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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일본인이 왜?…방어진서 마을 해설사 뛰는 40대 주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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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진 '마을해설사' 사카시타 사나에. 그는 올해로 3년째 문화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방어진 '마을해설사' 사카시타 사나에. 그는 올해로 3년째 문화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40대 한 일본인 주부가 3년째 울산의 어촌마을에서 '마을 해설사'로 활약하고 있다. 지방 어촌마을 역사와 문화 흔적 구석구석을 발품 팔아 공부하고 익혀 마을 이야기를 방문객에게 소개하고 있다. 외국인이 타국의 작은 지방 어촌마을 문화 '영업부장'을 자처한 셈이다.

방어진 '영업부장' 사카시타 사나에씨 
주인공은 일본 가가와(香川)현 출신인 사카시타 사나에(坂下苗·49)다. 그는 2020년부터 울산 동구 방어진 마을 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일주일에 두어 차례 노란색 마을 해설사 명찰을 달고, 방어진 박물관으로 나간다. 사카시타는 "지자체에서 활동비 정도 받는 일이어서, 정규직 그런 개념은 아니다"며 "그래도 직업으로 생각하고, 그간 방어진을 찾은 2000여명에게 마을 역사적 배경과 문화 등을 즐겁게 소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방어진 '마을해설사' 사카시타 사나에가 과거 마을 전당포 흔적이 보이는 한 건물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방어진 '마을해설사' 사카시타 사나에가 과거 마을 전당포 흔적이 보이는 한 건물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윤호 기자

그가 마을 해설사로 활동하게 된 데는 방어진의 특별한 역사적 배경이 동기가 됐다. 2009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회사에 다니다가 한국인 남편을 만나 울산에 정착한 그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지역 다문화센터에 나갔다. 그곳에서 일본 전통 무용과 다도를 가르쳐 주고 한국어를 익혔다. 어느 정도 한국 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할 무렵인 2018년 울산 동구에서 '방어진'이라는 어촌마을을 새롭게 정비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국내외에서 찾는 '글로벌'한 어촌마을로 방어진을 새롭게 꾸민다고 했어요. 그때 방어진과 일본 제 고향의 연결고리를 알게 됐어요." 때마침 다문화센터에서도 사카시타에게 일본인 방문객이 올 수 있으니, 마을 해설사로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그는 방어진 이야기를 2년여간 공부했다.

울산 동구 방어진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 어선 모양에서 왜선 느낌이 강하다. 사진은 방어진 박물관에 전시중인 해당 사진을 직접 촬영한 것이다. 김윤호 기자

울산 동구 방어진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 어선 모양에서 왜선 느낌이 강하다. 사진은 방어진 박물관에 전시중인 해당 사진을 직접 촬영한 것이다. 김윤호 기자

1910년 전후로 방어진에는 일본인이 대거 이주했다고 한다. 1897년 일본인 선박이 처음 좌초돼 방어진에 도착했고, 삼치류가 잘 잡히는 걸 알게 된 후 가가와현과 오카야마(岡山)현 등에 일본인 어부가 하나둘 들어왔다. 1910년을 전후해 30가구 정도였던 방어진엔 1940년대엔 일본인만 500여 가구가 살았다. 마을 한 골목엔 일본 지명을 그대로 딴 '히나세골목(日生町)'이라는 이름이 나붙었을 정도다. 유곽과 우체국·전당포·금융조합·일본수산 출장소·여객터미널·영화관도 차례로 등장했다. 울산에서 전기는 방어진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일제 강점기 방어진 역사·문화 흔적은 지금도 찾을 수 있어요. 전당포 모습이 남아있고, 목욕탕과 방파제·적산가옥. 그리고 마을 전체 분위기가 과거 고향 어촌마을 느낌도 많이 나요."

그는 "일제 떼 한국인들이 슬픈 일을 당했다"면서 "힘든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예전 방어진 이야기를 재미있게 문화적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했다.

사카시타는 곤란함을 겪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한국을 약탈한 일본인이 왜 마을 설명을 하느냐" "일본인들이 예전에 방어진 고기 다 수탈해가지 않았는가"라는 말을 듣기도 해서다. "슬픈 역사가 만든 현실인 걸 알아요. 전 그렇게 웃으며 넘겨요. 그러고 다시 재밌는 방어진 이야기를 계속해요."

"일본인 관광객 방어진 찾지 않아 아쉬워"

울산 동구 방어진 한 목욕탕 굴뚝. 일제 강점기 전후와 크게 모습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고 동네 주민들은 전했다. 김윤호 기자

울산 동구 방어진 한 목욕탕 굴뚝. 일제 강점기 전후와 크게 모습과 크게 달라진게 없다고 동네 주민들은 전했다. 김윤호 기자

사카시타는 방어진에 일본인 관광객이 찾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방어진 역사와 현재 마을 모습 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어촌마을다운 특색있는 음식을 개발해야 할 것 같아요. 현대적으로 마을을 뜯고 다 바꿀 게 아니라 사라져가는 과거의 흔적도 보존했으면 합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딸 두 명을 울산에서 키우는 사카시타는 아이 미래를 위한 작은 꿈이 있다고 했다. 그는 "한때 '노 저팬' 분위기로 힘든 적이 있어요. 내 작은 활동이 보탬이 돼 아이들이 어른 된 세상에선 한일 감정의 깊은 골이 사라졌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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