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우주 진출에 앞서 생각해야 할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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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며칠 전 퇴근길에 졸다가 깨어보니 나는 갑자기 우주 강국의 시민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 상임위에서 코인 시세 검색하고 있을 때 또 누군가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묵묵히 뼈를 갈아 넣어 역사적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나에게 부여된 명예가 좀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난 아직 우주 시대의 시민이 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글쎄, 나만 그럴까?

‘우주 강국’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신냉전·기술주의 우주론의 위험성
80년대 낡은 논쟁 빠진 대한민국
우주청 논의 잠시 멈추고 성찰을

선진국이란 지켜야 할 가치 기준을 정의하는 나라이다. 우주 시대를 맞이한 대한민국의 새로운 가치는 무엇인가? 단지 국산화와 민간 산업 부흥? 물론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이미 우리가 수십 년간 해온 오래된 가치 아닌가? 지금 대한민국 바깥의 세계는 우주에 대한 3가지의 미래 가치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결합한다. 하나는 신냉전 우주론이다. 이는 중국과 같은 비자유주의 국가와의 우주 군사 대결에서 최종 승리하는가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오늘날 미국의 신냉전 민주당과 공화당 분파들 및 강대국 안보기관 내 ‘딥 스테이트’(정부 속 정부)들이 그들이다. 두 번째는 식민지로서의 우주론이다. 이는 기후 파국으로 치닫는 지구를 구할 자원 대상으로서나 혹은 지구를 버리고 새로운 식민지로서의 우주를 간주하는 입장이다. 머스크 스페이스X 회장이 그 시각을 대표한다. 마지막으로는 의식과 의미를 가진 존재로서의 우주론이다. 이는 최신 과학과 영성을 통합하여 부단히 진화하는 우주 속에서 인간의 겸손함과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입장이다. 고 토마스 배리 문명비평가의 화두였으며, 힐러리 전 국무장관이 일부 가졌던 문제의식이다. 오랜만에 초당적으로 우주 강국론을 함께 외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가치는 이중 어떤 걸까?

주류 지성계와 정치권은 관심이 없겠지만, 한국의 일부 문화예술계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기존의 근대 발전주의 가치를 오래전에 넘어섰다. 젊은 SF 작가 김초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타자에 대한 연민과 존엄의 확장으로서 우주관을 제시한 바 있다. 우주 이전에 국가 공동체의 가장 취약한 존재들에 대해 차별금지법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많은 여성 SF 작가들은 이미 오래전 문학으로 뛰어넘었다. 정치권에서 단지 일회적 이벤트로 소비하려는 윤하(오르트구름)와 BTS(마이크로코스모스)도 우주와 별을 오래전부터 지속적 화두로 삼아 다가올 미래를 예고했다.

나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는 세계적일지 모르지만 우주시민 의식에서는 세계적이지 않은 한국의 주류 고등교육 현황에 대해 불만이 많다. 세계 대학 평가 순위도 중요하지만, 미래 세대들에게 지구 행성과 우주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가르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그들은 자주 잊는다. 최신 과학의 다중 우주론(욕조 거품처럼 많은 우주들이 존재)과 정보 이론(정보가 부단히 생성해내는 우주) 등 성과와 우주 공동체 속에서 인간 이외의 또 다른 존재들에 대한 탐구 등을 필수로 배우는 곳이 곧 진짜 ‘대학’(=큰 가르침)이다.

한국의 주류 지성계가 바뀌지 않으면 결국 그 토양에서 자란 정치 인재들도  바뀌지 않는다. 우리도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다큐멘터리 방송 시점에서 ‘우주 대박’ 대신에 철학적 연설을 한 오바마 대통령 같은 이를 만들어내야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 우리도 대선 토론회에서 자기 자랑 대신에 우주 속에서 인간의 보잘것없음과 겸손함을 이야기한 힐러리 전 국무장관 같은 이를 키워야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 우리도 미·중간의 신냉전만이 아니라 지구 행성의 공기를 같이 마시는 호흡 공동체로서 공통 운명을 깨달은 케네디 전 대통령 같은 이를 배출해야 비로소 선진국이 된다. 다음번에는 우리 대통령이 미국 의회에 가서 미·중간의 우주 신냉전에 단순 합류하는 걸 넘어 더 넓은 인류 공통 가치를 설득하는 ‘큰 정치가’(Big Politician) 역할을 하는 날은 언제나 올까?

앞으로 여야 간에 우주청을 어디에 설치할지 줄다리기가 벌어질 태세이다. 글쎄, 그 전에 자신들의 우주에 대한 세계관 및 그 과학적 기반, 그리고 기후, 안보 및 경제에 대한 관점부터 새롭게 정립해야 하지 않을까? 2023년 지금 민주당과 정의당은 여전히 탈냉전기 미국 민주당의 1970·80년대 관점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이 주도하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레이건과 공화당의 80년대 외교안보 관점을 흉내 내고 있다.

얼마 전 스티브 워즈니악 전 애플 창업자 등 1100명의 전문가는 첨단 인공지능 개발 광풍에 우려를 표하며 6개월간 중지를 촉구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잠시만 우주청 설치 논쟁을 멈추고 지금 전 세계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가치와 로드맵으로 우주시대를 열고자 하는지 치열하게 토론했으면 좋겠다. 그게 정치와 교육의 원래 역할 아닌가?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