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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시다 이어 英수낵도 뛰어들었다…AI 주도권 싸움 속내는

중앙일보

입력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UPI=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8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UPI=연합뉴스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올 가을 세계 주요 국가 정상들을 초청해 최초로 인공지능(AI) 정상회의를 열겠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취임 이후 미국을 첫 방문한 수낵 총리는 이날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회담하고 영·미 간 AI와 광물협력 등을 강화하는 ‘대서양 선언’을 발표했다.

영국 총리실과 미 백악관에 따르면 수낵 총리는 이 자리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올해 영국에서 AI에 관한 세계 정상회의를 열 계획”이라며 “AI로 인한 위험을 평가하고 모니터링할 안전조치 도입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수낵 총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AI는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변화”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낵 총리의 계획을 환영하고, 정상회의에 미국도 고위급이 참석하겠다”고 화답했다. 앞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 총리실 관계자를 인용해 “수낵 총리가 특정 모델을 정해둔 건 아니지만, AI 국제 규범을 다루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와 같은 국제 기구 도입에 관한 아이디어를 바이든 대통령과 나눌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 역시 지난달 19~21일 히로시마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로 AI를 띄웠다. 기시다 총리 주도로 마련한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통해 각국은 연말까지 AI 개발에 있어 저작권과 투명성 문제, 허위 정보와 외국 세력의 개입 문제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해가자고 합의했다. 이와 관련 영국 정부는 7일 보도자료에서 이 같은 히로시마 AI 프로세스를 거론하며 “G7 국가들도 정상회의의 초청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히로시마 이후 AI와 관련한 정상급 논의의 키를 영국이 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11월 오픈AI의 챗GPT 공개 이후 전세계적인 AI 개발 열풍이 풀면서 강대국 정상들은 앞다퉈 AI 논의 기구를 띄우고 있다. 배경엔 AI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셈법이 담겨 있다. 수낵 총리는 지난 달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CEO 등 AI 거물 3명을 다우닝가에 불러 모았다. 오픈AI의 강력한 경쟁사로 꼽히는 스타트업 앤트로픽은 최근 런던에 사무소를 열었다. 여기다 AI 표준을 다루는 국제 기구까지 세워 런던을 국제 AI 허브로 만들겠다는 게 수낵 총리의 큰 그림이다.

지난달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실무회의가 열렸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실무회의가 열렸다. AP=연합뉴스

챗GPT 열풍에 힘 입어 오픈AI는 유럽 진출을 희망하고 있지만, 정작 유럽연합(EU)은 포괄적인 AI 규제법을 추진하면서 기업 규제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해당 법안은 이달 유럽의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으며, EU 이사회·집행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연내 회원국들에게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올해 3월 이탈리아 정보보호 당국은 “챗GPT가 이탈리아 시민들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고 있으니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며 한 달간 접속을 차단했다. 오픈AI는 수백 억원대 벌금을 물거나 챗GPT 접속 차단이 인근 유럽 국가로 확산할 위기에 몰렸다. 이에 올트먼 오픈AI CEO가 “EU 규제안의 강도에 따라 챗GPT를 유럽에서 철수시킬 수 있다”고 대응하기도 했다.

영국은 이 틈새를 파고 들며 AI 기업들에게 “런던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영국은 올초 일찌감치 ‘AI 백서’를 발간하면서 “영국을 AI 기술을 시험하고 구현하는 데 세계 최고의 장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또 오는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순회 의장국을 맡아 안보리에서 AI 문제를 다루겠다고도 했다. “안보리 차원의 AI 논의는 이번이 최초”라는 게 영국 정부의 설명이다. 영국의 AI 산업은 작년 기준 37억 파운드(약 6조 100억원)의 경제 효과를 냈고, 5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와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면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와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면담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정작 오픈AI와 딥마인드 등 AI 선도 기업의 본고장인 미국은 각국의 흐름을 신중하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은 작년 12월 백악관이 ‘AI 권리 장전 청사진’을 발표하면서, 개인정보 보호와 같은 AI 개발의 대원칙을 발표했을 뿐 규제에 적극 나서진 않고 있다. 자칫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AI 산업이 위축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AI의 잠재적 위협을 언급할 땐 반드시 “AI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와 잠재력”을 함께 언급해와다. 미국은 다만 영국 등 우방국들이 주도하는 AI 논의에 매번 참여하는 것으로 ‘AI 주도권 싸움’의 중심에선 멀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한편 각국의 AI 주도권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를 향한 정상급 인사들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올트먼은 4월 기시다 총리, 지난 달 수낵 총리를 만난 데 이어 9일에는 서울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했다. 그는 지난달 초엔 미 백악관의 요청으로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면담했고, 미 하원 의원들과는 비공개 만찬을, 상원 의원들과는 공개 청문회 자리를 통해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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