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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복마전 선관위, 60년 ‘고인 물’ 체제 확 바꿔야 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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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외부 감사 등 단기 요법만으론 쇄신 요원

정파성 오염 차단할 근본적 구조개혁이 답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자녀 특혜채용 의혹이 제기된 박찬진 사무총장 등 4명을 수사 의뢰하고, 국민권익위의 전수조사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35년간 내부 승진으로 채워 온 사무총장직을 외부에 개방하고 외부 인사 중심의 감사위원회를 도입하겠다는 쇄신책도 내놨다. 하지만 그간의 행태를 보면 진심으로 혁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선관위는 지난달 10일 중앙일보 보도로 박 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의 ‘아빠 찬스’ 의혹이 드러나자 “법과 절차 따른 공정한 채용”이라고 발뺌하다 의혹자가 11명에 달하는 등 비리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3주 만에 등 떠밀리듯 외부 조사를 받겠다고 물러섰다. 선관위는 북한의 해킹 시도를 포착한 국가정보원이 보안점검을 권했으나 ‘헌법상 독립기관’이란 이유로 일축해 왔다. 그러다 지난달 3일 중앙일보 보도로 이 사실이 알려졌는데도 “국정원 통보를 받은 적이 없다”고 변명하다 국정원의 자료 공개로 거짓말이 드러나자 뒤늦게 점검을 수용했다.

더 본질적 문제는 선관위가 정파성에 침윤돼 중립성이 흔들려 온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선관위는 친문 금융감독원장의 후원금 셀프 기부 의혹이 ‘위법’이라고 판단했는데, 그 판단을 내린 선관위 사무총장은 퇴임 후 선관위원 선임이 가로막혔다. 문재인 대선캠프에 적을 뒀던 인사가 선관위 상임위원이 되고, 임기 후에도 연임을 시도하다 직원들의 반발로 좌절된 일도 있었다. 선관위가 국정원의 보안점검을 거부한 것도 진짜 이유는 더불어민주당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란 게 중론이다. 이렇게 정치 논리에 휘둘리는 선관위가 되다 보니 ‘부정선거’ 논란에 휘말린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지금 선관위는 전면적인 환골탈태를 하지 않으면 존폐가 우려되는 기로에 서 있다. 외부 감사를 통한 전·현직 직원 전수조사와 수사는 당연하고, 국민의 힘이 요구한 국정조사도 조속히 이뤄져 비리 책임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또 공석인 사무총장직에 능력과 도덕성을 겸비한 외부 인사를 신속히 임명해야 한다. 일부 중앙선관위원들은 ‘선 인사위원회 구성’ 등을 주장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는데, 총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안이한 처사다. 선관위원 9명은 합의를 볼 때까지 회의장을 떠나지 않는 ‘콘클라베’식 토론으로라도 새 총장을 속히 임명해 총선에 차질이 없게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지난 60년간 견제와 감시 없이 ‘고인 물’로 지내온 선관위 구조 전체를 손봐야 한다.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대법관 중에서 선관위원장을 고르는 방식부터가 문제다. 게다가 선관위원장은 비상근이라 사무처의 전횡을 막을 능력이 없다. 선관위원장의 상근직 전환과 사무총장 외부 인사 임명 및 외부 감사 의무화 등이 전면적 쇄신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