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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방지장치' 없었다…'최소 275명 사망' 인도 최악의 열차 참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도 국가재난대응처(NDRF)는 3일(현지시간) 전날 오디샤주의 발라소레 지역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로 200명 넘게 사망하고 900명 이상 부상 당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인도 국가재난대응처(NDRF)는 3일(현지시간) 전날 오디샤주의 발라소레 지역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로 200명 넘게 사망하고 900명 이상 부상 당했다고 밝혔다. EPA=연합뉴스

2일(현지시간) 인도 동부 오디샤주의 발라소르에서 발생한 열차 삼중 충돌 사고로 300명 가까이 숨지고 1000여 명이 다쳤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은 이번 참사가 “수십 년 만에 일어난 최악의 열차 사고”라고 전하고 있다.

여객열차, 시속 126㎞로 화물열차 들이받아

인도 동부 발라소르에서 일어난 열차 삼중 충돌 사고에 지난 3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 동부 발라소르에서 일어난 열차 삼중 충돌 사고에 지난 3일(현지시간) 구조대원들이 현장을 수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NYT와 영국 가디언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번 사고는 이날 오후 7시께 동북부 하우라 샬리마르를 출발해 남부 첸나이주를 향해 달리던 여객 열차 ‘코로만델 익스프레스’가 발라소르의 바하나가 바자르역 부근에 정차해 있던 화물열차를 들이받으며 발생했다.

당시 코로만델 익스프레스는 승객 1257명을 실은 채 시속 126㎞로 달리고 있었다. 충돌 직후 코로만델 익스프레스의 선체가 크게 부서진 채 탈선했고, 이어 반대편에서 시속 116㎞로 마주오던 여객열차 ‘하우라 수퍼패스트 익스프레스’(1032명 탑승)와 2차 충돌을 했다.

순식간에 열차 세 대가 뒤엉키고 전복된 현장은 처참했다. 탈선한 코로만델 익스프레스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됐다. 생존자 아누바 다스는 로이터통신에 “팔·다리가 없는 시신들을 직접 봤고, 선로 위는 피바다였다”고 전했다. 발라소르 지역의 병원들엔 부상자와 사망자가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영안실이 부족해 학교 강당을 임시 영안실로 이용할 정도라고 한다.

인도 당국에 따르면 4일까지 집계된 공식 사망 인원은 294명으로,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현지 매체 힌두스탄타임스는 전했다. 부상자는 1000명에 육박하고 있다. 당국은 응급 대원 1000여명을 투입해 구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미 CNN 방송은 프라딥 제나 오디샤 주총리(주지사)가 “중복 집계된 시신이 있었다”면서 공식 사망자 수를 275명으로 정정했다고 보도했다.

사고 이튿날 현장을 찾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나의 깊은 고통을 표현할 말이 없다”면서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이 있는 어떤 사람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고, 강력한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정부는 사망자 유족에 1만2000달러(약 150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신호 오작동으로 선로 잘못 진입한듯”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인도의 철도·통신부는 예비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신호 오작동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날 본선으로 주행해야 할 코로만델 익스프레스에 순환선으로 진입하라는 신호가 떨어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신호는 곧바로 철회됐지만, 일단 순환선에 들어선 코로만델 익스프레스는 그곳에 정차 중이던 화물열차를 피하지 못해 사고로 이어졌다. 당국은 잘못된 신호가 전달된 경위, 조작 실수 여부 등에 대해 계속 조사 중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인도 철도망은 170여년 전 19세기 영국 식민지 시절 목화와 석탄 등을 운반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현재 철도 이용자 수는 일일 1300만, 연간 80억명으로 열차는 ‘시민들이 발’이자 인도 산업의 생명줄 역할을 해왔다. 매일 약 1만1000대의 열차가 6만7000마일(약 10만7826㎞)의 선로를 오간다.

하지만 설비 노후화와 운영상의 미숙함 등으로 탈선·충돌과 같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가디언에 따르면, 열차가 위급 상황에 자동으로 제동을 거는 ‘열차 충돌 방지 체계’는 전체 노선의 2%에서만 작동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고가 일어난 동부 노선에도 이 기술이 없었다고 매체는 전했다.

95년엔 열차 정면 충돌로 358명 사망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3일(현지시간)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3일(현지시간)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UPI=연합뉴스

인도에선 최근 20년 동안 최소 13건의 대형 열차 사고가 있었다. 가장 최근엔 2016년 북부 푸크라얀 지방에서 열차 탈선 사고로 146명이 사망했다. 1995년 8월 북부 우타르프레데시에서도 브레이크 고장 등으로 열차 두 대가 충돌하면서 358명이 사망했다.

가장 치명적인 철도 사고는 1981년 6월 동부 비하르주에서 일어난 탈선 사고가 꼽힌다. 당시 다리 위를 달리던 열차가 강으로 떨어져 최대 800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2010년대 이후 열차 사고는 빈도가 줄고 있다”고 국영 인도 철도 측은 밝혔다. 일부 외신은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후진적 열차 사고는 중국을 추월한 세계 1위(약 14억2000만명) 인구 대국 인도의 민낯을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모디, 현대화사업에 수십조…野 "정부 책임" 

NYT는 “이번 사고가 내년 세번째 임기를 준비하는 모디 총리의 철도 현대화 사업에 흠집을 냈다”고 보도했다. 최근 들어 모디 정부는 일부 남아 있는 디젤 기관차를 내년까지 100% 전기 철도로 전환하는 등 현대화 사업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 정부는 올해 선로 현대화 사업을 포함한 철도 예산에 2조4000억 루피(약 39조원)를 배정했다. 전년 대비 50% 늘어난 수치다. 모디 총리는 특히 일본의 고속열차 신칸센을 모델로 한 준고속 전기 열차(시속 160~180㎞) ‘반데 바라트 익스프레스’ 도입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이번 열차 사고로 반데 바라트 사업에 대한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모디 총리는 당초 3일 서부 고아주의 반데 바라트 개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연기하고 사고 현장을 찾아야 했다.

야권은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최대 야당인 인도 국민회의당 소속 란디프 싱 수르제왈라 상원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모디 정부와 철도부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 아슈위니 바이슈나우 철도 장관을 즉시 해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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