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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사망시 女보다 배상금 적어…병역대상 남성 차별 폐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병역의무 대상 남성에 대한 차별을 폐지하겠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병역의무 대상 남성이 국가배상을 청구할 경우 배상액 산정 시 군 복무 기간을 취업가능 기간에 제외토록하는 현행 국가배상법 시행령을 “남성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달 25일부터 7월 4일까지 이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다.

2023년 5월 2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5월 24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공공질서 확립과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동일 사건서 병역의무 男 사망 시 女보다 배상금 적어”

 한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열고 이 법령 개정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병역의무 대상 남성에 대한 국가배상액 산정 시 군 복무기간은 취업가능 기간에서 제외되는데, 전부 산입하도록 고치겠다는 게 개정안의 골자다.

예를 들어 현행 법령 아래 동일한 사건으로 병역의무 대상인 남자 대학생과 여자 대학생이 사망할 경우 남학생은 군 복무 예정기간이 취업가능 기간에서 제외되어 여학생보다 배상금이 적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한 장관은 “이상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한 장관은 “이런 배상액 산정 방식은 병역 의무자에게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을 야기하고, 병역 의무 없는 사람과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결과가 된다”라며 “헌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배상법 시행령 2조 1항을 수정해 ‘피해자가 군 복무 가능성이 있는 경우 그 복무기간을 취업가능 기간에 전부 산입한다’는 취지로 명확히 규정하겠다”고 설명했다.

해당 규정은 입법예고가 끝난 뒤 공포한 날로부터 시행된다. 시행 당시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국가배상 사건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시행 전에 확정된 판결에 따라 생긴 효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번 제도 변경을 두고 김학자 여성변호사회 회장은 “회사에서 호봉을 계산할 때도 군 복무 기간을 산입하지 않느냐”며 “군 복무를 국가에 봉사한 것으로 보고 한 장관이 맞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김 회장은 구체적인 국가배상액 산정 방법과 관련해 “배상액 계산은 일반 사회에서 취업을 했을 경우의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는데, 실제 군 복무 기간의 평균임금은 이와 다르기 때문에 ‘군복무기간=취업가능기간’으로 단순 치환해 산입하는 건 법리적으로 물음표가 남을 수 있을 듯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회장은 “‘남성 차별을 없애겠다’는 표현보다는 ‘그동안 배상해야 할 부분을 배상하지 않은 것을 정상화하겠다’고 표현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국민을 남성과 여성으로 분열시킬 필요는 없다”라고 조언했다.

2023년 3월 20일 육군 51보병사단 장병들이 경기 안산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본래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음. 연합뉴스

2023년 3월 20일 육군 51보병사단 장병들이 경기 안산시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본래 기사의 내용과 직접적 연관성은 없음. 연합뉴스

한동훈 “군·경 순직 유족의 위자료 청구권 청구 근거도 만든다”

한 장관이 이번 시행령 개정은 현재 진행 중인 고(故) 홍정기 일병의 유족이 제기한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계기가 됐다. 국가를 대표해 소송에 대응하던 도중 병역의무 대상 남성들에게 불합리한 제도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다.

 홍 일병은 2015년 8월 육군에 병사로 입대해 2사단 32연대 수송대에서 근무하다가 2016년 3월 초 구토 등의 증상을 호소하고 18일 뒤인 2016년 3월 상급 군병원으로 외진을 가던 도중 쓰러져 사망했다. 사인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따른 급성 뇌출혈이었다. 그러자 유가족은 2019년 “사단 의무대의 무성의한 오진, 진료 여건 미보장, 환자 방치나 다름없는 소속 부대의 무책임한 대처 등으로 사망한 것”이라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지난 2월 10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1단독은 “정부가 유족에게 총 2500만원을 지급하고 고 홍 일병 사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하라”라는 취지로 화해 권고를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를 대표하는 법무부가 이의신청을 하면서 재판이 재개됐다. 법무부는 이의신청의 주된 이유로 고 홍 일병이 이미 순직 처리돼 유족들이 관련 연금 등을 받고 있다는 점을 지목했다. 손해배상을 해주고 싶어도 현행법령상 이중배상금지 원칙에 따라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한 장관은 브리핑장에서 “불합리한 제도”라며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전사·순직 군·경 유족의 국가배상청구가 일체 금지된다는 현행 국가배상법 규정상 입법이 아닌 법 해석을 통해선 유족의 위자료 청구 자체를 인정하기는 어렵다”라면서 “국가배상법 개정을 통해 유족 고유의 정신적 고통으로 인한 위자료 청구의 근거를 마련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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