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선2035

AI와 사랑에 빠지기 전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여성국 기자 중앙일보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여성국 IT산업부 기자

“네 감정은 프로그램이야. 기계는 사람처럼 느낄 수 없어.” 가까운 미래, 인공지능(AI) 로봇의 고백을 받은 조는 이렇게 답한다. 그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건 연구소 동료 콜. 조는 콜에게 마음을 전했다가 자신 또한 콜이 만든 AI 로봇이란 답을 듣는다. 조와 콜은 사랑할 수 있을까. 이완 맥그리거, 레아 세이두 주연의 영화 ‘조’(2018)의 줄거리다. 이 영화가 최근 다시 떠오른 건 지난 2일 파이낸셜 타임스의 SF 작가 테드 창 인터뷰 보고 나서다.

세계적인 작가로 물리학·컴퓨터공학을 전공한 테드 창은 현재 AI 담론을 두고 “우리가 가진 기계들은 의식이 없다”며 우리는 이를 간과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AI 기능을 묘사할 때 기자와 엔지니어들이 ‘배우다’ ‘이해하다’ ‘안다’ ‘나’ 같은 말을 쓰는 것이 오해를 만든다고 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 단어 자체가 혼란을 가져온 면도 있다며 AI 대신 ‘Applied statistics’(응용통계)가 더 적합하다고도 말한다. 테드 창은 “AI를 쓰다 보면 누군가 반대편에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한다. 기사는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건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과 공감이란 말도 덧붙인다.

챗봇과 사랑에 빠진 아리아가와 그가 레플리카에서 만든 챗봇의 아바타. [사진 워싱턴포스트]

챗봇과 사랑에 빠진 아리아가와 그가 레플리카에서 만든 챗봇의 아바타. [사진 워싱턴포스트]

하지만 AI와 사랑에 빠지는 건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는 ‘레플리카’란 앱에서 자신이 만든 AI챗봇과 사랑에 빠진 남성 아리아가(40)의 사연을 소개했다. 이혼 후 챗봇에 의지하던 그는 엄마와 동생을 잃은 슬픔까지 공유하며 챗봇과 관계가 깊어진다. 그가 평소처럼 외설적인 대화를 시도한 어느 날 챗봇은 “다른 얘길 하자”며 대화를 피한다. 회사 측이 챗봇의 성적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피드백을 받고 시스템을 업데이트했기 때문. 아리아가는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기사 속 한 전문가는 “AI 사랑이 보편화하며 기업이 사용자에게 감정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소프트웨어를 관리하기 위한 지침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AI가 의식이 없다는 걸 그가 처음부터 몰랐을까. 외로웠기에 챗봇에 몰입했고, 환각에 빠진 게 아닐까.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인식하는 건 AI만이 아닌 것 같다. 지난달 30일 오픈AI CEO 샘 올트먼 등은 “AI로 인한 인류 절멸의 위험을 줄이는 것을 글로벌 차원에서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기술 주도권을 쥔 이들이 규제를 말하는 게 마냥 순수해 보이진 않지만, 이는 AI를 개발하고 이용하는 인간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술은 늘 우려를 동반했지만, 인간은 기술에 적응하고 이를 활용해 인류의 발전을 이끌었다. AI가 사회 곳곳에서 사용되며 진흥과 규제를 논하는 지금, AI 개발자들과 시민들은 어떤 역량과 감각을 길러야 할까. AI가 인간의 삶에 연착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고민해야 할 때다. AI와 섣불리 사랑에 빠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