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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과 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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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위성욱 기자 중앙일보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위성욱 부산총국장

“이때까지 네 번이나 출전하고 열 번을 싸워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과 군졸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싸움(부산대첩)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년(1592년) 4차례 해전(옥포·당포·한산·부산) 중 부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선조에게 올린 장계(狀啓)의 일부다. 그는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을 제외하고는 모든 싸움에서 휘하 장수를 잃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부산대첩에서 그가 가장 아끼던 장수인 녹도만호 정운(鄭雲)을 잃은 것은 그 해전이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지를 대변한다. 이순신 연구가들 사이에 부산대첩을 두고 “정운을 내어주고 부산을 얻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산항 북항 재개발 사업으로 생긴 ‘이순신대로’. 송봉근 기자

부산항 북항 재개발 사업으로 생긴 ‘이순신대로’. 송봉근 기자

부산대첩 등 4차례 해전은 바람 앞에 촛불 같았던 조선을 구한 기적 같은 승리였다. 이 전투에 승리하면서 조선은 제해권을 장악해 7년간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반면 왜적은 수륙병진 전략이 무위가 되어 사면초가의 신세로 전락했다. 부산시는 부산대첩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1980년부터 부산대첩 승전일인 10월 5일(음력 9월 1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결정했다.

최근 부산시는 임진왜란 때 대승을 거둔 부산포가 있던 부산항 북항재개발지역 내 신설도로 도로명 주소를 ‘이순신대로’로 결정했다. 해당 도로 작명을 두고 한동안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결국 이런 역사성을 담은 이름으로 가닥이 잡혀 그나마 다행이다. 이 도로는 부산 중구 중앙동 5가 17-1번지에서 시작해 동구 초량동 45-69번지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도로 길이는 2.3㎞, 폭 40~53m(왕복 8차로)로 충장대로 옆 도로다. 이곳은 2030부산엑스포 개최 예정지이기도 하다.

이 도로를 ‘이순신대로’로 이름 붙인 것은 그의 정신을 국내외에 알리고 이어가자는 취지가 가장 클 것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에 보면 전란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아픔이 자주 언급된다. 가뭄 때는 가뭄 걱정, 가뭄 끝에 비가 오면 ‘백성들이 얼마나 좋아하겠느냐’며 즐거워하는 식이다. 전란 중에도 백성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놀라울 정도다.

영화 ‘명량’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이순신의 아들이 “왜 아버지는 선조에게 충성을 다했는데 왕은 아버지를 계속 죽이려고 하느냐”는 취지로 묻는 장면에서다. 그때 이순신이 아들에게 “충(忠)은 백성을 향하는 것이다”라고 답한다. 영화적 상상력이지만 이순신이 평소 말하고 행동한 것을 보면 그의 충은 백성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순신대로는 그런 정신의 상징이다. 이런 정신의 확산을 위해 도로명에 이어 이 장소에 부산대첩 기념관과 공원을 짓자는 부산대첩기념사업회 측의 주장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