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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벌레 사촌"…'목재 킬러' 흰개미의 북침, 환경부도 놀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주택에서 발견된 흰개미. 세계적으로 목조건축물에 큰 해를 끼치는 '마른나무흰개미과(Kalotermitidae) 크립토털미스(Cryptotermes)속'에 속하는 흰개미로 확인됐다. 사진 환경부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주택에서 발견된 흰개미. 세계적으로 목조건축물에 큰 해를 끼치는 '마른나무흰개미과(Kalotermitidae) 크립토털미스(Cryptotermes)속'에 속하는 흰개미로 확인됐다. 사진 환경부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정환진 과장은 21일 “침입 경로를 확인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해 22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현장에서 범부처 합동조사를 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주택가에서 발견된 흰개미가 외래종 ‘마른나무 흰개미(Kalotermitidae)과의 크립토털미스(Cryptotermes)속’ 흰개미로 밝혀진 데 따른 대응이다.

공동 조사에는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와 검역본부, 산림청 등이 참여한다. 범정부적인 대응이 필요한 건 흰개미의 위험성이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화재청도 조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문화재청은 국내에 서식하던 흰개미가 팔만대장경(경남 합천 해인사 소장) 경판을 갉아먹는 일이 발생해 지난 1973년부터 흰개미 피해 방제를 해왔다. 마른나무 흰개미과의 흰개미는 닥치는 대로 목재 내부를 갉아먹어, 주로 습한 목재에 타격을 입히는 국내 흰개미보다 목재에 대해 더 광범위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개미는 분류학적으로 ‘바퀴목’에 속한다. 개미는 ‘벌목’이어서 과학계에서는 이 흰개미를 ‘바퀴벌레의 사촌’ 정도로 보고 있다. 바퀴벌레와 함께 약 2억년 전 고생대부터 지금까지 진화 없이 살아남은 지구의 터줏대감이라는 얘기다.

영국 영토만 한 흰개미 군락지 발견되기도 

2018년 세계적인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리에 실린 브라질 북부 카팅가 관목 지대의 흰개미 굴 도식도와 자료 사진. 사진 커런트 바이올로지

2018년 세계적인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리에 실린 브라질 북부 카팅가 관목 지대의 흰개미 굴 도식도와 자료 사진. 사진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에는 영국 영토 크기에 가까운 23만㎢ 넓이의 흰개미 군락지가 브라질 북부에서 발견돼 과학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2018년 11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실린 연구 결과에 따르면 브라질 북부 카팅가 관목 지대에서 2~4m 높이, 9m 너비에 이르는 언덕 2억개(추산)가 발견됐는데, 이는 흰개미들이 땅을 파며 쌓은 흙으로 생긴 것이며 그 땅속에는 터널이 연결된 거대 흰개미 왕국이 건설됐다.

영국과 브라질 연구진의 공동 조사 결과 가장 오래된 언덕은 382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던 시기부터 흰개미들이 수천 년에 걸쳐 흙 언덕을 쌓았다는 얘기다. 그 분량은 기자 피라미드 4000개를 지을 정도라고 한다.

서울 강남 주택 배수구에서 발견된 흰개미 사채. 사진 연합뉴스

서울 강남 주택 배수구에서 발견된 흰개미 사채. 사진 연합뉴스

한국 겨울 따뜻해지자 북방 한계 넘은 듯 

이번에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크립토털미스는 땅이 아닌 나무 속에 서식지를 만드는 종으로 악명이 높다. 숲속 살아있는 나무부터 가구까지 다양한 목재에 침입해 수개월 동안 나무 밖으로 나오지 않고도 살 수 있어 조기 발견이 어렵다. 호주에서는 이들 탓에 목조 건물이 붕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주로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해온 크립토털미스가 한국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날개가 달린 채로 발견됐다는 것은 이미 군락지를 형성하고 결혼 비행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어서 전문가들은 한국에서도 마른나무 흰개미와의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22일 합동 조사를 마친 후에 언론 대응 창구를 일원화하기로 해 지금 마른나무 흰개미에 대해 말하기는 곤란하다”면서도 “사실상 우리도 마른나무 흰개미와의 싸움에 돌입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마른나무 흰개미의 북방한계가 1월 평균온도 10도 선인데, 올 1월 한국 평균 기온 따뜻했고 기후변화로 겨울이 점점 짧아져 목재 속에서 겨울나기에 쉬운 환경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관계 당국이 진행 중인 유전자 분석 결과, 동정(생물의 분류학상 위치와 종 정보를 바르게 확인하는 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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