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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쓰레기 밀실행정 화살(국감추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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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면도 땅 위장매입 추궁에 편의주의 시인/어딜 선정해도 문제… 핵처리장 다시 원점
29일 경제과학위원회(위원장 김봉호 의원)의 과학기술처 감사는 김진현 장관으로부터 『안면도에 제2원자력발전소나 서해과학단지 등 어떤 핵폐기물관련시설 설치계획도 백지화하고 이를 정부내 공식절차를 거쳐 폐기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내 일단 「안면도사태」의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이번 감사를 통해 ▲과학기술행정의 전문주의와 그에게 비롯된 비밀·편의주의행정의 병폐가 드러났고 ▲정부가 과연 「중·저준위 핵폐기물」영구처리장을 안면도가 아닌 제3의 장소에 분리 설치하려고 했을까 하는 의혹은 해소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안면도 논쟁」에서 누가 승리했는가보다 1년에 5천드럼씩 쌓이는 중·저준위 핵폐기물과 2백t씩 배출되는 사용후 핵연료 저장·관리를 언제,어느 장소에,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정부도 국회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과기처 국감이 남긴 가장 큰 숙제인 것 같다.
안면도 민원은 해결됐지만 말썽난 핵폐기물 처리문제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게 됐기 때문이다.
○…신인 김 장관 대신 보고를 한 최영환 차관은 「중·저준위 핵폐기물」(폐수·방호복·장갑 등 시간이 지나면 유해성이 없어지는 핵쓰레기) 영구처리장과 「사용후 핵연료」(재가공하면 다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고위험도의 핵처리물) 중간관리시설을 동일부지에 설치하려던 계획은 올 3월에 분리설치방침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같은 분리설치방침에 따라 지난 6월 충남도에 안면도 부지 1백50만평에 대한 위탁매입을 의뢰했다』고 밝히고 『중·저준위 폐기물처리장은 무인도 등에 설치하려 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이해찬 의원(평민)은 『원자력문제의 최고결정기관인 원자력위원회(위원장 이승윤 부총리)가 분리방침을 정한 것은 지난 9월6일 2백26차 회의에서였다』고 반박하며 회의록 원본 제출을 요구했다.
이때 김 장관은 『위원회 결정은 9월이었지만 과기처 내부방침 변경은 그 이전인 3월이었다는 점을 믿어달라』고 말하고 행정절차상 잘못과 홍보·공개상의 미흡함을 인정했다.
○…과기처가 편의주의행정을 시인한 뒤에도 이 의원은 『정부가 안면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원자력 제2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중저준위」와 사용후 핵관리,처리장을 동일부지에 통합설치하려고 했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며 집요하게 추궁했다.
그는 이같은 의혹의 근거로 ▲시급한 중·저준위 처리장(95년 완공) 건설에 대한 내년도 부지확보예산이 전혀 없는 대신 사용후 핵연료중간저장시설(97년 완공)의 부지예산만 계상돼 있는 점 ▲대덕원자력연구소와 충남도간에 맺은 「토지위탁매수협약」 문건이 양자 합의하에 파기된 점을 들었다.
이 의원은 『「협약」 문서에는 두 종류의 핵처리물시설용 부지를 안면도에서 일괄 매입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들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정부가 사용후 핵연료저장시설 명목으로 부지를 확보한 뒤 슬그머니 중·저준위 폐기물처리장도 함께 건설하려 했던 게 아니냐』고 다그쳤다.
한필순 원자력연구소장은 『충남도와의 「협약」은 안면도사태 한 달 전쯤 제2원자력연구소건설계획이 서해연구단지개발계획으로 확대되면서 쓸모없게 됐으므로 파기해버렸다』고 대답했다.
정부문서 보전연한이 있는데 즉시 파기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한 소장은 『그럴 수도 있다』는 답변으로 의혹을 증폭시켰다.
경과위는 12월1일의 충남도 감사에서 문서파기 시기·이유 등을 집중추궁할 계획이다.
○…과기처는 자신의 편의주의행정을 시인하고,경과위는 정부의 「동일부지 위장매입」 의혹을 제기했으나 앞으로 엄청나게 늘어날 핵폐기물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한마디 논의도 오가지 않았다.
현재 중·저준위 폐기물은 밀폐된 드럼통형태로,사용후 핵연료는 내진성지하풀에 묻은 상태로 각 원자력발전소에 분산저장돼 있다.
정부는 『「중·저준위」 경우는 인간생활권과 완전 격리가능한 무인도에 처분하고,사용 후 핵연료는 기술개발차원에서 원자력발전소에 집중저장해 재처리문제를 연구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미 모든 계획이 백지화된 마당에 이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안이 전혀 없는 상태다.
「핵폐기물」 「중·저준위 핵폐기물」 「사용 후 핵연료」 등 알쏭달쏭한 용어부터 정리해 국민들에게 정확한 개념을 알리고 신뢰받는 원자력행정을 하겠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시급한 것 같다. 국내 어느 지역에서도 지금 상태라면 핵쓰레기는 결사 사양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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