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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통합된 시민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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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정치에디터

정효식 정치에디터

통합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특히 태생적으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시민단체(NGO)가 국고보조금에 의존하는 경우 국가에 포섭되고 통합된 시민단체가 된다. 더욱이 공익 목적으로 지원받은 보조금을 불법 횡령하는 등 그 자체로 부패했다면 권력 부패를 어떻게 견제·감시하겠는가.

국무조정실(총리실)이 29개 중앙행정기관이 최근 3년 지원한 국고보조금 사업을 1차로 감사했더니 불법 사용한 금액만 200억원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중앙일보 19일자 1면〉 이조차도 행정안전부가 전국 시·도와 함께 진행 중인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사업 조사와는 별개인 데다가 법 절차를 어기고 부당 지원된 보조금까지 합할 경우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나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국민의 혈세를 쓰는 곳에 성역은 없다”고 지시해 이뤄진 2000년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 이후 23년 만의 첫 조사다. 민간단체에 대한 보조금이 2016년 3조5600억원에서 2022년 5조4500억원으로 매년 4000억씩 5년 만에 2조원이 증가한 데 따른 특별 지시였다. 보조금 지원 단체 수도 2022년 기준 2만7215개에 달했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가운데)가 지난 17일 『검사의 나라, 이제 1년』 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가운데)가 지난 17일 『검사의 나라, 이제 1년』 발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동조합과 직업집단 등 이익단체와 달리 공익적 가치를 표방한 시민단체는 1987년 민주화와 함께 태동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1988),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1989), 환경운동연합(1993), 참여연대(1994) 등 대표적 시민단체들이 차례로 출범했다. 이들은 이후 한국 민주주의와 함께 성장했다. 그런 시민단체 출신들이 문재인 정부 5년간 청와대와 여당 요직 등을 차지하며 과도하게 권력화했을 뿐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공공서비스 대행 보조금 사업으로 특혜까지 챙겼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주 참여연대의 ‘윤석열 정부 검찰+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한상희 공동대표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사이에 ‘검찰공화국-참여연대 공화국’ 논쟁도 벌어졌다. 한 장관은 “정부보조금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했다”는 참여연대 측 반박에 “정부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세금으로 월급 받는 자리를 받는 것이 정부의 직접 지원금을 받는 것보다 더 문제”라고 비판했다.

원로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미 2020년 “국가권력과 시민운동이 특혜와 지원을 대가로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관계가 됐다”고 일갈한 바 있다. 국가와 정치권력에 포섭돼 다원성·자율성을 잃은 데다 부패한 시민사회는 더 이상 정의상 시민사회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런 시민사회를 토대로 한 민주주의 역시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