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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대관식을 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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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대머리왕, 정복왕, 경건왕, 사자심왕. 중세 유럽 왕의 별명들이다. 조지 3세, 헨리 8세, 윌리엄 3세 같은 이름보다 구분이 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왜 같은 이름들을 이어 썼을까. 무려 루이 16세에 이르기까지.

무력으로 왕조 개창은 가능하나 혈통 계승까지 이룰 수는 없다. 백성들은 통치 대상이며 반란 주체다. 그들에게 권력 정통성·당위성을 설득해야 한다. 인류사를 통해 가장 널리 이용된 왕조 존재 근거는 하늘의 뜻이다. 그래서 왕조 개창기에는 초인적 신비 설화들이 집중적으로 유포된다. 이 순간 왕권은 종교와 밀착하게 된다. 신비로운 상상의 동물에 의한 상징도 그 도구다. 형상은 달라도 가장 널리 동원된 것은 용이었다.

찰스 3세 즉위의 영국 대관식
신비와 전통 강조한 왕가 의전
금박 봉황의 한국 대통령 휘장
제왕적 대통령 시절 문화 흔적

신성의 가시적 표현 매체는 빛, 불처럼 비물질적이어야 했다. 초월적·추상적·신비적 존재를 표현하는 딱 좋은 재료, 그건 황금이었다. 다른 물질과 달리 반짝거리는 데다 부식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희소성도 높으니 아무나 가질 수도 없다. 그래서 황금은 절대권력, 초월적 존재 표현에 가장 널리 쓰여온 재료다. 불상도 초기에는 제작 재료가 노출되었으나 결국 전파기에는 금박이 입혀졌다. 예수도 신성의 존재라는 교리가 확립되자 황금 광배가 붙었다.

귀족도 봉토 소출과 백성 세금에 얹혀사는 유한계급이었다. 계급 전체가 신비적 정통성을 주장하기는 어려웠으나 여전히 계급 차별화의 근거는 필요했다. 외부 침략으로부터 백성의 보호가 이들의 계급 정당성이었다. 희생이 아니고 거래조건인 이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불렀다. 그러기에 왕족, 귀족들은 당연히 군인이 되어야 했다. 그 직무이행의 증거가 훈장이므로 그들의 의례복은 가슴에 훈장이 달린 장교복이었다.

그러나 왕가 혈통 계승의 가장 뚜렷한 표식은 선왕들의 이름 계승이었다, 루이 16세에까지 이르는. 영국의 이번 왕은 세 번째 찰스다. 이제 연방과 영광이 아니라 파파라치와 타블로이드로 연상되는 왕가다. 의심받는 권력일수록 의전과 전통을 강조해야 한다. 그의 대관식 풍경 분석은 불안한 계급 표현의 독법에 잘 들어맞는다.

우선 공간이 중요하다. 대관식장은 역사적 정통성이 뚜렷한 곳이어야 하니 당연히 유서 깊은 웨스트민스터 성당이다. 집전 대주교는 왕은 봉사하는 존재라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계속 강조했다. 참석한 왕족·귀족들은 신의 이름에 의한 충성서약으로 화답했다. 권력 기준인 예수상은 금빛 광배로 둘러싸여 의전을 내려 보고 있었다. 제대에는 금빛 상징 소품들이 가득하고 왕복에는 금장이 덮였다. 타고 오간 마차도 금빛 찬란했다. 노동복 입은 무지렁이들 가득한 펍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그 백성들이 외치게 되면 신성 차별화가 성공한 것이다.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투복은 정치적 행위고 선언이다. 대관식장 참석자들의 복장도 당연히 그런 것이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증언인 금빛 훈장들이 주렁주렁 화려했다. 그런데 민주주의 국가의 방문객들은 어떠했을까. 과연 모두 아무런 장식 없는 복장으로 대관식장에 입장했다. 시선 집중의 미국 대통령 부인은 머리의 띠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의례를 표시했을 뿐이다. 심지어 영국 총리도 훈장과 장식 없는 평복으로 축사했다.

이렇게 지는 왕조가 있는데 엉뚱하게 새로 조성되는 왕조도 있으니 기가 막힌 일이다. 종교를 부인했으니 신령한 초인도, 동물도 불러낼 수 없는 곳이다. 결국 공간적 장치가 소환되었다. 단군 설화로 신비한 백두산에 혈통을 덮으면 북한판 왕조가 나온다. 그 시각화가 금장 고삐 두른 백마 타고 눈 덮인 백두산을 질주하는 임금님 모습이다. 수시로 생산하고 열심히 배포해야 하는 신비와 감격의 풍경이다. 그런 위대한 천출명장이 불철주야 위민헌신 현장지도 중이라고 믿거나 말거나 믿을 때까지 우긴다. 공화국 인민 보위를 위한 핵무장은 북한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구현이다. 그래서 백성들은 초근목피로 빈궁하지만 세뇌된 행복으로 외쳐야 한다. 절세위인 불멸업적, 백두혈통 결사옹위. 임금님, 아니 원수님 만세.

그러나 대한민국의 권력은 출생 혈통이 아니고 국민 위임에 근거한다. 세습 없는 5년 계약이다. 권력 위임 과정은 선거로 드러난다. 정통성 의심이 없으니 취임식에서 금마차를 탈 이유도 없다. 취임식장이 종교의 공간이 아니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라는 점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겪어 왔다. 그 과정에서 스며든 제왕적 대통령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은 금박 봉황이 새겨진 대통령 휘장이다. 영국의 대관식 즈음 마침 한국의 대통령관저에서는 일본 총리를 초대한 만찬이 있었다. 만찬장의 복장과 가구도 정치적 행위고 선언이다. 이를 담은 사진 배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진 속의 의자는 금박장식으로 덮여 있었다. 과연 문화적 관성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