내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포드가 해당 공장의 지분을 모두 소유하는 대신 CATL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급해 규제를 피하는 방식이다.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그래픽=양유정 기자 yang.yujeong@joongang.co.kr

미국 전기차 선두 업체 테슬라도 IRA 규제 우회 행보에 동참했다. 테슬라 역시 포드와 동일한 방식으로 CATL과 미국 공장 건설을 논의 중이란 소식이 지난 3월 흘러나왔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최근 행보는 더욱 적극적이다. 중국을 방문한 머스크는 친강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테슬라는 중국과의 탈동조화(decoupling)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내놓은 뒤, 다음 일정으로 쩡위친 CATL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미국 내 공장 건설 계획도 논의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 완성차 업체들의 반응이 과거와 달리 정부와 엇박자를 내는 이유는 뭘까. 단적으로 중국 업체 없이 안정적인 ‘배터리 공급망’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테슬라는 지난해 자사 차량에 탑재한 배터리 가운데 29%가량을 CATL에서 조달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판매된 전기차의 배터리의 60.9%, 중국 내수 시장을 제외해도 20%가량이 중국 업체 차지다. 더구나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올해부터 2035년까지 매년 15.5%씩 고속 성장을 예고하고 있어 당분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질 전망이다.

문제는 배터리 분야에선 핵심 광물 확보가 생산량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배터리 제조 기술이 한계에 도달해 에너지 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어려운 탓이다. 중국은 리튬 가공 분야에서 전 세계 시장의 70%, 코발트는 90% 이상을 장악하는 등 배터리 핵심 광물 강국으로 꼽힌다. 중국에서 가공한 핵심 광물을 전면 배제할 경우 한국이나 일본 업체들도 배터리 생산량을 빠르게 늘리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미국 현지 언론에서 “IRA의 본질적인 문제는 세계 1위 공급업체를 배제하면서 미국 내 배터리 산업을 조성하려 한다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과 일본 등 배터리 제조 강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업체와 손잡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출시한 기아차 신형 니로EV에 이어 지난 4월 출시한 디 올 뉴 코나 일렉트릭에 중국 CATL 배터리를 탑재했다. 당시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지금은 배터리 회사를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미국 이외의 국가에선 중국산 배터리를 활용해야 할 만큼 배터리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인 셈이다. 조은교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배터리 셀 제조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핵심광물과 소재 공급망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뒤늦게 전기차 경쟁에 합류한 일본 도요타는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CATL과 배터리 공급과 배터리 기술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 중국 업체의 일본 내 공장 설립 가능성도 부상하고 있다. 일본 경제주간지 주간 다이아몬드는 최근 익명의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 내부에서도 반도체의 TSMC처럼, 세계 1위 CATL의 배터리 공장을 받아들여 소재 등 주변 산업에서 일본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반도체와 달리 배터리 분야에선 미국의 대중 봉쇄 전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에선 핵심 경쟁력인 기술 특허를 보유한 미국의 대중 봉쇄가 작동했지만, 배터리에선 핵심 경쟁력인 핵심 광물을 중국이 쥐고 있어 규제 강도를 높여도 봉쇄가 쉽지 않은 상황이란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이달 말 발표될 IRA 세부지침의 외국우려단체(FEOC) 목록에서도 중국 업체를 전면 금지할 거란 예상도 나오지만 실제로 미국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할지는 미지수다. 김경훈 한국무역협회 공급망분석팀장은 “원재료 단계에서 중국의 시장점유율이 워낙 높다 보니 자동차 업체들은 물론 미국 연방 정부와 주 정부도 입장이 다른 상황”이라며 “이달 미국 정부가 발표할 IRA 세부지침의 외국우려단체 범위가 나와봐야 대중 배터리 봉쇄 수위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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