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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신고하라" 폭로전까지…간호사 업무 어디까지? 물어봤다

중앙일보

입력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16개 시·도 총선기획단 출범식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한간호협회 회원들이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간호법 거부권 행사 규탄 총궐기대회에서 16개 시·도 총선기획단 출범식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간호협회의 '준법 투쟁'이 일주일째 이어지면서 간호사가 의사의 진료를 어느 선까지 보조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거세다.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다음 날인 지난 17일 소위 '준법 투쟁'에 들어갔다. 간협은 간호 업무가 아닌 불법 업무 지시를 거부하는 걸 '준법 투쟁'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회원들한테서 '불법 행위' 신고를 받아서 24일 공개한다.

간호사의 의사 진료보조 어디까지 가능할까

간협은 이에 앞서 22일 '반드시 의사가 직접 해야 하는 의료행위' 24개를 공개했다. 이런 일을 간호사가 하는 경우 불법이니 신고해 달라는 것이다. 대리처방, 수술기록 등의 대리 기록, 대리 수술, 수술 수가 입력, 수술 부위 봉합, 수술 보조, 동맥혈 채혈, 조직 채취 등이다. 의료 현장에서 이런 일을 하는 간호사를 진료지원인력(미국에선 Physician Assistant, PA)이라고 하는데, 법적 근거 없이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다.

간협의 이런 움직임에 보건복지부가 제동을 걸었다. 복지부는 22일 "간협이 배포한 24개 진료 보조 행위를 일률적으로 불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담은 자료를 냈다. 복지부는 "PA(Physician Assistant) 문제는 (대통령이)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한 간호법안과 전혀 관계가 없다"며 "PA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 달 협의체를 구성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진료보조인력 문제가 왜 불거지는 걸까. 현행 의료법에는 '간호사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진료의 보조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한다. 진료 보조 행위는 진단·치료·약무 분야가 있다.

수천 가지의 의료 행위를 의사가 반드시 할 일,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는 일 등으로 일일이 나눠 법에 담을 수 없다. 그리하는 나라도 드물다. 한국은 정부의 유권해석과 판결로 하나씩 정해왔다. 지난 70년간 그게 쌓여 일종의 지침이 됐다. 그래도 다 담지 못한다.

다음은 복지부가 공개한, 의사의 지도하에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업무의 예이다.
①진단 보조 행위: 간단한 문진, 활력 징후 측정, 혈당 측정, 일반적 채혈 등
②치료 보조 행위: 일반적인 피하·근육·혈관 주사행위, 수술 진행 보조 및 병동이나 진료실에서 소독 보조, 혈관로 확보, 소변로 확보, 관장 등

③약무 보조 행위: 입원실이 있는 의료기관에서 구체적인 지휘ㆍ감독하에 조제, 투약 보조

복지부는 "간호사가 수행 가능한 업무 범위는 개별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간협이 공개한 24개 행위를 불법이라고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거는 대법원 판례이다.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요하여 반드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행위는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없다. 그 행위는 행위의 침습성 및 난이도, 환자의 신체에 미칠 위해성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행위마다 개별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고 대법원은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 2006도2306)

의료 행위마다 몸에 침투하는 정도(침습)와 난이도, 위해 가능성 등을 따져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환자를 처음 진단하고 처방하는 경우에는 의사가 해야 한다. 안정적으로 입원해 있던 중 환자의 산소포화도나 혈압이 약간 올라갈 때 약의 용량을 늘리기로 돼 있으면 그건 간호사가 할 수 있다. 사전에 약속된 처방이라면 의사가 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반면 신경림 간협간호법제정특위위원장은 지난 1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중소병원에서 오후 5시면 의사가 퇴근하고 없다. 간호사가 의사 노릇 한다. 간호사 업무를 해야 하는데, 의사 일을 하도록 원장이 시킨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의 지적.
"처방은 의사가, 약은 약사가, 채혈은 임상병리사가, 엑스레이 촬영은 방사선사가 해야 한다. 임상병리사·방사선사 채용 안 하고 약사 줄이고 의사는 조기 퇴근한다. 중소병원 간호스테이션에 의사 아이디(ID)가 있다. 환자 이상증세 생겨서 의사에게 전화하면 '이 약 주세요'라고 한다. 간호사가 의사 아이디를 활용해 처방한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오더해야 하는데."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2021년 41개 병원 363명의 진료지원인력을 조사했다. 또 침습성, 부작용 발생 가능성, 법령, 유권해석과 판결, 문헌, 전문가 자문 등을 토대로 10개 분야 의료행위를 분류했다. 반드시 의사가 해야 할 일로는 혈액배양검사, 동맥혈 채취, 골수천자, 기관삽관, L튜브 삽관 등이다. 그 외 단순 혈액 검체 채취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간호사에게 위임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심전도·초음파·엑스레이 등은 의사의 위임을 받아서 간호사가 할 수 있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반깁스, 단순 드레싱, 고주파온열치료, 체외충격파쇄석술 등도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수술 보조(첫 번째, 두 번째 어시스트)는 의사가 직접 하는 게 원칙이지만 다수의 진료지원인력이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검사나 수술 동의서 작성도 마찬가지다. 진료기록 작성이나 오류입력 수정도 그렇다.

수술 부위 봉합이나 봉합 매듭은 의사가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일부 항목은 위임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다고 봤다. 체외충격파시술은 의사 감독하에 물리치료사가 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이 있다고 한다.

윤석준 교수는 "수많은 의료 행위를 일일이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한 번에 정리할 수 없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같은 공공기관에 센터를 두고 근거를 쌓아서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 모습. 뉴스1

18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회관 모습. 뉴스1

진료지원인력 관리 체계 마련이 중요  

당시 조사에 응한 진료지원인력 363명 중 간호사가 341명이다. 임상병리사 14명, 응급구조사 2명, 간호조무사 3명 등도 진료지원인력으로 활동한다.

전공의 수련병원의 경우 외과, 산부인과, 비뇨의학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전공의가 부족한 진료과에서 진료지원인력이 많이 활동한다. 입원실, 수술실, 외래 진료실 등에 많이 배치돼 있다. 41개 병원 중 20개는 별도 채용 절차가 있다.

법적 근거가 없다 보니 관리가 허술한 편이다. 41개 병원 중 30곳은 별도 운영위원회가 없다. 28곳은 별도 규정이 없다. 자격요건 규정이 없는 데가 15곳이다.

미국 같은 데는 PA가 합법화돼 의료 현장에서 활동한다. 영국은 1, 2차 의료기관에서 의료팀의 일원으로 고용된다. 업무 범위나 임상 지침을 제공하는 의사와 관계를 맺고 일한다. 다만 흉부 엑스레이, CT 스캔, 약물 처방은 할 수 없다. 캐나다는 의사가 위임한 의료 서비스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 환자 문진, 신체 검진, 선별 진단 및 치료적 중재, 치료 및 약물 처방, 건강 상담 등이다. 미국에는 2020년 15만명이 활동한다. 한국은 진료지원인력이 1만명 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의대 정원 동결, 전공의 근무시간 축소 등의 여파로 인한 진료지원인력이 의료현장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있다. 윤석준 교수는 "광범위하게 활동하고 있는 데도 최소한의 운영체계가 없는 게 가장 문제이다. 교육 및 훈련을 안 하는 데가 더 많다. 그런 걸 바로잡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진료지원인력이 의료 행위를 하고 나서 기록을 남기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해 '유령 같은 존재'처럼 비친다고 한다.

윤 교수는 "진료지원인력의 행위를 기록으로 남기고, 병원별로 교육 및 훈련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걸 반기별로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게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현시점에서 미국처럼 PA제도를 신설해 새로운 자격증이나 면허증을 신설하면 직역 간의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생긴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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