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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애덤 스미스에게 대한민국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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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인류의 평균 소득은 19세기 들어서야 생존 수준을 넘어섰다. 앵거스 매디슨에 따르면 서기 0∼1820년 동안 전 세계 일인당 소득의 연평균 성장률은 0∼0.05%에 불과했다. 하루 내내 열심히 일해 그날 끼니를 해결하는 정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수천 년 동안 그대로였던 평균 소득이 18∼19세기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난 200년 동안 일인당 소득은 10배 이상 증가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보통 사람도 생존을 넘어 물질적 풍요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그 역사의 전환기에 무슨 일이 있었나. 기아에 허덕이던 인류를 구한 힘은 무엇인가. 산업혁명이 하나의 이유다. 인간이 기계의 힘을 빌리면서 생산성이 급증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없었다면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으며, 애덤 스미스가 아니었다면 자본주의는 환영은커녕 불신과 공포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이처럼 애덤 스미스는 인류에게 풍요를 선사한 대(大)은인이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으로 대표되는 지성의 힘은 동시대 사람들을 설득하여 그가 ‘자연적 자유의 체계’라고 불렀던 자본주의에 마음을 열게 했다. 인류에게 미친 실질적 혜택이란 면에서 그만큼 위대한 공헌을 한 학자는 찾기 어렵다.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의 조언
규제로 시장 역동성 해치지 말고
양심과 여론, 공정성을 계발해야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할 수 있어

올해는 애덤 스미스의 탄생 300주년이다. 그는 1723년의 이맘때 스코틀랜드 커콜디(Kirkcaldy)에서 태어났다.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그를 모셔 우리 경제와 사회에 관해 물어본다면 무어라고 답할까. 예리한 지식의 빛을 대한민국에도 비추어 줄 수 있을까.

필자의 첫 질문은 “한국경제를 어떻게 부흥시킬 수 있는가”였다. 그의 답은 『국부론』 초반부와 같았다. 시장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경쟁적으로 작동하는 시장이 있어야 기술이 개발되고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흔히 투자나 기술, 교육이 성장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들은 시장이 형성되고 커짐에 따라 늘어나는 종속변수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의 동력이 약화한 이유도 시장을 왜곡하고 파괴한 결과 기업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필자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국회에서 의결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설명하고 이를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정부 수매를 통해 쌀 가격을 지지하는 정책은 시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파괴한다고 강조했다.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가공용 쌀 시장을 키워야 식량 산업이 발전할 수 있지만 정부 수매로 쌀 가격이 높게 유지되면 가공용 쌀의 원가가 비싸져 이 시장이 커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정부가 재고미를 값싸게 방출할 때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사업의 예측성을 떨어뜨린다.

또 야당은 벼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보조금을 주어 쌀 재배면적을 줄이면 나중엔 정부의 수매가 필요하지 않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부가 쌀 가격을 높게 유지해 주는 상황에서 왜 농민들이 훨씬 노력이 많이 들고 가격 변동에 노출된 타 작물 재배로 옮아가려 할 것인가. 결국 이 정책은 기존 농가에 특혜를 주는 반면 가루쌀 등을 활용한 새로운 쌀 시장 형성을 막는 퇴행적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어떤 이에게는 잔인할 수밖에 없는가”라고 물었다. “가공용 쌀 시장이 커지면 전체 쌀 소비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현재 쌀 재배 농가의 소득도 따라서 오를 수 있다. 다른 부문에서도 시장을 만들고 키우면 경제가 역동적으로 변한다. 국부가 증가한다. 그러면 일자리와 모든 계층의 소득이 늘어난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후대 경제학이 밝혔듯 정부가 가격결정에 개입하기보다 필요하다면 직접 농민 소득을 보전해 주는 편이 낫다. 이때 중요한 판단 기준은 이들이 얼마나 가난한가이다. 내가 『국부론』에서 썼듯이 많은 사람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행복하거나 번성할 수 없다. 『도덕감정론』에서도 극심한 빈부격차는 동감(sympathy)이라는 도덕의 원천을 파괴하고 사회적 연대감을 훼손한다고 경계했다.”

필자는 “그럼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나”고 물었다. 그는 단호했다. 독점으로 지대를 추구하거나 규제로 이를 조장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자기만, 우리 직종만 살겠다고 경쟁자의 시장 진입이나 새로운 시장의 형성을 막으면 결국 다 죽는다. 특히 정치인들이 특정 집단과 야합해 특혜를 계속 만들어주면 사회는 패망의 길로 간다. 내가 야비하다며 당시 중상주의자들을 비판한 것도 바로 이 까닭이었다.”

그는 자신이 오해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심이 무조건 공익으로 이어진다고 나는 말한 적이 없다. 깨끗한 양심과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줄 아는 건강한 여론, 그리고 공정한 사법부가 있어야 사익 추구가 경제성장으로 연결되며 사회통합이 유지된다. 이 셋은 화합의 아버지요, 발전의 어머니다.” 인터뷰 후에 마음이 훨씬 더 무거워졌다. 이 트로이카가 과연 우리에게 있기는 한가.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